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뛰어난 제자 열 사람 중 자유(子遊)라는 제자가 벼슬길에 나가게 됐다. 이를 안 공자가 제자를 찾아가 물었다.

“자네는 사람을 구했는가.” 제자는 바로 “‘담대멸명’이란 자가 있사온데, 그는 지름길을 마다하며(行不由經) 공적인 일이 아니면 저의 방에 찾아온 일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는 매우 흡족해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논어 옹야 편에 나오는 고사(古史)다. 선현들은 ‘가까운 지름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갈지언정 바른 길(正導)가 아니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게 군자의 첫째 가는 덕목’이라고 후학들에게 가르쳤다.

공명의 도리를 달달 외었던 선비들이 한 번 벼슬길에 들고나면 책 속의 바른길을 깡그리 잊어버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중종 때 대사간 유세침이 군왕이 새겨야 할 덕목 7가지를 적은 상소문을 올렸다.

그중 다섯 번째 “분경(奔競: 엽관운동)을 억제해야 합니다. 선비 된 자가 친분에 의탁하여 아첨으로 구하고 오직 방계곡경(旁谿曲逕)을 다투어 모방하고 있으니 사습(士習)의 훼손이 이보다 심할 수 있습니다.”

방계곡경이란 숨은 계곡이나 샛길, 굽은 길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역시 정도가 아닌 길로 가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반계, 곡경, 방기곡경 모두 같은 뜻을 갖고 있는 말이다.

중종 초기라면 연산군을 폐위 시킨 반정 공신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니 그에 빌붙고자 하는 이들의 엽관 행각이 오죽이나 했겠는가. 강 건너 불 보듯 뻔하다.

현실 정치에 깊이 발을 담갔던 율곡 이이 역시 소인배와 군자를 구별하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소인배는 제왕의 귀를 막아 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방기곡경의 형태를 자행한다.”라고 한탄했다.

문득 영화 ‘간신’에서 연산군이 신하에게 물었던 대사가 떠오른다. “진정 날 바보로 만드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가?” 영화에서 왕을 바보로 만든 이는 채홍사를 자임하며 주군의 눈과 귀를 가린 간신 임숭재다.

이 영화는 폭군 연산이 전횡 가운데 미녀들을 끌어모아 나라가 어찌 되던 ‘주지육림’ 속에서 흥청망청 한 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산군 제직 시 관원과 내관들이 ‘입(口)은 화(禍)를 부르는 문(門)이요. 혀(舌)는 자신을 베는 칼(刀)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신언패(愼言牌)를 차고 다녔다.

이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거치면서 연산군이 유교국가의 근간인 언로를 봉쇄하겠다는 뜻을 암시 한 것이다. 전무후무한 전제왕권을 휘두르면서도 정변이 두려웠던지 폭군 연산군은 신하들로부터 ‘경서문(警誓文)’을 받았다. 경서문은 연산군에 대한 일종의 ’충성서약’ 이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23명의 대신들로서 대부분 폭군에게 아부하며 호의호식한 자들이다. 어떤 의미에선 간신배로 분류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중종반정이 터지면서 연산군은 왕좌에서 쫓겨났다.

그런데도 경서문에 서명했던 간신배 중 화를 당한 인물은 고작 3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20명은 발 빠르게 말(馬)을 바꿔 타고, 반정공신으로 변신하면서 화를 면했다. 그들이 충성한 것은 자신들이 모셨던 ‘주군’ 따위가 아니라 부귀영화였던 것이다.

자신들이 모셨던 주군은 쫓겨났는데 그의 충복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다. 요즘 여. 야 정치권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연산군 시대가 연상된다.

지난 총선 때 박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자신들을 뽑아 달라고 했던, 그리고 충성을 다짐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말을 바꿔 타고, 주군인 박근혜 대통령을 죽이며 ‘반정공신’이 되려고 한다. 또 칼날을 세우고 있는 인명진을 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친박 패권 그룹의 소멸이 임박한 것 같다. 추잡하게 목사와 집사가 싸우는 몰골이 되어버렸다. 감정의 파동은 이성의 판단보다 치명적이다. ‘정도’를 꺼리며 모두가 지름길을 택하고 있다. 이제 친박은 누가 뭐라 해도 주홍글씨로 낙인이 찍혔다. 수치스러운 이름이 되었다.

