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패러다임 변화, 의사 '돌봄'의 주체로 서야

인공지능이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수많은 진단들이 나오는 가운데 의료의 본질인 '돌봄'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와 주목된다.

인공지능 시스템이나 지능형 로봇은 돌봄의 도구로 기능할 뿐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의료의 본래 목적인 돌봄(Caring)의 틀을 마련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근거없는 두려움과 그 위력에 매료돼 물신화하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는 전제조건도 붙였다.

고인석 인하대학교 교수(철학과)는 대한의학회에 기고한 '인공지능의 시대, 의료 패러다임 변화의 전망'을 주제로 한 글을 통해 이 같이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글에서 "인공지능의 시대가 감지된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바둑 승리 뉴스가 깜짝 놀랄 뉴스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인공지능의 힘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는 방증"이라면서 "의료계에도 인공지능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고 교수는 "국내 일부 병원에도 도입된 암 진단 인공지능 시스템 '왓슨 포 온콜로지'는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서 "이것은 귀납적 관점에서 유사성과 유관성의 관계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계산해 제시하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기술이지만 업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할 만큼 충분히 강력한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분명해 보이는 것은 왓슨 포 온콜로지 같은 인공지능 시스템이 환자의 진료 기록으로부터 그의 병증을 읽고 나아가 치료법을 제시하는 일까지 어느 인간 의사 못지않게, 혹은 어느 인간 의사보다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직업을 잃는다는 것은 억측"이라면서 "오히려 인공지능 기반의 의료는 증거기반 의학과 정밀의학이라는 두 트렌드 이념을 수렴시킬 훌륭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인석 교수는 왓슨과 다빈치의 역할을 소개하면서 "왓슨이 토대로 삼는 데이터는 의학 교과서와 논문들뿐만 아니라 진료 기록과 영상자료까지 원칙적으로 모두 인간이, 의사들이 만든 것"이라면서 "다빈치의 경우처럼 실시간 방식이 아니어서 눈에 띄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수술로봇 다빈치 같은 실시간 연장의 경우에도 ‘연장된’ 기계적 요소에 점점 고도의 인공지능 기술이 응용될 것이고, 인간 의사 고유의 기여와 인공지능 혹은 로보틱스의 기여는 둘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한 방식으로 활발하게 접속될 것"이라면서 "이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변동을 예고한다"고 의미를 뒀다.

그러면서 "의료 관련 인력의 기여가 전보다 더 필요한 영역과 덜 필요한 영역, 그리고 새로이 필요한 영역이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의료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중간 전문인력의 수요가 증대되리라는 예측이 있고, 간호학 교육의 일각에서 이 방향의 발 빠른 대응이 감지된다는 소식도 있다"고 소개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 건강관리로 이동

고인석 교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예견되는 또 하나의 변화로 의료계의 무게 중심이 치료에서 건강관리로 옮겨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인석 교수는 "스마트폰에 탑재된 건강관리 앱이 그런 변화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면서 "그로 인해 어떤 수준과 양상의 의료 평탄화 효과가 발생할 지는 아직 예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 시스템이나 지능형 로봇은 그 어떤 수준의 훌륭한 것이라고 해도, 돌봄의 도구일 뿐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혹여 생겨날지 모르는 근거 없는 두려움(AI-phobia)과 인공지능의 위력에 매료되어 그것을 물신화하는 오류를 모두 경계하면서, 이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잘 활용하여 더 훌륭한 돌봄의 틀을 마련할 수 있을지를 의료계와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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