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일은 현충일, 25일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기도 하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할 날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언제인가부터 현충일이 되어도 그날이 어떤 날인지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애국선열들과 국군장병들의 충절을 추모하고 이를 기억하기 위하여 정한 기념일인데도 불구하고 그 정신은 퇴색되고 오직 노는 날, 공휴일로만 인식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 해주고 있다.

현충일에 태극기를 게양한 집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의 없다. 거리에서조차 조기(弔旗)가 게양되어있지 않았고, 보훈의 달을 상징하는 그 흔한 플래카드도 전무하다.

현충원에서도 정치인들과 젊은이들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정치꾼들 싸움에 억울하게 희생된 5.18 묘소에는 눈도장을 찍기 위해 단체로 달려가는 정치꾼들, 단지 해상사고로 사망한 세월호 사건에는 몇 년간 애도를 표시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라를 지키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산화한 호국 영령들에게는 감사는커녕 관심조차도 없다.

관심조차 없는 지경이니 현충일을 생각 할 수도 없고, 현충원을 찾지도 않는다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지난 해 국가보훈처가 광화문 광장에 태극기를 상시 게양 할 뜻을 내비치자 서울시청(시장 박원순)이 상시 게양을 반대했는데, ‘국민들에게 위압감을 주고 교통에 방해가 되고 애국심을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인상을 주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광화문 광장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천막을 치고 교통을 방해하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방해하고 있을 때다.

당시 한 설문기관에서 조사한 결과는 ‘상당수 시민들이 광화문에 태극기 상시게양을 찬성한다’로 나오기도 했다. 국민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처럼 국가관이 희박해지고, 안보에 위기를 느끼는 때에는 더욱더 그렇다. 국가관이 희박해지고, 왜곡된 역사 속에서 안보위기마저 느끼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모른 척 돌아서 가면/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당신은 어찌하여/푸른 목숨 잘라내는/그 길을 택하셨습니까?/시린 새벽 공기 가르며/무사귀환을 빌었던/ 주름 깊은 어머니의 아들이었는데/바람 소리에도 행여 님일까/문지방 황급히 넘던/눈물 많은 아내의 남편이었는데/기억하지 못할 얼굴/어린 자식 가슴에 새기고/홀연히 떠나버린 아들의 아버지였는데/무슨 일로 당신은 소식이 없으십니까?/작은 몸짓에도/흔들리는 조국의 운명 앞에/꺼져가는 마지막 불씨를 지피려/뜨거운 피 쏟으며 지켜낸 이 땅엔/당신의 아들딸들이/주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그 무엇으로 바꿀 수 있었으리오./주저 없이 조국에 태워버린/당신의 영혼들이 거름이 되어/지금/화려한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지금은 잊혀진 월남은 차지하고라도 시리아를 생각해보자.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살기가 어려워지자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이들 난민을 받아주지 않아 더욱더 어렵고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나라가 부강해야 그 국민들도 평화스럽게 살 수 있고, 외국에 가도 인정을 받고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설령 본인이 개인적으로 훌륭해도 나라가 없고, 정작 나라가 있어도 가난한 나라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가 어찌 되던 자기만 잘되면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가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누구든지 혼자만은 잘 살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외세의 침략이 많았고, 유독 전쟁을 많이 겪은 나라 중 하나다. 특히 일제 36년간의 식민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던가? 그리고 6.25전쟁 3년을 겪는 동안 우리 힘으로 공산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가?

1953년 휴전협정을 맺을 당시 UN 회원국이 60개국이었고, 전 세계에 독립국가가 총 91개국이었는데 67개 국가에서 6.25 한국전쟁 시에 우리를 여러 방법으로 지원한 것은 참으로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UN이 결성되고 최초의 사건으로서 군(軍)을 파견해준 국가도 16개국이나 되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 에티오피아, 필리핀, 태국, 터키, 남아프리카 등이며, 이탈리아, 스웨덴, 인도, 등이 의료지원을, 이 밖에도 물자 지원이 46개국이나 되었다.

우리는 이들 나라에 대해 항상 감사하며 고마움을 간직해야 하고, 그 감사를 적극적으로 표현을 해야 한다. 그들의 파병이나 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 힘만으로 전쟁에서 견디어 내며 오늘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을까?

6.25전쟁의 뼈아픈 상처를 체감하지 못하고, 감성에만 치우치는 젊은이들과, 일부 시민단체와 전교조 교사들, 안타깝기만 하다.

이미 많은 이들로부터 잊혀진 국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진 월남. 당시 월맹(공산주의)보다 자원도 풍부하고 병력도 많았지만 부패한 국가 공무원들, 교사와 지식인, 학생들의 반(反)정부 투쟁, 미군 철수. 결국 미군의 철수로 백 년에 걸쳐 치른 전쟁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공산화가 되면서 역사에만 남아있는 ‘보드 피풀’ 이란 오명의 이름으로 바다에 수장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당시 정부를 비난하며 월맹에 동조했던 많은 지식인과 학생들, 적화통일이 되면서 그들(월맹)에게 절대적인 환영을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1차 척결대상이 되어 투옥 내지는 처형을 당했다.
 
원인은 반대할 줄 아는 지식인들은 언제라도 자신들에게도 반대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뿌리를 제거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친북 경향의 사람들, 국가보안법 폐지, 미군 철수, 민간교류 등 모두가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임을 알고, 경고 망동한 행동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만약 적화 통일 시 척결 1호 대상이 바로 당신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간교류 역시 돈을 투자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고가 10년 정부처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재정지원은 그들의 힘을 키워줄 뿐이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월남 참전전우회 전우들과 함께 현충일이 아니라도 전방 충혼탑과 6.25전쟁 시 한국에 파병되었다 전사한 외국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 된 기념탑을 찾아 헌화하고 그들 호국영령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다.

이번 현충일에도 예외 없이 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헌화했지만, 정치인들과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고 광주 5.18묘소, 세월호의 노란 리본과 대조되면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꽃을 들고 묘지를 찾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다소 위안이 되었다. 아울러 교육의 필요성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내년부터라도 정부 차원에서 조기를 게양하고 검정리본을 가슴에 달아 그 분들에게 감사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Because you soldiers rest here, our country stands tall with pride”(그대들 여기에 조국이 있다.)동작동 현충원에 있는 故 채명신 육군중장(전 주월 한국군사령관)사병묘비 비문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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