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語)의 전파 속도가 광(光) 속에 비유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사회관계 망 서비스(SNS)가 활성화됨과 동시에 사람들이 말을 적극적으로 담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말·말·말’이라는 제목이 언론매체에서 주목을 받게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문제는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말의 타락’ 정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얼마 전에는 99%의 국민이 개돼지 취급을 받았지만 예상외로 세상은 말에 대해 만성이 된 탓일까. 덤덤하다.

육두문자를 빼곤 대화를 못하는 세태, 욕 없이 살 수 없는 청소년들의 모습들, 막말에 이어 악플, ‘아니면 말고’ 식의 유언비어와 헛소문이 여과 없이 인터넷을 도배질하고 다니는데도 속수무책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옛말이 있다. 또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다. 또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그만큼 말은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회지도층 인사나 정치인들을 보면 ‘감성적’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서도 그 말에 대한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다.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 말한 것처럼 국민들을 개돼지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다. 특히 정치인들의 말은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독(毒)이 될 수 있다. 작금에 사드 배치 논란 속의 우리 정치에도 이는 여실히 증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당론으로 찬반을 정하지도 못한 채 개별 목소리로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여론 분위기에 휩쓸려 무심코 말을 뱉었다가도 언론에서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다시 변명 일색으로 말을 바꾸느라 어쩔 줄 몰라 한다.

타이밍을 맞추지도 못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작태가 측은하기만 하다. 특히 정부를 비방하는 거친 말 한 덕으로 금배지를 단 야당 의원들의 경우 즉흥적인 말을 여과 없이 함부로 배설물처럼 쏟아놓는다.

말이라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할 수는 없다. 말에는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것이다. 또한 참된 말이라도 더러운 말이 있다.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덕을 세우는 말을 해야 한다.

덕을 세우는 말은 듣는 사람들이 은혜롭다고 느낄 수 있는 말이다. 분명히 거짓말은 아닌데 은혜롭지 못한 말도 있다. 정직하고 참된 말일지라도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은 선한 말이 아니다.

거짓말은 아닌데 그 말을 들으면 영적으로 손상을 입을 수 있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말은 누군가를 격려하고, 칭찬하고, 위로하는 말이 되어야 한다. 학벌과 지식과 관계없이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진실함을 뛰어넘어 선한 말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회지도층 인사와 정치인들에게 말을 낳는 혀의 사용에 대해 세 가지 지침을 들려주고자 한다.

첫째, 지도자들은 공인으로서 다른 이들보다 ‘혀’를 더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지도자들의 말 한마디는 그 영향력과 여파가 크다. 간혹 사회지도층 인사가 공식 석상에서 ‘부적절한 표현’으로 구설에 오르는 일이 종종 있다.

그때마다 어떤 이는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표현의 자유는 상대방의 인격을 훼손치 않는 범위 내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도 분명 경계선은 있는 것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지 무너뜨리는 건지를 생각해야 한다.

둘째, 혀가 지닌 엄청난 ‘잠재 능력’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혀는 말(馬)의 재갈이나 배의 키와 같이 그 크기에 비해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숲을 태울 수 있듯이 혀를 잘못 놀리면 자신을 파멸시키며 남을 불행하게도 만들 수 있다.

세치 혀를 길들이지 않으면 남과 자신을 죽이는 무서운 독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혀를 ‘흉기’로 사용하기보다 ‘이기’(利器)로 사용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남도 행복해질 수 있다.

셋째, 혀를 다스리는 능력은 그 사람의 성숙도와 비례한다. 살다 보면 말에 대해 실수를 할 때도 많다. 혀를 길들이기도 사실은 힘들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언행을 정당화 시킬 수는 없다.

아무리 ‘돌직구’가 만연하는 시대라 할지라도 ‘날것의 언어’보다는 ‘숙성의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숙된 모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 자신도 보호하고 상대방에도 예의를 표할 수 있다.

사람의 불행이 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탈무드에 나오듯 ‘물고기가 항상 입으로 낚이듯 사람도 입으로 낚인다.’는 표현에는 지혜가 담겨있는 것이다. 올해도 몇 개월 남지는 않았지만 지금부터라도 사회지도층 인사와 정치인들이 ‘혀를 지키는 해’로 마무리하면 어떨까.

칭찬하고, 좋은 말만 하는 여의도를 상상해보자 웃음꽃이 핀다. 말은 거룩한 도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혀를 주시면서 복을 주셨다. 그 혀로 모든 이에게 좋은 말과 함께 덕을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좋은 인간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평소 억지로라도 좋은 말을 많이 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감정이 앞서고 상처를 줄 것 같으면 아예 입을 다무는 게 좋을 듯하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정제하고 점검해야 한다.

거짓말은 물론 버려야 하지만 선한 말로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입으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달콤한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것이다.

후회할 말은 아예 입을 닫고 씨앗으로 심을 만한 좋은 말만 하면 두뇌가 활발해지고 생각이 바뀌면서 행동과 인생이 아름답게 변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16년. 남은 날이라도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며 ‘혀의 열매를 맺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오늘 이 시간도 내 가족과 또 이웃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보자.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주소서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 할꼬.”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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