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평생을 살다 보니 마음에 와 닿는 독특한 두 단어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 ‘믿는다.’라는 말이고, 가장 하기 힘든 말은 ‘용서해 달라.’는 말이라는 것이다.

‘당신만 믿는다.’ ‘나만 믿어요.’ 이 말은 상대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보여준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다른 생각도 할 수 없다. 성경을 보면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기록되어있지만 어쩜 그 믿음 속에는 ‘소망과 사랑’이 모두 포함된 지도 모른다.

소망이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누구에겐가 어떤 일을 부탁할 때,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기보다 ‘그저 당신만 믿어’ ‘나만 믿어’ ‘나 못 믿어?’라는 말을 한다.

이 말 한마디는 자신의 간절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믿는다’ ‘믿어라’라는 말에는 모든 것이 포함된 것이다.그 말 한마디가 신뢰를 주기도 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믿어라’ ‘믿는다.’라는 말이 아주 무서운 말이 되어버렸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어라’ ‘믿는다’라는 말을 남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험악한 세상이 되면서 믿음보다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不信)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고, 신용카드도 사용할 때마다 기록이 되고, 위험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거리에서조차 감시를 당하면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는 우리가 되었다.

심지어는 직장 내에도 CCTV가 설치되어 사생활까지 침해를 받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신하는 가운데 서로를 감시하는 삶의 터전에서 우리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슬픈 삶을 살고 있다.

지능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의식수준은 높아졌지만, 상호 간에 대한 믿음은 퇴색되어 잊혀진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가슴으로 보고 느끼는 믿음’이란 말이 가장 무서운 말이 되어버렸다, 반면 가장 말하기 힘든 말은 ‘용서해 달라’ 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기보다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어떤 한 사람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지만 경험 부족으로 파산 지경에 이르렀으나 돈을 빌린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돈을 빌려주지 않았으면 사업도 하지 않았고 빚도 지지 않았을 것 아니냐며 친구를 원망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이때도 그 친구에게 면회 오기를 간청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돈을 빌려 달라며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지난날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5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출소를 해보니 아내가 전 재산을 갖고 다른 남자에게 도망친 뒤다. 그 후 아무도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자 세상을 원망하는 유서를 써 놓고 부모가 묻힌 산소에서 음독자살을 했다. 결국 용서를 받지도, 하지도 못하고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말은 용서해 달라는 말이다. 얼마 전, 욕을 하면서도 보는 인기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청률이 30%대를 넘나들었던 MBC 드라마다.

늘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여자가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 평생 칼을 갈아온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그린 드라마였다. 극 중에서 자신의 딸이 누구인지 아는 상황에서 딸을 보호하며 부모를 죽음으로 내몰고 그것도 부족해 회사까지 빼앗은 극악무도한 짓을 벌리고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남편에게 오로지 복수를 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여주인공은 “극 중에서 복수가 제대로 이뤄질 때마다 쾌감을 느꼈고, 때론 시작부터 끝까지 복수만 하다가 끝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권선징악, 인과응보가 반드시 있어야 하겠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하면 또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용서를 했다면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가 평화로운 삶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그 드라마는 욕을 먹지도 않고, 인기도 얻지 못 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드라마 역시 아빠를 죽인 원수를 향한 복수를 위해 15년을 기다린 한 소녀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막장드라마다.

이 드라마에서도 여주인공 소녀는 자신이 악령의 거대한 괴물이 되고 있는 것을 의식하며 이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 소녀는 니체의 명언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라는 말을 전면 부정하며 “신이 죽었기 때문에 괴물이 필요 하다.” 독백처럼 말하고 “악”(惡)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선(善)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려 한다.

사악함을 번갈아 보여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스릴러 장르 특유의 쾌감을 배가 시키며 전개되는 드라마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 이 사회가 점점 더 삭막해지고 믿음조차 잃어버리고, 용서하는 마음까지도 메마르게 되면서 이 같은 막장 드라마가 욕을 하면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참으로 비통하고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불신으로 인해 불현듯 불어닥치는 불행한 상황들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자신을 용서하는 것조차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어려운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이를 이겨낸다면 분명히 아름답고 소중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만큼 말이란 무섭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또한 그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한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시편 15: 2~3. 5>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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