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끼어들어 수를 가르쳐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를 두고 훈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훈수를 두는 사람은 제삼자여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당사자가 아니어서 절박함이 덜하고 상당 부분의 생각이 지엽적일 수도 있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상황에서 왜 그런 자리에 ‘알’을 놓게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위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훈수를 많이 듣게 된다.

도움도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상황 판단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자칫 실패를 하는 경우도 많다. 수를 가르쳐주는 훈수도 참고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체험하며 경험을 쌓는 것이다. 인생의 삶의 과정에서는 기준이 없고 정답은 없다.

자신의 삶을 기준으로 훈수를 두는 것이 다 맞지는 않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훈수를 두되 제대로 두어야 진정한 “약”(藥)의 효과를 볼 수 있다. 20년 전 호텔 뷔페를 난 생 처음으로 갔다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길게 놓인 음식을 앞사람 따라 접시에 담았다. 큰 접시에 수북이 담긴 음식들, 한식. 중식. 양식이 함께 한 완전 혼합 잡탕이다. 처음 보는 싱싱한 생선회 및 해산물, 각종 고기류 등등, 아무리 먹어도 접시의 음식이 줄지를 않는다.

주위의 눈치를 보며 접시에 가득한 음식을 먹었다. 평소의 두 세배를 먹었으니 위(胃)가 정상일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었다. 처음으로 먹어본 잡탕의 음식들, 위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일단 약국에서 체한데 먹는 소화제를 사 먹었지만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불편한 위를 부여잡고 애를 태웠던 기억이 새롭다. 나중에 그런 곤혹을 치른 일을 경험이 많은 친구에게 말을 했더니 뷔페 먹는 요령을 자세하게 가르쳐 준다.

첫째, 한 바퀴 돌아보며 어떤 음식물이 있는지 볼 것. 둘째, 평소 못 먹어본 귀한 음식, 비싼 음식을 먼저 먹을 것. 셋째, 다양하게 먹기 위해서는 한 종류의 음식을 최소화할 것. 넷째, 뷔페에서 본전을 뽑으려면 기본이 세 접시는 먹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천천히 먹을 것. 다섯째, 뜨거운 음식부터 시작해서 찬 음식으로, 그리고 끝으로 과일 디저트로 마무리할 것.

이런 훈수를 듣고 난 후 뷔페를 먹게 될 경우, 미리 먹을 음식을 생각하고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는다. 필요한 음식을 선택하되 고르게 먹기 위해 조금씩 담아 와서 먹는다. 그게 어쩜 더 빠르게 먹고, 여러 번 가져다 먹을 수 있다.

그 친구의 훈수를 듣기는 했지만 나름대로의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며칠 전에도 결혼식장에 가서 뷔페를 먹는 기회가 있었다. 회원들과 함께 한 자리인데 한 회원이 다른 회원이 첫 접시에 김치와 김밥. 튀김, 떡을 가지고 온 것을 보며 그런 것으로 배를 불리면 정작 귀하고 비싼 회는 어떻게 먹겠느냐며 이런 곳에 오면 평소에 못 먹어본 음식을 먼저 먹어야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핀잔을 준다.

또 한 젊은 회원이 스파게티와 피자를 가득 담아온 것을 보고도 질겁하며 민망할 정도로 타박을 주며 내가 다시 가져올 때니까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회원들이 일단은 유쾌하게 웃고 떠들기는 했지만 그 회원이 가져다 놓은 음식이 수북이 쌓여있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친절하게 남을 배려하며 맛있고, 비싸고, 귀한 음식을 가져다준 것은 고맙지만 자기 취향에 맞지 않거나, 배가 불러 먹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그 회원의 생각대로 음식을 먹었다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훈수를 두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병’(病)을 주는 것이다. 자기만의 식성이나 취향과 음식의 양(量)도 고려했어야 한다. 순간 뷔페와 우리의 삶이 무척 닮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중요한 결심을 할 때 자기 앞에 놓여있는 것 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시간을 두고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사람들의 조언 등 간접경험을 통해 다양한 인생의 삶을 음미할 수도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눈앞에 놓여있는 많은 것 들 중 몇 가지를 선택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행하게 된다는 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서 뷔페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자기가 먹을 음식은 값이 비싸고, 귀한 음식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스스로 선택해, 남을 의식하지 않고 접시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뷔페처럼 우리의 삶도 자기 일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또 그런 선택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수를 두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에서 다른 사람의 삶까지 자신의 삶을 닮게 하려고 한다.

자신이 판단한 대로 가장 좋은 것을 많이 담아주고 싶은 마음에서 접시를 가득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단 음식은 비싼 것을 먹는 거야. 내가 알아서 가져올 테니 그저 먹기나 해” 남을 무척이나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때 나 대신 누군가가 뭘 먹을지를 정해주고 심지어는 갖다 주기까지 한다면 당장은 왕이 된 것처럼 기분은 좋을 수 있다. 더구나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던 음식이라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음식도 그렇지만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고자 하는 인생, 하고 싶은 일을 자신도 주저하는 데 제삼자인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고 결정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그런 배려에서 남이 갖다 준 음식이 비싸고 영양가는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다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자기가 먹을 것은 결코 남에게 의존하거나 맡겨서는 안 된다. 탈이 나고, 남을 탓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얼마 전 어느 학생이 생각난다. 사이버대학인 우리 학교 실용영어학과에 입학을 하기 위해 상담을 요청해온 학생인데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자가 된 30대 청년이다.

평소에도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며 입학에 대해 문의를 해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 청년은 꼭 배우고 싶은 과목인데,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니 엄마에게 설명을 해주고 입학하게 해달라는 말을 했다.

그동안 엄마가 시키는 것만 하다 보니 짜증도 많이 났다고 했다. 그 청년의 엄마와 통화를 했다. “생각해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게는 지적 장애자로서 열심히 하는 게 없고 모든 일을 끈기 있게 하지도 않고, 컴퓨터도 못하지만 금방 싫증을 내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분에 따라 그러는 것이라 학교에 보낼 수가 없다”라며 아들의 의사를 무시하며 거절했다.

그 청년의 말을 들어보면 깨임이나 페이스 북을 잘 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결국 그 청년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접시에 담아 갖다 주면 그 음식을 먹듯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엄마의 삶을 사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하지만 훈수를 잘 못 두고 있는 것이다. 그 청년에게 ‘뷔페 같은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며 생각해보라고, 그리고 너의 접시에는 반드시 네가 좋아하고, 먹고 싶은 것을 담으라고, 그래서 정말로 맛있게 먹고 영양 섭취를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우울하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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