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 논설위원
엊그제 붉은 닭띠인 정유년 새 아침을 맞이한 것 같은데, 벌써 음력설인 구정(舊正)도 다 지나가고 하루에 나무도 아홉 짐하고 산채나물에 밥도 아홉 번 먹는다는 대보름도 지나갔다.이맘 때 면 늘 그랬듯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나선다. 고향 길을 나선 사람들은 도로가 막혀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그리운 부모님과 가족·친지 그리고 지우들을 만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정을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소원(所願)이 이뤄지기를 빈다.

특히 복(福)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러나 복을 소원하면서도 진정한 복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이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명예·권세·건강 이런 것만이 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물질적이고 세속적이며 유한한 것들이다. 진정한 복은 이것보다는 좀 더 영적이고 무한하며 무형(無形)의 것이 진짜 아름답고 좋은 복이다.

낮아지고 섬기며 베풂의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이다. 진정한 복을 받기 위해서는 가난한 마음, 베풀고 여유 있는 나눔의 마음, 자신을 비우는 데 있다.

또한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될 때 복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산해진미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감사 할 줄 모르면 그 맛을 모르고 먹게 된다.

그러나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마음이 온전히 깨어 감사함으로 마시면 오묘한 맛을 느끼게 된다. 마음이 온전히 깨어 있으면 어느 순간 지혜(복) 또한 열리게 된다.

평화로운 침묵을 경험하다보면 내가 생각하는 그 생각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잡을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지만 느낄 수는 있다.

소유한 것 같은데 없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세상이치가 그러하다. 가진 것 같아도 없어지는 것도 많다.

이와 함께 소유와 무소유의 분별, 명예, 권세, 높고 낮음으로 나누던 차별이 살아있는 시간 속에서 없어지고, 또 영원하게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복은 어쩌면 줄다리기일 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기 쪽으로만 가져오려고 줄을 당기며 힘을 쓰는데 이는 결코 복을 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먼저 양보하고 섬김으로 내줄 때 비로소 복을 받는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풍성한 나눔을 실천한다면 복은 절로 찾아오게 되어있다.

식당을 경영하며 365봉사단(단장 김경환)에서 봉사를 하는 이상수 고문. 유귀숙 본부장이다. 부부인 그 분들은 평소에도 여기저기 좋은 일을 많이 한다. 매월 정기적으로 이웃 불우 노인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다.

특히 이상수 고문은 가수로서 어르신 위로 잔치에서 노래도 부르며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기도 한다. 가끔 자신이 소속된 봉사단원들에게도 먹을 것을 푸짐하게 제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당을 하다 보니 남는 음식이 많은데 버리기 아까워서 갖다 주려니 생각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은 것을 내놓는 아니라 봉사단원들을 먹이려고 일부러 자기가 값을 지불하고 사온 것이었다.

이런 분이 또 한분이 계시다 이 분은 법무부 참사랑위원(회장 김동환)으로서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 분인데, 이 분 역시 부부가 매월 이웃 불우 노인들을 초청, 점심을 대접한다.

그리고 매월 하루, 인근 우범지역을 순찰하며 마을 주민 치안에도 힘쓰는 김형수 법무부참사랑위원회 고문이시다.

이 분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부부들로서 자신들의 봉사를 드러내지 않고, 불우한 이웃을 찾아 묵묵히 봉사를 한다는 것이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바로 실천하는 분들이었다. 그 때 깨달은 게 있다. 먹기 전에, 쓰기 전에 먼저 떼어주고 나눠주는 것이 진정한 복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필자의 경우도 46년 간 가난한 이웃과 개척교회를 대상으로 봉사를 해왔다.

소년소녀 가장을 비롯해 독거노인·장애자 가정, 심지어는 필리핀 선교지에도 3년 간 현지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운동기구도 설치해주기도 했다.

또 우즈베키스탄 개척교회도 의류 등을 지원해 준 바 있다. 그래서 밍크 털모자를 선물 받기도 했는데, 진품으로 제법 값이 나간다.

이 모두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다 ‘알바’노동과 원고료 등으로 충당한다.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많지만 오히려 지금 내가 베풀 수 있음에 감사하고, 복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기에, 행복한 마음이 된다.

간혹 어떤 지우는 “내가 지금 하는 사업이 잘 되면 그 땐 얼마를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을 돕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욕심은 있게 마련이다. 사업이 잘 되면 더 크게 하려는 욕심이 생기기 때문에 먼저 쓰지 않고는 남에게 베풀 수 없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또 다른 친구들이 간혹 ‘자기 대신에 좋은 일 한다’며 통장에 입금을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은 참으로 공평 하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또 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도 감사한다. 또 필자가 사회봉사를 하는 것을 알고 매년 행사(골프)를 치르면서 받은 수입금 중 일부를 후원금으로 주시는 경희대 동문이기도 한 이 순숙 골프잡지 대표도 있다.

그 분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오랫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남모르는 선행을 베풀어 오신 분이신데,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도 늘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이분의 특징도 베풂의 마음으로 살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고 행복감에 젖는다는 것이다.

행복한 삶은 소박한 일상에서 얻을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복을 받았다고 생각할 때는 지금 불행을 모르고 있을 때라고 말하고 싶다 온 몸으로 받아드리는 차가운 냉기, 창밖으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음들, 고통과 슬픔 모두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더 행복하고 복을 받은 것이다. 우린 행복하기 위해 살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일을 한다. 누구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나 살아온 길이 있고 또 살아갈 길이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오십이 되고, 또 육십이 넘으면서 살아온 길이 살아갈 길을 결정하게 된다.’ ‘살아온 길’ 그리고 ‘살아갈 길’ 간결한 말이지만 우리 모두를 되돌아보게 하는 함의(含意)가 있는 말이다

‘몇 살’을 살았다 해도 살아온 길과 살아갈 길이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경험도 얻었다.

복을 받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돈이든, 재능이든, 물건이든, 남들보다 조금 더 있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그게 바로 복을 받는 것이다.

올해도 ‘설’을 전후, 몇 분에게 겨울 잠바와 쌀 등 일용품을 전달했다.

문득 ‘인간의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고 한 에릭 프롬의 말을 상기하며 ‘우리는 언제쯤 재물에 앞서 자기 존재의 가치에 관심을 돌리게 될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올 때도 빈손이었지만 갈 때도 빈손이다.

마지막으로 남이 입혀주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하나도 없다.

잠시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복을 받는 사람들이 됐으면 한다.

‘앞으로 살아 갈 길’은 곧 ‘살아온 길’이 될 것이다. 살아온 길보다 살아갈 길은 짧다. 그래서 덜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진정으로 복을 받기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섬기며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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