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어떻게 해야 안정된 나라가 될까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곧잘 받는다. 개판이 된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검찰 수뇌에 이어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드러난 비리. 왜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국시대 초나라 왕이 어느 날 장자를 불러 벼슬자리를 제안했다.

이에 장자는 “초나라에는 죽은 지 3000년이나 되는 신령한 거북이를 상자에 담아 사당에 잘 보관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소. 그 거북은 죽어 뼈를 남기고 귀하게 되기를 바랐겠소? 아니면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더럽히면서 살기를 바랐겠소?”라는 말로 벼슬자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장자에 나오는 이 ‘거북이 꼬리’고사는 벼슬함으로써 속박되기보다는 가난해도 자유로운 생활을 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권력에 마력을 느끼며 스스로 진흙탕 속으로 빠져든다.

‘통일이 오래되면 갈라지고, 분열이 오래 지속되면 통합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정치권에서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균열이 빈번해지고 있다.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도 현 구도 체제에서는 차기 대권에 승산이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면서도 ‘게’처럼 서로를 물고 뜯으며 계파 간,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나 사드 배치 문제로 여야가 대립각을 세우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사드 배치는 당연하지만 내 지역구에는 안 된다.’ ‘국민의 의사를 무시 한 처사’ 또 어느 한심한 언론에서는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총리를 감금하고 폭력을 행사한 사태에 대해 수사팀을 구성하는 것을 경찰에서조차 과하다는 말을 한다는 기사를 쓰고, 안보를 빌미로 사드 배치 반발을 억누르며 국민들의 소리를 듣지 않는 대통령이 국론 분열의 장본인라고 질타한다.

정작 지적해야 할 북한의 ‘핵’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이고 어느 나라 기자인지 묻고 싶다. 지적하는 사설을 쓴다면 대안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닌가. 방어용 사드도 배치 못하게 하면 북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란 말인가. 적화통일을 바라는 것인가.

신문기자는 공인이 되어야 하고 기사도 편향된 기사를 쓰면 안 된다. 사실만 쓰면 되고 판단은 독자가 하게 해야 한다. 그런 말로 지역구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도 그렇고, 진보성향의 언론사 기자가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든다.

북한의 추가 도발이 예상되는데도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는 사드 배치 반대를 하는 시위를 벌이며 ‘북한의 핵은 우리와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북한을 두둔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 국가라는 것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마치 적화 통일을 바라는 것 같다. 자유를 만끽하는 행복을 마다하고 스스로가 감시를 당하며 끝내는 장택상처럼 처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을 바라는가 보다.

지금 사드 배치 문제 때문에 미. 중 관계도 균열이 생기고 한국이 난처한 입장에 놓여있는 판이다. 이런 때일수록 각 정당들이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어 국론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데, 아직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모두가 서로 간에 잘못된 만남으로 이뤄진 결과다. 독일의 문학자 한스 카로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라고 했듯이 우리네 인생사도 만남은 참으로 중요하다. 정채봉 시인이 그의 글에 5종류의 만남에 대해 말한 것이 생각난다.

정 시인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글에서 ‘생선과 같은 만남’ ‘꽃송이와 같은 만남’ ‘건전지와 같은 만남’ ‘지우개와 같은 만남’ ‘손수건 같은 만남’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잘못된 만남이 ‘생선과 같은 만남’이라고 지적했다.

만날수록 시간이 갈수록 비린내가 묻어나고 악취가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와 같은 만남인데 피어있을 땐 환호하다가 시들어버리면 버린다는 것이다.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라고 했는데 이유는 힘이 있을 땐 간수를 잘 하다가 다 닳았을 때는 시든 꽃송이처럼 버린다는 것이다.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와 같은 만남으로 금방의 만남이라도 순식간에 잊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라고 했는데, 힘이 들고, 땀이 날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퍼 눈물을 흘릴 때는 눈물을 닦아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5종류의 만남에서 앞서 언급한 정치인들이나 기자들은 어떤 부류의 만남이라 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그들과의 만남은 ‘생선 같은 만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나면 만날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악취가 진동하고, 비린내가 나는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의 바람이었소’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의 만남은 늘 소중하고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그런 만남, 땀을 닦아주고, 눈물을 닦아 주는 손수건 같은 좋은 만남이 되어야 한다.

그런 좋은 만남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 ‘생선 같은 만남’으로 서로가 괴멸될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사회문제는 안보위기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게 있다.

지금으로서는 통치자를 믿고 신뢰하는 길뿐이다. 안보 문제만큼 만은 국민 다수가 뽑은 국가 통치권자가 결정할 일이다. 그 결과로 망하고 흥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옛사람들은 앞날이 궁금하면 거북등을 불로 지져 갈라진 금으로 점을 쳤다고 했다.

예로부터 거북은 길흉을 점치고, 거울은 미추(美醜)를 구별해준다 하여 본받을 만한 모범을 귀감(龜鑑)이라 불렀다고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 정치판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게 참으로 어수선하고, 혼란스럽다.

사드 배치로 인한 미. 중. 한. 관계,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고 있는 북한, 여야의 갈등, 지역주민들의 반대 시위. 이 틈을 타 날뛰는 불순 세력 등등, 과연 누가 득을 보게 되는 것일까. 전망이 예사롭지 않다. 혹 거북점을 쳐보면 미래를 알 수 있는 답을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 세워진 대한민국. 믿음의 반석 위에 든든히 서 있는 우리나라가 자유민주국가로 지켜지고, 손수건 같은 만남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아름답고 화목한 우리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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