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의 일생(一生)

경북대학교 윤재수 명예교수

누에는 열심히 고치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아담한 집을 만들어 행복하게 삶을 이어 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꿈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누에의 꿈을 빼앗았습니다.

누에는 고치 짓기를 마무리하고 아름다운 삶을 간절히 갈구하였지만, 누에의 바람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치 짓기를 마무리하고 번데기가 되고 나방이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고 싶었지만 사람은 높은 열을 주어 누에를 말려 죽이고 말았습니다.

누에는 참으로 가여운 곤충입니다. 누에를 죽여 고치를 탈취한 사람은 누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잠령제(蠶靈祭)를 올려 주고 있습니다. 누에의 죽음에 대한 아주 작은 성의를 나타내는 행위이지요. 누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누에는 누에로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른 불평을 할 수 없습니다. 누에의 일생(一生)은 알, 애벌레, 번데기, 나방이의 4시기를 거쳐야 합니다. 이 4시기 중 가장 중요한 시기는 애벌레 시기입니다. 누에라고 말할 때는 이 애벌레 시기를 지칭하게 됩니다.

누에는 번데기가 되어 꿈을 펼치려 할 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좋은 말로 살신성충(殺身聖蟲)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활하게도 고치를 목적으로 하는 누에농사와 종자를 보존하기 위한 씨 누에농사로 구분하여 누에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고치를 목적으로 하는 누에 농사는 사견양잠(絲繭養蠶)이라고 합니다. 사견양잠에서는 고치의 질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종자 보존을 위한 누에 농사는 종견양잠(種繭養蠶)이라고 합니다. 종견양잠은 고치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누에 유충의 질을 목적으로 합니다.

누에가 건강하게 자라고 우수한 종자를 얻기 위함입니다. 요즈음은 누에를 사람들의 건강식품으로 이용하고 의료(醫療)용으로 개발 육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누에를 이용하려 할 때, 누에는 일생을 마치지 못하고 생의 중간에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누에는 인간에게 많은  이익을 주지만 인간은 잔혹하게 누에를 죽여야 합니다. 누에에 관한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의 지혜가 발달하지 못하고 인륜이 정착하지 못한 미개한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국가의 형태가 갖추어지지 못하고 부족사회를 형성하여 이웃 부족과 전쟁으로 토지와 생산물을 약탈하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부족 국가를 형성하여 국가를 운영하던 소국가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한 부족 국가의 임금은 이웃 국가와 전쟁을 하면 언제나 지곤 하였습니다. 이웃 국가의 장수가 너무나 굳세었기 때문에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상심에 쌓여 있었습니다. 임금님에게는 예쁘고 바느질 잘하는 외동 딸 공주가 있었습니다.

임금은 생각다 못해 “누구든지 이웃나라 장수를 잡아 오면 공주와 결혼 시켜 주겠다.”라고 공포를 하였습니다. 온 나라에 소문이 퍼져 나갔습니다. 수일이 지나도 아무도 이웃나라의 장수를 잡아 오지 못하였습니다. 임금은 마음이 초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궁중에서 기르던 힘이 센 말이 이웃나라 장수를 등에 태우고 왔습니다. 이를 본 궁중의 장수들이 달려들어 이웃나라 장수를 결박 지어 감옥에 가두어 넣었습니다. 임금은 군사를 동원하여 이웃나라를 쳐서 자기 나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임금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공주의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적군의 장수를 태워온 말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매일 말에게 맛있는 사료와 따뜻한 거적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공주는 임금에게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말에게 시집을 보내 달라 하였습니다.

임금은 하나밖에 없는 딸을 말에게 시집을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을 돌보아 주었고, 말 또한 공주에게 충성으로 따라 주었습니다. 공주와 말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고는 임금이 신하에게 명령을 내려 말의 목을 베게 하였습니다.

말은 억울하게 죽게 됩니다. 임금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공주는 너무도 안타까워 말의 가죽이라도 달라고 임금에게 간절히 청원하여 말의 가죽을 받았습니다. 공주는 말가죽을 펴놓고 그 위에서 즐겁게 뛰며 놀았습니다. 공주는 마냥 행복하였습니다.

어느 날 공주가 말가죽 위에서 따사한 햇빛을 받으면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말가죽이 공주를 싸안고 하늘로 날아올라 아주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임금은 온 나라를 샅샅이 뒤져 공주를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서 어느 시골마을의 아주 커다란 뽕나무 위에 말가죽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가죽을 뽕나무에서 내려 보니 신기한 벌레들이 바글바글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벌레를 자세히 살펴보니 “벌레의 머리와 가슴은 말 머리를 닮았고, 몸은 공주의 살결을 닮아 뽀얗고 부드러웠습니다.”

임금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불쌍한 우리 공주! 아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네가 이렇게 벌레가 되었구나.”하고 벌레 이름을 “누에”라 부르게 하였습니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쑥쑥  자라 흰색의 아름다운 고치를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고치에서 실을 뽑아 의복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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