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대통령이 임기를 몇 달 남겨두고 탄핵을 당해 야인(野人)이 되어 청와대를 떠나 사저인 삼성동으로 돌아왔다. 본인은 물론이지만 국민들도, 국가적으로도 불운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뽑은 지도자를 우리가 내 좇았으니 말이다.

이제는 모든 권력을 내려놓은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이 되었지만 언론매체는 일반인이 된 전직대통령을 자유인으로 놔두지 않고 여전히 감시의 눈길로 지켜보며 시시각각으로 보도를 하고 있다. 탄핵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피고인 자격으로서 법정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국가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다. 그 기질은 타고 나는 경우도 있고, 인생관 혹은 인생경험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그 기질에 따라 인생 항로가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력에도 그 기질은 반영된다. 대통령직에도 법으로 정한 권력이 있다.

어떤 대통령이든 제도적으로 부과된 권력은 똑같다. 그러나 그 대통령의 기질에 따라 권력 구조와 행사되는 방식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 기질이 우유부단하다면 권력행사도 우유부단 할 것이고, 그의 기질이 단호하다면 권력도 단호하게 행사 된다.

그런 권력의 기질은 바로 리더의 기질로 부터 나온다고 감히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파면)이 되어 쫓겨 난 전직 대통령을 두고 이런 말, 저런 말을 굳이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에 비극으로 막을 내린 ‘최순실 게이트’ 사건의 과정을 보면서 리더의 기질이 국가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가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사건에 대해 야당은 최순실 사건과는 거리가 먼 세월호 7시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대통령은 몇 번의 사과로 국민의 관심 밖에서 그저 하나의 형식적 통과의례 정도로 취급되면서 국민의 마음이 대통령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떠나버렸다.

거슬러 올라가면 4년 반년 전 52%라는 높은 득표율로 대통령에 뽑힌 그녀가 아니었던가. 선거에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늘 위기에서 당을 구하고 자신도 살아남을 수가 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사저로 가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에서 권력의 말로가 얼마나 힘겹고 비참한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측근들을 잘 못 썼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물론이지만 국무위원들도 마찬가지다.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대통령께 진언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야당도 이를 호재로 알고 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면서 국민을 선동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내 뱉으며 국정을 어지럽게 했다.

그 덕분에 진상도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한쪽 여론에 밀려 처단되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생각되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오직 변명으로 치부했다. 정작 사건에 발단이 된 고영태에 대해서는 검. 경찰이 관대했고 특별히 조사도 안 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헌재도 마찬가지다. 피고인 측이 증인 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두 거부당했다. 그리고 어느 사건보다도 더 충분한 조사를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판장 임기를 이유로 조기에 판결을 한 것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안타까운 것은 청와대 비서관이나 정부 부처의 실무진들의 진술이 애매하고 납득이 안 간다는 것이다. 분명히 결과는 있는데, 시행자가 없다. 또한 무조건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돌리는 것 같은 인상이 짖다. 우 수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문득 전 전두환 대통령의 영원한 집사 장세동이 생각난다.

그분은 끝까지 자기가 책임을 지고 자기 상전을 보호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주위에 그런 보좌진이 없는 것 같아 현실에 매정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렸지만 탄핵 여론이 거세게 일어날 때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당연하게 국민을 설득시키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야당국회의원들은 그렇다해도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진언을 했어야 옳았다. 모두가 허수아비였나? 청와대 비서관, 의원들, 국무위원들이 국정에 대해 그렇게도 무감각한 것일까? 시키는 대로 하는 데만 길들여진 탓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만 골라서 비서진에 두고, 당대표도 시켰기 때문일까? 대통령을 내쫓게 만들기도 했지만 자신의 일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까지 빼앗길 무능, 무신경, 무책임한 사람들 같다.

과거 고종이 한. 러 비밀조약을 위안스카이에게 들키자 “아랫사람이 해서 난 모른다.”고 잡아뗐다. 그런 그를 보고 항간에서는 “줏대가 없고 상황에 따라 결정을 한다.”는 소리가 늘 따라다녔다. 고종의 그런 기질은 권력행사 방식으로 나타나고, 그 결과는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이다.

우리의 정권을 뒤돌아보아도, 늘 그런 식이었다. 미국 수입쇠고기 반대 시위에 놀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나도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불렀다.” 고 했다. 천안함 피폭사건 때는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 짓지 말라”는 말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니 그 때 길들여진 사람들이 여전히 천안함 피폭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아닌가? 연평도에 북한에서 쏜 포탄이 떨어지는데도 우리 국군 장병이 죽어가는 데도 “확전은 안 된다”는 게 청와대 지침이었다고 한다.

천안함이나 연평도해전에서 전사한 국군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정권과 정치인들이 세월호, 5.18묘지에는 눈도장(?)찍기 위해 뻔질나게 다닌 것도 알고, 수도 이전 문제에 부결이 되는 시점에서 한 사람(당시 박근혜 의원)의 힘으로 뒤바뀌는 것도 보았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모든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용기와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책임을 져야 할 때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책임의식이 없는 것은 권력의 공공적 성격에 무지하거나, 국민을 아예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번 박 정권의 인사가 엉망이 된 이유도 권력을 사적 획득물로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측근들의 비리도 권력의 사적 소유의식이 빚은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 지형은 크게 보면 보수 대 진보, 좌(左)대 우(右)로 갈라져 있다. 지금의 조기 대선 구도도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권력이 행사 될 때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지형보다는 리더십의 기질이 절대적이다. 요즘에도 각 정당들이 내놓는 빛깔 좋은 정책을 보더라도 이념적으로는 별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우리 국민은 과거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차기 지도자는 누가 권력의 책임성과 공공성을 지켜줄 것인가를 선택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검은 고양이나 하얀 고양이나 상관없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경우는 남북이 갈라진 분단국가로서 아직도 휴전국(休戰國)임을 감안 한다면 “안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우유부단, 책임전가, 끼리끼리의 리더십, 무 소통, 독단적인 권력으로는 한반도에 닥칠 커다란 파도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 지금 당장도 국내 사드배치문제로 미국과 중국에 국익을 위한 정책, 전략이 필요한 때인데 불행하게도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결국 과거의 비극적인 대통령의 말로(末路)를 또 다시 보지 않기 위해서도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인 국민이 어떤 기질의 리더가 필요한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은 믿지 말아야 한다. 옛말에 “나라에 올바른 한 사람의 인물이라도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 다” 고 충고하고 있다. 즉 대저 나라를 망치는 건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망 할 때를 당해 어질고 진실 된 사람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책임이 대통령에게도 있지만 입법부인 국회의원에게도 있다. 당연히 그 책임을 물어 국민의 힘으로 국회를 해산 시켜야 한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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