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급미(舐糠及米: 겨를 핥다 쌀까지 먹는다.)한마디로 일축하면 욕심이 점점 커짐을 이르는 말이다. 다소 어려운 한자로 된 성어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강(舐糠)은 송아지를 핥는 어미 소의 사랑이나 지게미와 쌀겨로 연명을 하는 아내 조강지처(糟糠之妻)라 할 때 쓰는 말이다.

‘대청을 빌려 방에 들어간다.’ 란 우리 속담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속담이다. 대청을 빌려 쓴다는 구실로 시작해서 방에까지 들어간다는 뜻으로 염치없이 처음에 한 약속을 임의로 깨고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의 중요 의미는 사소한 잘못이라도 지적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기필코 더 큰 후회를 할 날이 오니 미리미리 잘 알아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문 대통령은 자신이 5대 악(惡)으로 지정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야당이 발목잡기를 한다며 청문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각료를 임의로 임명하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당선되자마자 첫 번째부터 자기 스스로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다. 80%의 국민들 지지율은 문 대통령이 잘해서가 아니라 잘 해주기를 바라는 뜻에서의 지지율이란 것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을 지지한 지지율은 41%다. 그것도 보수파인 홍준표를 떨어트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국민의 투표율이라 엄밀히 따지면 절반 수준에 불과 할 것이다. 어부지리로 얻은 지지율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여론 지지율에 깊이 빠져 오만 불순한 모습으로 정무를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아 머지않아 큰 후회를 하며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을지 우려된다.

불가에서 생각과 말(言語), 몸(肉身)을 다스리는 근본을 무념(無念)과 무언(無言), 그리고 무행(無行)이라고 한다.

스님들은 일 년에 두 차례에 걸쳐 무집착과 무소유의 생활로 돌아가는 안거(安居)로 자기를 수행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시기에는 그동안 중생들과 접하면서 알게 모르게 묻게 마련인 속세의 때를 말끔히 털어내며 자연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을 용맹정진하다 안거의 해제 일을 맞이하면 다시 중생들 속으로 만행(萬幸)의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중생의 고통을 살피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정신으로 세속인들에게 청량한 바람을 일으킬 범어를 전하기 위해 속세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범어라 할지라도 받아들여지는 마음과 안목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 질 수도 있고, 그 견해의 차이는 엄청나게 클 수도 있다.

어느 한 스님의 말씀처럼 마음은 유심(有心)으로도 알 수 없고 무심(無心)으로도 알 수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결국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린 것이다.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기의 잘못이나 실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먼저 고백하기에 앞서 자기변명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등 피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시치미를 떼는 것이 일반적이고, 설령 증거가 나와도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 등으로 일관한다. 남의 일에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참견하면서도 자신의 일에는 매우 관대하다.

문 대통령이나, 여당이나, 청와대를 보면 꼭 그렇다. 특히 있으나 마나 한 청문회를 보면서 더욱더 그 같은 느낌이 든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부처의 수장 노릇을 하며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겠는가? 그런 인품의 상사를 누가 존중하며 지시를 따르겠는가?

보통 사람이라면 스스로가 물러날 줄 알아야 하는 데, 모두가 강심장으로 뻔뻔하다. 하나같이 두꺼운 얼굴을 하고 버틴다. 세상을 밝고 어질게 살려면 마음을 바꿔야 한다.

특히 남의 마음을 바꾸려 하기보다 자신의 마음부터 고쳐야 한다. 세상이 밝아지고 바른 사회가 되려면 결국 정치인들이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

분명 마음에는 빛깔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형체도 없다. 그리고 허공을 감쌀 정도로 큰 것이 마음이기도 하지만, 아주 작은 유리 조각 파편도 들어갈 수 없는 것 또한 마음이다.

사실 마음을 바꾼다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다. 수시로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기는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자기 마음을 너무 강하게 내세우면 결과적으로는 상처만 입게 될 뿐이다.

과거 정치사를 돌아보면 쉽게 알 수도 있는 문제다. 특히 정치인들, 상대방의 마음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이 가져가도록 하는 자세가 그 무엇보다 중요 하다.

항상 상대에게 사사로운 욕심을 앞세워 무엇을 강요하거나 일방적인 요구를 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고, 갈등을 빚게 되기 마련이다.

오랜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화평과 사랑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이제라도 우리 마음을 고쳐먹고 모두가 한 국가, 한민족임을 인식하는 눈을 뜨자.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옛 성인의 말씀에 사리(舍利)가 방광(放光) 하는 것이 부처와 다르지 않더라도 바른 안목이 없다면 범부라 했거늘, 깨치지 못한 우리 보통사람에게 어찌 ‘해안 거’ 해제가 따로 있겠냐마는 각자가 견성하여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날이 바로 해제 날이 아니겠는가. 없는 것을 탐하고, 이웃을 탓만 한다면 다툼만 있을 뿐이다.

문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며 필요에 따라 구구한 변명을 하는 구차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정부와 여당은 핵심은 빼돌리고 말 돌리기로 국민을 우롱하지 말라. 국민들의 지지도는 항상 변한다는 것을 알고 항상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

특히 유엔의 인권문제 기권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해명하고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고 용서받으면 된다.

또한 사드배치에서도 환경 영양 평가 조사를 한다며 현재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유보를 한다는 것도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북한이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하고, 무인기까지 띄워 사드 배치 현황까지 촬영하는 상황에서 공사를 지연시키는 것은 납득이 안가고 그 저의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든다.

현 정권을 보면 하나같이 의심스럽고 불안하기만 하다. 문 대통령을 보면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이 생각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제갈량이 막역지우인 마속에게 군법을 어겨 패전한 죄를 물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것이다.

제갈량은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격한 규율을 스스로 지켜 기강을 바로잡으면서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약속한 말에 대해서는 이유 불문하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 또한 아무리 가깝고 아끼는 사람일지라도, 잘못이 있으면 그에 따른 책임 문책을 해야 국민들이 존경하고 신뢰하며 따를 수가 있다.

약속을 지키지도 않고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오래가지 않고 자멸 될 것이다. 국민을 무서워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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