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시대의 양잠5

경북대학교 윤재수 명예교수
(농상교서(農桑敎書)계속) “이러므로 백성들의 생활이 날로 찌들어져 서로 도둑질하고 살상(殺傷)하기를 장차 못할 짓 없이 하게 되었는데, 어찌 사람이 편안해지고 물산이 풍부해져, 임금으로 하여금 하는 일없이 팔짱끼고 있게 할 수 있으며, 너의 백관(百官)들 또한 어찌 그 자리에 편히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말을 하게 되니 어찌 참으로 측은하지 않으랴? 이는 내가 침식(寢食)을 잊고 백성의 일을 깊이 진념(軫念)하는 바이며, 거듭 아랫사람들에게도 책임지우는 바이다.

옛적에, 집 주위에 뽕나무, 삼나무를 심지 않고 밭을 묵혀도 모두 부리포(夫里布)를 받았으니, 옥속(屋粟)의 세를 받음은 근로를 권장하고 태만을 벌하기 위함이었다. 백성들의 인정이란 구차하게 하루라도 편히 지내려고만 하여 한 해 지낼 계획을 홀만히 여기므로, 반드시 관장된 사람이 훈계하고 깨우쳐 잘 장려하고 돈독하게 권면해야만 한다.

밭을 일구고 퇴비를 주고 김매고 거두는 것과 뽕 따다 누에 치고 실을 빼어 베짜기까지, 반드시 시기를 일찍 서둘러 철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되고, 부지런히 힘써 미처 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되어야, 백성이 생계(生計) 꾸리기를 좋아하여 다투어 공력을 낼 것이다.

그래서 근면하고 화락한 기운이 상하에 젖어 수고로움을 시름하고 한탄하는 꼴을 볼 수 없게 된다면, 들에는 노는 땅이 없고 집에는 일용(日用)이 모자라는 일이 없게 될 것이요, 비록 바람이나 비가 철에 맞지 않고 충재(蟲災)가 일더라도 단지 조금 염려스러울 뿐 큰 해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일찍이 교유(敎諭)를 내려 수령들로 하여금 들판에 드나들며 오직 촌락을 안정시키고, 공사(公私)간의 일이 적을 때 수시로 순찰하여 부족함을 돕도록 하였는데, 만일 권농한다는 이름만 띠고, 추종(騶從)과 못된 아전들을 많이 데리고 가서 번거롭게 불러대고 호령한다면, 백성들을 요란하게만 할 것이니, 어찌 내가 바라는 뜻이겠는가? 무릇, 우리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각기 그 직책을 다하고 힘써 자기 무리를 격려하며, 선성들의 근본을 중시하신 교훈을 따르고, 과인의 백성 소중히 여기는 뜻을 체득하라.

생리(生利)를 일으키는 폐단은 제거하고 농사의 시기를 빼앗아 힘을 지치게 하는 일이 없으면, 거의 우리 백성이 산 사람을 먹여 살리고 죽은 이를 장사지낼 수 있게 되어 경솔히 가정을 버리고 고향을 떠날 마음이 없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요족해져, 부유(富裕)하고 자득(自得)한 낙을 이루게 되면 안으로는 친척들과 화목하고 밖으로는 향당(鄕黨)과 협조하게 된다.

송사를 다투는 일은 사라지고 간사한 짓이 일어나지 않으면, 따라서 교화가 이루어지고 풍속이 순후해지리니 형벌을 쓰지 않고도 국가가 편안하게 되리라. 옛적 당(唐), 우(虞)의 다스림에는 내가 비록 부끄러움이 있지만, 최원, 장감, 공수, 소신신 같은 사람이야 어찌 이때엔들 없겠는가? 경들과 함께 그 성공을 기대하노라.

중종실록 28권, 중종 12(1517)년 6월 22일 병인(丙寅) 3번째 기사에는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국가가 잠실(蠶室)을 두는 것은 곧 농사를 힘쓰는 아름다운 뜻입니다. 그런데 근자에 잠실에 관한 일을 보면 설립한 본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폐가 또한 적지 않습니다.

뽕을 딸 때에 여염집을 드나들면서 함부로 빼앗으므로, 민가에서는 춘잠(春蠶)을 할 수 없고 가축도 편할 날이 없는데, 또 새 잠실을 두어서 그 폐를 더하고 있습니다. 다 혁파할 수는 없다 해도 새 잠실은 없애 버리소서." 하고, 헌부가 아뢰기를, "종실 가운데 죽은 사람이 있어 국가에서 그를 위해 임금이 부의를 내려 치부(致賻)할 때에, 종성(宗姓)이면 단문(袒免)까지 하고, 이성(異姓)이면 상복 3개월에 해당하는 친족. 곧 본종(本宗)은 고조부모(高祖父母)와 소공(小功) 이하의 상복친, 그리고 이성(異姓)은 처부모와 사위, 외손 등이 해당되는 시마친(緦麻親)과 그의 처(妻)까지 하는 것은 《대전(大典)》에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호조(戶曹)에서 횡간식(橫看式)의 예(例)에 따라 ‘처자는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하니, 어찌 한때의 횡간으로써 만세 대전(萬世大典)의 본뜻을 깨뜨릴 수가 있겠습니까? 일체 ‘대전(大典)’에 따라 시행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반사(頒赦)와 백관의 가등에 관한 일은, 대비께서 미령하시다가 회복되었으니 군신 상하 누군들 기쁘지 않겠는가마는, 환궁하신 뒤에 다시 의논해서 하겠다.

사옹원 도설리(都薛里)는, 조종조로부터 계속 폐하지 않았던 것이니 내력이 이미 오래된 것이라 이제 없앨 수 없다. 새 잠실에 관한 일은, 선왕조에서 전지까지 주어 뽕나무를 심게 한 것이니 양잠지(養蠶地)를 지금 혁파할 수는 없다. 종실에 치부하는 일은 호조에 물어야 하리라. 나머지는 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국사편찬위원회, 중종실록 인용 및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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