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기자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정부가 주관하고 국내외 의료인, 의학자들이 참석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신라호텔을 간 적이 있었다. 겨우 개회 시간에 맞춰 신라호텔에 도착했다.

정문 앞에 대형 검정 승용차가 정차하면서 운전자가 내려서 현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몇 대가 다 그렇게 차를 세우고 간다. 그래서 필자도 자연스럽게 차를 세우고 차 키를 꽂아 놓고 내려서 현관으로 갔다.

그러자 정문 근무자가 “손님. 손님” 하면서 달려왔다. “어디서 오셨나요? 차 저렇게 세워두시고 가시면 안 됩니다.” “앞 차들이 다 그렇게 놓고 내려서 나도 그랬는데 왜 나는 안 된다는 거요?” “아, 그분들은.....” “뭐가 그분들하고 다른데” “차 빼주세요”

몇 분인가, 실랑이를 벌이다 별수 없이 차를 빼서 정문 입구에 세웠다. 이때도 이곳에는 주차할 수 없다며 언덕 위에 있는 주차장에 세우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근무자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때 외제 검은 승용차가 옆으로 와서 주차를 했는데 필자를 보고 인사를 한다.

“아, 국장님 어떻게 오셨어요.? 학술대회에 오셨나요?”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 모양을 본 근무자가 슬그머니 가버렸다. 그 당시 필자의 차는 ‘현대 액셀’이었다. 정문 앞에는 고급 승용차만 주차를 시킨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소위 말하는 갑 질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다. 또 한 분이 필자와 똑같이 앞 차를 보고 정문에 차를 세우다 근무자와 언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분은 모 대학의 총장을 지내신 분인데 퇴직 후 차를 소형차로 바꿔 타고 다녔다.

정문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 데 “어디서 오셨나요?” 하더란다. 성격이 호탕한 교수님은 그런 물음에 호통을 쳤다고 했다. “이봐요, 근무자 어디서 왔냐고 묻지 말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시오. 나 지금 집에서 오는 길이고, 오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왔소.”

마침 그 프로그램에 사회자인 제자가 멀리서 보고 달려와 교수님을 모시고 가는 바람에 더 이상의 논쟁은 없었다. 우리 인생에서도 ‘어디서 왔느냐’ 보다 ‘어디로 갈 것인가’ 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 한 분의 학자가 경기 파주시에 있는 ‘반구정’을 다녀온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반구정은 황희 정승이 87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돌아가시기 전까지 3년 동안 갈매기를 벗하며 여생을 보냈던 유적지다.

그곳 기념관에는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일화가 회자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김종서 장군과 관련된 일화가 새삼 와 닿는다. 김종서 장군은 일찍부터 용맹을 떨친 호랑이 같은 장수로서 겸손함이 부족해 중신 회의 때도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눈에 거슬렸지만 감히 그 누구도 장군에게 진언을 하는 관료가 없었다. 이때 황의 정승이 아랫사람을 조용히 불러 “장군께서 저렇게 삐딱하게 앉아 계신 것을 보니 의자가 삐뚤어진 것 같으니 빨리 가서 반듯하게 고쳐다 드려라”라고 지시를 했다.

장군이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장군의 오만함을 지적하고 잘못한 점을 따끔하게 나무라자 한 중신이 유독 김 장군에게 더 엄격하게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황희 정승은 “장군은 앞으로 나라의 큰일을 맡아서 하실 분이신데 혹시라도 장군의 훌륭한 능력이 작은 결점 때문에 그르칠까 염려되어 그렇소.” 황희 정승은 이미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은 언젠가는 늙어서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고, 다음 세대가 뒤를 이어 갈 것을 알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가 있었던 것이다. 요즘 난장판인 19대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선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지금의 자리를 영원히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거드름을 떤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비극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얼굴값’을 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꼴 갑’을 떤다고 말한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사고(지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얼굴값을 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도리를 잘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물의 얼굴이 아닌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꼴값은 얼굴값을 속되게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얼굴로 살아야 하는 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비난과 비웃음을 받고 있는 사람을 두고 지칭하는 멸시의 말이다. 사람의 속마음은 얼굴을 통해 잘 표현된다.

얼굴에서 그 사람의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고, 보이는 얼굴에서 보이지 않는 마음속을 파악할 수 있다. 좋은 평가는 혼자 차지하고 싶고 나쁜 평가는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은 게 사람의 심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행태는 결과적으로 나쁜 평가를 자신에게 덧붙일 뿐이다. 최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상시 청문회 법’을 놓고 야당이 고압적 자세로 협치가 없다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제 파악을 잘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선글라스를 낀 채 세상이 어둡다고 하는 꼴이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바로 밝은 세상이 보이는데 그 누구도 선글라스를 벗으려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꼴값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청문회를 실시해서 국민들의 평가를 받을 사람들이 국회의원인데. 자성의 빛도 없이 오만방자하게도 정부부처와 기업에 대해 상시로 청문회를 실시하겠다는 발상은 전례의 국정감사 등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로서는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혈세를 거머리처럼 뽑아 먹으며 온갖 특권을 누린 것도 모자라 또 권력의 힘을 휘두르려고 하는 인상을 준다. 불행하게도 지금의 정치판에는 황희 정승 같은 분도, 김종서 장군 같은 분도 없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미래도 모르는 것 같다.

19대 국회는 마지막까지 국민을 힘들게 하고 희망마저 잃게 했다. 지난 30일 국회에 등원 한 20대 국회의원들은 제발이지 19대 국회의원들을 닮지도, 답습하지도 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의원들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은 민생경제, 일자리 창출이 우선이다. 표를 의식한 세월호 진상조사, 5.18 행사에 따른 합창. 제창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업무상 주어진 특권외의 특권은 스스로가 폐기하는 변화된 의원들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의원의 신분을 나타내는 배지를 달자. 신분에 맞지 않는 노란 리본을 더 이상 달지 말고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과 그 유가족들을 놓아주자. 일부 정당과 사회단체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슬픔보다는 싫증을 느끼고 있다.

이제는 민생경제를 위해 정당을 초월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나누는 20대 국회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안다면, 홀로 가야 하는 길이란 것을 안다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수 있다. "지지(知止)면 불태(不殆)" 선을 넘지 않으면 위태롭지 않았다는 뜻으로 노자의 말이다. 20대 국회의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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