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건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던 병신년이 지나가고 붉은 닭의 해인 정유년이 찾아왔다. 어김없이 민족 명절인 ‘설’ 도 맞이했다.

이맘때쯤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가고 또 아침이 되면 정성껏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식탁에 둘러앉아 떡국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덕담을 한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다. 이때 등장하는 게 바로 세뱃돈이다.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인 ‘설’이 되었지만 정치적인 여파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 등으로 백화점의 선물 세트 판매가 부진하고, 재래시장마저 물가 상승으로 매출이 부진하면서 사는 사람이나 판매하는 사람이나 모두 울상이 된 명절이 되었다.

선물하기를 꺼리고, 그나마 선물을 한다 해도 예년에 비해 빈약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어린아이에게는 주머니를 두둑하게 하는 날이자 어른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설날. 이제는 옛날과 달리 세뱃돈이 최소한 5만 원이다.

그래서 설을 앞두고 어른들과 아이들 간에 희비가 엇갈린다. 어른들의 걱정거리 1위가 세뱃돈이다. 또한 아이들이 설 명절을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도 세뱃돈이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새해 안녕을 기원하는 세배가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세뱃돈 때문에 어른들이 난처해하거나, 세뱃돈 때문에 아이들이 으스대거나 풀이 죽기도 하는 대비가 눈앞에 그려진다.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권이 얼마 전부터 조선 최고 성군으로 꼽혔던 세종대왕이 그려진 1만 원권을 밀어내고,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5만 원권의 쓰임새가 그만큼 넓어지기도 했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여성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그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초등학생들도 세뱃돈으로 1만 원권을 주면 표정이 달라지고, 탐탐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무조건 신사임당 얼굴을 더 좋아한다.

설날에 세뱃돈을 주고받는 관습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또 세뱃돈 문화는 어디에서 전해졌을까?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세배를 하면 동내 어른들이 떡과 과일을 줬다. 설령 돈을 주더라도 마음을 앞세웠다.

새해 첫날 주머니가 텅텅 비면 1년 내내 가난할 수 있다는 뜻에서 아주 작은 정성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당시는 세뱃돈을 복(福) 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부모에게 절을 하자마자 ‘세뱃돈?’ 하면서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곶감 하나, 대추 하나를 주어도 감사해 했다. 세뱃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덕담이다. 우리 세시 풍속에서 설날 덕담은 그렇게 되었으면 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된 것으로 축하의 말을 들려준다. 언어의 주술적 힘이다. 설에 어른들에게 세배하는 관습은 예부터 있었지만 세뱃돈 문화가 전파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세뱃돈 문화는 중국에서 전해졌다는 설이 보편적"이다. 음력 1월 1일 중국의 최대 명절 춘제(春節)는 우리나라의 설에 해당한다. 이때 중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자식들에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에서 덕담과 함께 붉은 봉투 '홍바우'에 돈을 넣어줬다.

중국에서는 세뱃돈은 재앙을 막는 돈이라는 뜻의 '야수 이첸'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화폐 역사가 긴 중국은 세뱃돈을 준 역사도 길다. 문예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처음 역사에 등장하는 세뱃돈은 '염승전'"이라고 말했다.

염승은 주술로 사람이나 악령을 굴복시키는 일을 뜻한다. 염승전은 시중에서 통용되는 화폐라기보다 몸에 지니는 주술용 동전이다. 동전의 앞면에는 '대의 자손' '신춘 대길' '천추만세' 등을 새기고, 뒷면에는 용이나 봉황 등 상서로운 동물들을 새겼다.

"중국은 이런 상징적 화폐를 세뱃돈으로 주고받았다". 세뱃돈을 주고받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외에도 또 있다. 정확히 파악은 하지 못했지만 "유교 문화권에 속한 나라 대부분에 세뱃돈 문화가 있다"고 알고 있다.

베트남은 유교권에 속하진 않지만 중국의 홍바우와 비슷한 빨간 봉투 '리시'에 소액 지폐를 신권으로 넣어 준다. 대신 우리처럼 세배는 하지 않는다. 한편 일본식 세뱃돈 '오토시다마'는 어린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봉투에 넣어 돈을 준다.

오토시다마는 신에게 바치고 남은 떡 등을 주는 것이 시초였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어떤 세뱃돈 문화가 있었을까? 정확한 역사는 알 수 없지만, 민속학자들에 따르면 1800년대 조선의 풍습을 모은 '동국세시기'에서 세뱃돈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고 밝힌다.

어린아이들이 설빔을 입고 세배를 하는 풍습은 쓰여 있지만, 세뱃돈을 건넸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 세배를 받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떡이나 과일 등을 줬다. 조선시대에 설에 관한 재미있는 풍습이 있다.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은 설이 되면 세뱃돈 대신 짐승 이름을 적은 종이를 봉투에 담아 아이들에게 줬다"다. 예를 들어 기가 세고 성급한 아이에게는 '소 우(牛)'를, 약삭빠른 아이에게는 '돼지 시(豕)'를, 게으른 아이에게는 '닭 계(鷄)'를,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에게는 '거위 아(鵝)'를, 욕심이 많으면 '염소 양(羊)' 등이 적힌 글을 줬다.

세뱃돈 대신 아이의 성격에 맞는 덕담을 전한 것이다. 짐승 이름이 적힌 봉투를 받은 부모는 그 값으로 곡식이나 찬거리를 훈장에게 가져다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게 요즘 말로 촌지다. 비록 우리나라는 세뱃돈을 주고받은 역사는 짧지만, 그동안 세뱃돈을 받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세뱃돈을 받으면 복주머니에 넣어 소중하게 간직했지만, 해방 이후 경제가 나아지면서 세뱃돈을 받는 풍습이 보편화했다. 세뱃돈을 봉투에 넣어 주기 시작한 뒤로도 봉투 겉면에 용도를 적어 세뱃돈을 주는 사람의 의지와 바람을 담았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돈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효과가 있다. 현금으로 돈을 주는 게 당연한 시대에서 훈장님이 동물을 적어주는 정성처럼 현금을 주더라도 그런 정성을 살려 세뱃돈 문화가 개선됐으면 좋겠다.

필자는 올해도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흔이 된 장모님에게 1만 원 한 장을 세뱃돈으로 받았다. 80년 결혼 초부터 변함이 없는 1만 원권 세뱃돈이다. 지금은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화폐가치로 보아 그 당시는 큰돈이었다.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계셔 세뱃돈을 받는다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늙은이나 어린아이나 세뱃돈 받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런 세뱃돈을 주시는 장모님이 오래오래 사셨으면 참 좋겠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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