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로 가쁜 숨을 내쉬던 여름이 흔적도 없이 달아나버렸다. 어느새 가을이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찬바람은 우리의 마음을 맑게 만든다. 가을은 결실에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을 ‘명경지수’라고도 한다. 맑고 깨끗하며 그 빛깔조차 영롱한 물. 깊은 산속 돌 틈에서 솟아나는 석간수처럼 투명하고 맑은 물을 말하듯 가을을 그렇게 표현 한 것이다. 그런 가을을 맞이하는 사람들조차 자연히 그러하듯 맑은 마음이 되어 정신이 고요해지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문득 지난여름 푸르던 잎을 자랑했던 나뭇잎들이 땅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짓밟혀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사가 떠오르며 허전한 마음이 되었다.

‘유연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 무연대면불상봉(無緣對面不相逢) 회자정리 거자 필반 생자필멸(會者定離 去者必返 生者必滅)’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게 마련이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고,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 법화경에 나오는 법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너무 일찍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고, 가장 불행한 것은 너무 늦게 사랑을 깨우치는 것이라고 한다. 잘났다고 뽐내던 이도, 명예를 얻고 부(富)를 누리던 이도, 두 다리를 제대로 뻗지 못할 정도로 좁은 방에서 살던 이도, 주머니 없는 수의(壽衣) 하나 걸친 채 알 몸으로 떠난다.

사랑했던 이도, 한때는 미워했던 이도, 시간이 흐르면서 곁을 떠난다. 봄날이 가듯, 많은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내 옆에 남아 있는 이들도 하나둘 떠나간다. 아무리 잘났다고 뻐겨대도 때가 되면 하늘을 바라보며 눕는다.

흔히 봄은 다시 돌아온다고 말하지만 그 봄은 지난해의 봄은 아니다. 올해도 예외 없이 추석을 앞두고 필자는 7개 개척교회에 쌀과 필수품 등을 전달하고 어려운 목회 생활에 대해 위로했다.

이 봉사는 6년 전 모 신학대학원 재학 시절 만들어졌다. 당시 동기생인 개척교회 목사 10명이 6000원짜리 식권이 없어 밥을 못 먹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당시 필자가 기수 대표로 있었다.

필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사실을 알고, 차마 외면할 수 없어 ‘한 학기 분 식대’를 대납하고 동기생들에게 식사를 하도록 조치했다. 졸업을 한 후부터는 계절별로 쌀과 필수품· 의류 등을 교회에 전달했다. 복날에는 가족 수대로 닭을 사서 전달하기도 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자신들도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더 어려운 교회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작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해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이 행복함을 느끼고, 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이외에도 원로·은퇴 목사들을 초청 오찬을 나누기도 한다. 어떤 목사는 식사 초청을 하면 안 오시려고 한다. 이유는 “목사님도 힘들게 노동을 하면서 번 돈으로 쓰시는데 자꾸 얻어먹는다는 게 염치가 없다”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인근 아파트 경비원 등 어려운 분을 찾아 소액이지만 ‘떡값’을 전하기도 한다. 이 떡값은 은행에서 모두 신권으로 바꿔서 드렸다. 집으로 들어온 추석 선물을 모았다. 이웃에 나눠주기도 한다.

이것도 베풀기를 좋아하고, 이웃을 내 가족처럼 사랑하는 집사람의 아이디어다. 칼럼을 쓰다 보니 칼럼을 게재하는 몇 개 신문사에서 매년 과일 등을 선물로 보낸다. 항간에는 이를 두고 혼자 고생하지 말고 후원금 받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모르는 소리다. 46년 전부터 사회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후원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예전에 기업인·의료인들이 접대를 많이 했다. 엄청난 돈을 지출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 후원금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하나같이 후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는다. 또 한 어떤 이들은 지금은 도울 수 없지만 향후 사업이 잘되면 엄청난 금액을 기부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사업이 번창하면 후원하겠다고 한다면 평생을 가도 후원할 수 없다. 후원하려면 지금 있는 것에서 하면 된다. 돈 많이 벌어서 도와준다고 하면 아예 단념하라”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그동안의 원만한 관계가 서먹해진다는 것을 알았고,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후원 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이후에는 누구에게도 부탁을 하지 않는다.

봉사활동은 내가 노동의 대가로 번 돈 범위 내에서 준비한다. 감사한 것은 고향 친구나 학교 동기들 몇 분이 간혹 계좌번호를 묻고 후원금을 보내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맛이 나는 것 같다. 봉사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된다. 힘도 생긴다. 기쁨도 충만해진다.

늘 감사한 것은 필자가 봉사를 하면서 그들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밝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베푸는 자로서 삶의 보람을 느끼며 오히려 그들을 통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올 추석에도 ‘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풍요함을 나누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내년에는 정치권도 그렇고 경제도 향상돼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며 베푸는 팔월 한가위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게임 등 운동도 중독(!)이 되면서 즐거움을 만끽하듯, 나누는 즐거움도 중독되면 최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주님의 작은 도구로 쓰이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베풂은 부도가 나도 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매미 울음소리가 끊기고 어느덧 귀뚜라미 소리가 나며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영락없는 가을소리다. 가을은 길렀던 것을 익히고, 풀었던 것을 거두는 때다.

그래서 ‘명경지수’ 가을 물처럼 맑은 마음으로 옷깃을 조용히 여미고 자성(自省)으로써 마음과 영혼을 아우르는 시간이다. 이런 청명한 가을, 필자는 무향. 무취. 무색의 마음으로 참 수행을 하며 내려놓는 삶을 살고 싶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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