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간 필자는 검사(檢事)를 대리해서 상담을 위임받고 관내 비행청소년을 상담하는 시간을 가진 바 있다.

검찰청에서 처음 대했을 때 그 소년의 얼굴에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삶을 포기 한 사람 같은 모습이다.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으로 검찰에 송치된 초범이다.

아예 체념 된 상태라고 보는 게 더 맞을지 모를 정도로 묻는 말에 대해 덤덤하게 성의 없이 대답을 한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참으면서 먼저 지난날 들을 이야기 하도록 유도했다.

친구와 지낸 일, 부모와 회식 한 일 등을 말하도록 했다. 상담을 할 때도 시선은 먼 산 보듯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못마땅했지만 그 소년의 행동에 대해 지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로의 말을 자주 들려주곤 했다.

소년이 내 마음을 알았는지 매회 대 할 때마다 태도가 달라지고 있었다. 만남이 거듭 될수록 밝은 표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웃는다.

주위 친구들도 좋았고, 술과 담배도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 3 이면서도 아직까지 진로가 결정되지 않아 진학을 해야 할지, 취업을 할지 조차 계획에도 없다.

단지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게임뿐이라고 했다. 게임과 관련한 대학을 진학하면 어떤가도 물었지만 자신이 없다고 했다.

가정을 파악해보니 원만한 가정이었고, 또 부모와 소통을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5회째 이후 부모와 통화를 했다.

필자가 출연하는 ‘오페라 춘희’ 공연에 부모님이 아들과 함께 관람을 하면 어떨지를 물었더니 흔쾌히 시간을 내겠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만남에 부모와 함께 만나 공연 소감을 말해보도록 했다.

자기가 제일 보잘것 없고 잉어 인간 같다고 말하는 소년에게 오페라 공연 출연진 주연. 조연 엑스트라 모두 중요하고 자신의 역할이 다 있다고 설명하며 시계를 예로 들었다.

시계의 초(抄)침. 분(分)침. 시(時)침 톱니의 역할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시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듯 오페라도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성공 할수 없다.

모두가 다 자기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자신이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 같아도 오페라나 시계에서처럼 자신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해줬다.

자기 역할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가를 강조했다. 고 3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목포와 목적의식을 갖도록 했다.

마라톤을 달려도 목표와 목적이 없으면 곧 지치게 된다. 그러나 목표와 목적이 있으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

문득 모 대학병원에서 임상 목회과정을 위한 인턴 시절이 떠올랐다. 필자가 매주 월요일 방문하는 병원. 9층 병동에는 암환자를 위한 특별병동이 있었다.

암 병동으로 불리는 데,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 병실을 들어오면 죽을 날만 기다리는 희망 없는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또 그 병동에 들어오는 환자 역시 오래 있지를 못하고 떠난다.

병실마다 창가에 침대를 하나밖에 놓을 수 없었는데 그 침대에는 암 말기 환자인 '종수'라는 청년이 누워 있었다. 그 청년은 매일같이 창밖에 보이는 경치를 감탄하며 다른 환자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날씨도 화창한데 어린이들이 소풍을 가는 날인가 보네요. 저기 알록달록한 색깔의 가방을 멘 아이도 있고 즐거운 듯이 손에 든 가방을 흔들어 보이는 아이도 있거든요. 그리고 나비 한 마리가 한 아이의 주변에서 춤을 추네요." 날마다 생생하게 바깥 이야기를 들려주는 청년의 이야기에 그 병실에 있는 암환자들은 잠시나마 아픔을 잊곤 했다.

환자들에게는 청년으로부터 창밖의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모두가 잠에서 깨었을 때 청년의 침대가 깨끗하게 비어져 있었다.

그러자 '철수'라는 나이 많은 환자가 갑자기 큰 소리로 간호사를 불렀다. "내가 저기 창가에서 있을 테니 내 침대를 옮겨주시오." 유일하게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그 침대는 순서가 있었다.

그러나 그 노인은 그 순서를 무시했다. 그 누구도 성품이 거칠었던 노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노인은 드디어 창밖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행복해했다.

창가로 옮겨 침대에 눕자마자 창밖을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그 청년이 얘기하던 그 아름답던 풍경은 볼 수가 없었다. 그저 회색빛 벽돌담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간혹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뿐이었다.

그 청년은 다른 환자들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생명의 끈을 놓지 않도록 보이지도 않는 바깥 풍경을 들려주었던 것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로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한 줄기의 희망만 있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언젠가는 건강해질 거라는 희망, 끝내는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 오늘보다 내일이 더 살기 좋아질 거라는 희망, 희망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생각이며 부정보다는 긍정을, 불가능보다는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러니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희망을 심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꽃 피우고, 세상에 생기를 주어 이 땅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다.

또 하나의 실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영국의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의 이야기다. 2차 대전 당시 옥스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위엄 있는 차림으로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갔다.

수많은 청중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입에서 나올 근사한 축사를 기대했다. 처칠은 청중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힘 있는 목소리로 짧은 한 문장을 외쳤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연설이 끝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청중에게 한참 뒤 그는 소리를 높여 다시 외쳤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청중들은 다음 연설을 기다리자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라고 외치곤 단상에 내려왔다. 그때야 청중들은 처칠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 실패다. 세상에 어느 사람도 힘들지 않은 삶은 없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절망과 어려움을 희망과 용기로 바꾸고,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앉게 될 것이다.

소년은 말한다. 자기가 생각해보니 요리에도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다. 또 법원이 아닌 곳에서 자신의 진로를 상담받고 싶다고 하며 6개월 동안 따뜻하게 대해줌을 감사했다.

그 소년의 맑은 눈빛을 보며 가식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다소 힘들었지만 그 소년의 그 한마디 감사가 모든 피로를 풀게 하고, 보람을 느끼게 한다. 헤어지는 소년에게 화답을 했다.

Don't you ever and ever give up!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라!)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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