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의 비변책2

경북대학교 윤재수 명예교수
농상(農桑)은 생민(生民)의 의식(衣食)의 근원이온데, 본도(本道)는 수전(水田)의 이(利)와 양잠(養蠶)의 공(功)이 다른 도(道)와 다른 것이 없사옵고 비록 연변(沿邊)의 신읍(新邑)이라 하더라도 기후[風氣]가 심히 서로 다를 것이 없사와, 그 이(利)가 역시 그러하오나, 다른 토속(土俗)이 좋지 않을 뿐이옵니다.

그 권과(勸課)의 법(法)도 상례(常例)와 같이할 수 없사오니, 반드시 특별하게 권장하고 상주는 제도를 세운 후에야 흥행(興行)될 것입니다. 한(漢)나라 제도에 힘써 농사짓[力田]는 자는 효제(孝悌)하는 것과 차서를 같이하였삽고, 송(宋)나라 제도에는 매양 밭 1경(頃)을 경작하면 한 등의 벼슬을 주었고, 또 빌려 심으[借種]면 조세를 면하여 주었습니다.

청하옵건대, 길주 이북의 수령으로써 수전(水田) 3백 결(結) 이상을 경작하게 하고 뽕나무 3천 주 이상을 심도록 권장하여, 실적이 있는 자는 특별히 자급(資級)을 올려 주고, 인하여 본전(本田)의 조세를 3년 동안 면제하여 주며, 민호(民戶)로서 능히 수전 10결 이상을 경작하고 뽕나무 1백 주 이상을 심은 자는 2년간 복호(復戶)하여 권장하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북방의 바람과 기후가 강하고 거세어 풍속 습관이 용맹을 좋아하고 경서(經書)를 배우지 아니하와, 윗사람을 친하게 하고 어른을 섬기는 뜻을 아는 자가 드무오며, 간혹 배우는 데 뜻이 있는 자도 경서를 얻기 어려워, 혹 모사(模寫)하는 자가 있사오나 그 공(功)이 매우 어렵사오니, 청하옵건대, 여러 도(道)에서 간행한 경서를 많이 인쇄하여 널리 반포하옵고, 부지런히 교회(敎誨)하여서 그 경서를 통달한 자가 10인 이상이 있사오면, 그 교관(敎官)을 특별히 한 계급을 올려 주고, 학생으로서 능히 사서(四書)와 일경(一經)을 통한 자는 경직(京職)이나 토관(土官)으로 서용(敍用)하여 권려(勸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각궁(角弓)은 칼에 비하여 그 소용됨이 더욱 요긴하오니 출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도(本道)의 북청(北靑) 이남에는 활을 만드는 자가 드물고 단천(端川) 이북에는 좀 많으므로, 북청 이북의 군사들은 모두 각궁을 가졌사온데, 불량품이 많지 아니하오나, 홍원(洪原) 이남의 군사가 가진 것은 대개가 불량품이오니, 청하건대, 함흥(咸興)·영흥(永興)·길주(吉州)·경성(鏡城) 네 계수관(界首官)이 소속된 각 고을에 조궁소(造弓所)를 설치하고, 민간에서 사고로 죽은 우마의 뿔과 힘줄을 거두어 견고하고 치밀하게 조작하여, 군사에게만 팔아서 그 가격의 이익을 거두게 하고, 부러진 활을 수리하기 원하는 자도 허락하여, 그 수리한 것의 다소에 따라 역시 이익을 거두어, 모두 활 만드는 소용에 쓰도록 하되, 영구히 항식으로 삼으면 좋은 활이 많게 될 것입니다.”하니, 병조에 내려 의정부와 의논하게 하였다.

여럿이 의논하고 아뢰기를 “종성군(鍾城郡)을 뒤로 물려서 설치하자는 것은 이미 전에 결정한 의논이오나, 다만 백성이 번성하지 못하여 감히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갑자기 토지를 분할하여 붙이는 것은 옳지 못하오니, 물려 설치하기를 기다려서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입거(入居)하였다가 도망한 사람으로 찾지 못한 자는 그 친척이나 이웃[隣里]을 골라서 대신 입거하도록 허락하오면, 남도(南道) 각 고을의 향호(鄕戶)가 소요(騷擾)할 폐단이 무궁하오니, 본도 감사(監司)로 하여금 그 입거한 뒤에 도망한 인구의 수효를 갖추 기록하여 계문(啓聞)하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회령과 경흥의 정군(正軍)으로 말이 없는 자는 제주에서 흠 있는 말을 골라 내고, 본도 각 목장의 국용(國用)에 불합(不合)한 말을 모두 골라내어 분급(分給)하자고 한 일은 상언(上言)에 의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동량(東良)에 진(鎭)을 설치하는 일은 모름지기 친히 살핀 뒤에 그 가부를 결정할 일과, 길주 이북의 수령으로써 능히 수전(水田) 3백 결 이상을 경작하게 하고 뽕나무 3천 주 이상을 심도록 권장하여, 그 실적이 있는 자는 특별히 자급(資級)을 더하고 인하여 본전(本田)의 조세를 3년간 면제하여 주며, 민호(民戶)로서 능히 수전 10결 이상을 경작하고 뽕나무 1백 주 이상을 심은 자에게는 2년간 조세, 부역을 면제하여 농상(農桑)을 권장하게 한 일들은 백성들의 청원을 받아 시행하시기 바람니다.

여러 도(道)에서 간행한 경서(經書)를 많이 인쇄하여 널리 반포하는 것은 형편이 어렵사오니, 우선 각도에 있는 책판(冊板) 중에서 집주(集注)나 집석(輯釋)을 물론(勿論)하고 사서(四書)와 시(詩)·서(書)를 각각 1백 90건(件)씩 인쇄하여 예조(禮曹)에 보내, 예조에서 본도(本道)의 공사(公事)로 올라온 사람 편에 부쳐 보내게 하시고, 또 함흥·영흥·길주·경성 네 계수관(界首官)이 조궁소(造弓所)를 설치하자고 한 일도 백성들의 건의를 들어 시행 하시되, 그 미소(微少)한 수리는 공전을 받지 말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인용 및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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