얼마 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병 아닌 병이 있다. 바로 ‘넵병’이다. 넵병이란 직장에서 상사나 클라이언트에게 대답을 ‘넵’으로 하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네’는 너무 딱딱하고 ‘넹’은 장난스러워 보이니 ‘넵’이라고 써서 보다 유하고 신속 정확한 느낌을 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문제지만 다시 한 번 곱씹어 생각해보면 짧은 대답 한마디에도 남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요즘 현대인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면으로 업무를 처리하던 시대에서 전화와 메일의 시대로 넘어가면서부터 가속화된 사회는 컴퓨터와 핸드폰, 메신저 등의 발전으로 이제 면대면(面對面)으로 업무를 처리하기보다 SNS나 메신져 등을 통해 업무를 지시받고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공간의 한계성은 사라졌고 이에 따라 사무실과 집, 책상과 침실의 경계마저 허물어져 버렸다.
덕분에 퇴근이란 의미는 무색해져 버렸고 ‘24시 항시대기’ 모드의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이런 환경의 변화는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늘 긴장하고 불안해해야 하는 현대인을 만들어냈다. 높은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압박감, 감정의 불안정함에서 오는 육체적, 정신적 질환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졌다.

사회 초년생 이사원, 번아웃증후군
의욕적으로 직장 일에 몰두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많이 겪게 되는 정신질환이 ‘번아웃증후군’이다.

넵병과 마찬가지로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일하기싫어증’이 번아웃증후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번아웃증후군이란 불 태워 없어진다라는 뜻의 ‘소진(燒盡)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면서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번아웃증후군은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든다 ▲쉽게 짜증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만성적인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증상에 시달린다 ▲감정의 소진이 심해 우울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아진 것 같고 예전과 달리 열정이 사라졌다 ▲잠을 자도 피로가 누적되는 것 같고 이전에 비해 더 빨리 더 쉽게 지치는 것 같다 ▲속이 텅 빈 것 같고 일과 자기 자신,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등의 증상을 느낀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현철 교수는 “번아웃증후군은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증상”이라며 “틈틈이 여유를 갖고 편안한 대화, 운동, 여가활동 등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 극복에 도움이 된다. 증상 수준이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이거나, 장기간 지속될 경우 전문가를 찾아 상담 및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불안·초조 중간관리자 김과장, 범불안장애
뚜렷한 원인을 모른 채 지나친 긴장감을 계속해서 느끼게 되는 증상을 ‘범불안장애’라고 한다.

범불안장애는 불안장애 유형 중 하나로 일정한 수준의 불안한 감정을 계속해서 느끼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과도하게 걱정이 많아지거나 긴장 상태가 지속된다.

불안감이 계속되면 우리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게 되는데 코르티솔의 영향으로 신체 대사가 불균형해지고 복부비만, 고지혈증, 심혈관계 질환으로 이어진다. 지속되는 불안감 때문에 폭식을 하거나 술, 약물 등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범불안장애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모두를 챙겨야 하고 혹시나 생길지도 모를 문제에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중간관리자들이 많이 겪게 된다.

그들은 아랫사람이 일으킨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윗사람의 입맛에도 맞춰야 하는 고충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범불안장애는 보통 6가지 증상 중에 3가지 이상을 6개월 이상 겪게 될 때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안절부절,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쉽게 피곤해진다 ▲집중하기 어렵다 ▲쉽게 화가 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근육이나 전신이 경직된다 ▲수면장애가 있다.

범불안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안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커피나 음료, 약물 등에 의존하기 보다는 복식호흡과 같은 긴장이완 훈련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상담을 받거나 증상이 심할 때는 약물 처방을 통해 치료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정도 회사도 무의미한 박부장, 우울증
우울증은 중년 이후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가정과 회사에서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중년 남성들의 과도한 부담감과 책임감이 원인이 되고 사회와 가정의 소통 단절 등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또 40대 이후부터 남성호르몬이 떨어지면서 세로토닌 분비가 함께 감소하여 우울증이 쉽게 유발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인식 때문에 남성은 슬픔이나 상처 등을 내보이게 되면 유약하다거나 무능력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 이를 스스로 감춰야 하니 우울증을 겪는 환자의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여성보다 남성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는 우울증 환자 수는 오히려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적다.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들 수 있으며 이와 함께 인지 장애, 정신 장애, 신체적 장애 등 다양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온다. 우울증은 우울감과 구별되어야 하는데 우울감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지만 우울증은 의지만으로는 없앨 수 없는 ‘질병’이다.

윤현철 교수는 “누구나 우울감을 경험하곤 하지만 우울증은 사회생활과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고 보통 2주 이상 지속된다는 점에서 구별이 된다”며 “치료를 통해 힘든 기간과 강도를 줄임으로써 사회생활 및 일상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므로 반드시 증상이 심하거나 지속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조언했다.  

우울증은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진단을 받게 되며 면담 치료, 인지 치료, 집단 치료, 약물 치료 등을 실시한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다. 증상이 심각하더라도 2~3개월 정도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증상이 호전된다.

또한 우울증은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 중요한데 의지의 문제로 환자를 몰아붙이면서 윽박지르거나 단순히 힘내라고 격려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허심탄회한 대화나 서로를 이해하고자하는 마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우리사회는 ‘정신건강의학’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다. 기분장애나 가벼운 정신 질환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증상임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지우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힘에 겨워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가 다변화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정서적 안정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모든 범인(凡人), 이사원, 김과장, 박부장들이 겪게 되는 마음의 병(病)을 병(昺)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모두의 관심이다.

이제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의 아픔도, 너의 아픔도 아우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도움말: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현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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