특검 진행을 보아도 문제적 상황에 직면 한 것은 최순실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란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방송 패널도 그렇고 언론도 무조건 박 대통령 죽이기에 초점을 맞추고 반정공신이 되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그래도 김정은의 무모한 행위에 대해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과감하게 대처하며 싸웠다.

개성공단을 폐쇄하므로 우리 국민이 불모로 잡히지 않게 손을 썼고 핵. 미사일을 대비해 사드 배치도 추진하며 군 최고 책임자의 역할도 충실했다. 또 성종처럼 잘못된 사안(정치, 언론, 문화 등)에 대해 칼을 들었다.

그 바람에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는 자들로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히면서 숱한 박해를 받으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주위에 간신배들로만 가득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당을 지키지 못하고 떠난 철새 같은 자들은 뽑아주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라며 무수한 비난을 자제 해달라고 했던 박 대통령. 이제 박 대통령은 숨을 곳도, 쉴 곳도, 퇴장할 곳도 없는 불운의 외로운 대통령으로 각인되었다.

지금 일본, 유럽, 미국 등 외신에서는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정치권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보면서, 헌재 탄핵 결과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도 2년이 걸렸는데, 대통령 탄핵을 이렇게 단시일에 처리한다는 것은 문제 소지가 많다.

그럼에도 일부 야당 정치꾼은 국민의 이름을 팔면서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고, 군 복무 기간을 1년 미만으로 단축시키겠다는 등 실현성 없는 말로 젊은이들을 현혹시키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일어난 화제 때 난 기사가 생각난다. 불이 난 집에 출동한 한 소방관은 집 안에서 고립된 한 마리의 개를 발견했다. 그 개는 사냥개로 유명한 도베르만이었지만. 집안에 불이 사방에 번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도베르만은 큰 소리로 짖어대기만 했다. 소방관은 그 개가 무서웠다. 가뜩이나 위급상황에서 신경이 곤두서있을 개에게 다가가기는 아무리 노련한 소방관이어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속에 있는 생명을 구하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는 급하게 달려가 도베르만을 품에 안고 빠져나왔다. 소방관은 도베르만을 무사히 구해낸 뒤 다시 화재 현장으로 돌아갔다. 불은 마침내 꺼졌고, 소방관은 주저앉아 한숨을 돌렸는데, 도베르만이 소방관 쪽으로 똑바로 다가갔다.

그리고 도베르만은 온몸이 시꺼멓게 그을린 소방관의 얼굴을 핥아 주었다. 사실 그 도베르만은 새끼를 밴 상태였다. 자신과 배 속의 새끼들을 구해준 소방관에게 다가가 사랑과 감사를 표현했던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생명을 외면하지 않고 애쓰며 구해준 소방관, 또 자신을 구해준 소방관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개(犬).

어쩌면 삭막하게 변해버린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 나라 정치인들이 ’도베르만‘의 발뒤꿈치만 닮아도 탐욕과 배반은 하지 않고, 정치가 잘 될 것이다. 할 것은 안 하고 입으로만 수천 번 떠든다고, 정치를 잘하는 게 아니다.

국민이 바라고 듣고 싶은 것은, 언어폭력이나 촛불시위를 하며 성토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과 도덕성이다. 이 나라가 정상적으로 되려면 정권을 견제하는 강하고 합리적인 야당, 신뢰받는 야당이 있어야 하는 데, 안타깝게도 입만 살아있을 뿐이다.

발목잡기는 더 이상 하지 말고, 대신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을 모색하라. 남의 눈에 묻은 겨가 아니라 자신의 몸에 묻은 똥 냄새를 맡으면서 반성할 줄 아는 정당이 되란 말이다. 거짓된 말만 무성하게 할 것이 아니라 뼈저리게 느끼고, 뼛속부터 변해야 한다.

정치를 모르면 열심히 배우고, 호남 광주 5. 18. 세월호 타령 말고, 더 많은 다수의 침묵하는 국민들을 위한 정책 고민도 하기 바란다. 욕심을 뿌리째 뽑지 않는 한, 바뀌는 것은 없다. 이참에 ’국민의 소리‘로 국회도 해산시켰으면 한다.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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