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힘써 일하라”라는 찬송가가 있다. 늘 이 찬송을 부르면서도 ‘어두운 밤 쉬 되리니~’라는 의미를 잘 몰랐다. 부르기는 해도 ‘어두운 밤이 오는데 무슨 직분을 지켜야 한다는 것’ 인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흐르고 노안(老眼)이 찾아오니 아무리 불을 켜고, 책을 보려 해도 눈이 침침해 잘 보이지를 않는다. 나이가 들기 전까지는 ‘노안’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필자에게도 ‘노안’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글을 쓰는데도, 글자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돋보기를 겸한 ‘다 초점’ 렌즈로 안경을 바꾸었다.

그 덕분에 가깝게 있는 글자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노안이 온 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애꿎은 눈만 비비며 얼마나 많은 날들을 애태웠던가.

이렇게 안경을 바꾸고 나니 모든 글자나 물체가 선명하게 보이는데, 노안의 낌새를 못 느끼고, 글자가 안 보인다고, 속상해 한 것이 겸연쩍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애태움과 답답한 마음은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가족들이라도, 경험을 해보지 않고는 실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사물을 보는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교육에서 쓰는 용어 중 ‘피그말리온(Pygmalion) 효과’라는 것이 있다.

그리스 신화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백옥 같은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상을 만들어 살아있는 여인처럼 보살펴주었더니 조각상이 진짜 사람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피그말리온의 효과는 남이 나를 존중해주고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런 쪽으로 변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또 그렇게 효과를 얻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와는 반대로 ‘스티그마(Stigma) 효과’라는 것도 있다. 낙인이라는 의미의 스티그마 효과는 사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접근하면 결과도 기대치 이하로 나타나게 된다는 이론이다.

스티그마 효과는 피그말리온 효과와는 반대로 남들에게, 왕따 당하고,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시각에서 나쁜 쪽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거울 자아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즉 부모나 스승 또는 직장의 동료와 상사 등 남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생각하는데 따라 생각처럼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한 연구원에서 열 사람에게 자기 전에 커피를 마시게 하고, 또 다른 열 사람에는 우유를 마시게 했다.

다음 날 아침에 각각에게 반응을 물어보았다. 예상대로 커피를 마시고 잔 사람들은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를 마셔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우유를 마신 사람들은 잠을 잘 잤다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아주 딴판이었다.

전 날 밤 그들이 마신 커피에는 카페인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고, 오히려 우유에는 다량의 카페인이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입관을 갖고 있다 보니, 그들이 생각한 대로 효과가 나타난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서 나 자신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느냐 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시각에서 보고, 어떤 시각으로 느끼느냐에 따라 삶의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소 부족함이 있는 사람도 주위에서 좋은 말만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믿음을 준다면 그 사람은 ‘유능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이 많아도 무시당하고, 지적만 받는다면, 그 사람은 좌절하고 쓸모없는 ‘무능한 사람’ 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결점이 없는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아주 나쁜 사람도 없다. 단지 내게 잘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내게 나쁘게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쁜 사람은 결국 ‘나’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실과는 달리 자기 기준에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구별되는 것일 뿐이다. 또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길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좋고 나쁜 것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 소크라테스는 “세상에 일부러 못되게 구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를 괴롭히고, 상처 주는 사람이야말로 잔인한 괴물이기보다 스스로 병들어 괴로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쩜 그 사람이 자신일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증오나 공격성이 밖으로 불거지기 전에 마음속에서 삭이도록 기꺼이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여는 태도이기도 하지만, 남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이기도 하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주위에서 좋은 사람을 찾으려고 애쓰면서도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을 하지 않는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스티그마 효과’의 판단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복(福)을 갖고 태어난다고 믿지만 스스로 베풀고 쌓은 덕(德)이 복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것뿐이다.

설령 주변에 부족하고 맘에 들지 않는 이웃이 있어도, 따뜻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넉넉한 마음으로 인정해주고, 믿어주며, 칭찬해주자. 그래서 그들이 좋은 사람인 “나”를 만나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되면 그들도 머지않아 변화된 또 한 사람의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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