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노조 '원직복귀'…"차라리 ERP를 했다면…"

한미약품 영업사원들이 노조를 설립했다. 영업사원이 주측이 된 노조 구성은 한미약품 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한미약품 노조원들은 회사의 일방적인 대기발령은 불법이라고 말한다. 노조 설립 전 고용불안에 떨었던 자신들과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노조 설립은 '했어야 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원직 복귀'를 희망하는 이들은 왜 노조를 설립했을까.

메다팜스투데이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설립 필요성을 강조했던 노조원들의 발언을 재구성해 그들이 노조를 설립하기 까지의 과정을 살펴봤다. 

서울의원을 담당하고 있는 20년 베테랑 영업담당자인 나는 지난해 5월부터 회사 내부를 떠돌던 '구조조정' 소문이 7월이 되자 권고사직을 받는 직원들의 출연으로 기정사실화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이후 권고사직을 받았거나 근무 연수가 긴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기발령' 통보가 속속 떨어졌고 나도 회사측으로부터 구두 통보를 받았다.

'대기발령' 통보를 받은 영업사원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CP를 위반했거나 10년 이상의 장기 근속자 이거나.

회사에서는 대기발령자 선정 기준으로 근속연수 60%, 실적 20%, 근무태도 20%를 고려해 대상자를 선발했다고 했다.

나는 근태도 실적도 모자라지 않았다. 해당되는 사안은 오로지 근속연수가 길다는 것 뿐이었다.

그동안 매해 2~3% 정도 '꼬리 잘라내기' 형식으로 유지되던 영업인력 조정이 '대기발령'으로 공식화되면서 구조조정 수순을 따르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회사는 지난해 말 구조조정 전문가인 김모 부사장을 영입했다. 우려가 현실이 됐고 그 현실이 내게로 왔다.

연말을 즈음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노조 설립'과 '법적구제신청'에 대한 방안을 알아보고 있었다. 회사는 이 소식을 접하자 즉각적인 개별면담을 진행했다.

회사를 나가지 않고 대기발령 상태를 유지하던 나는 '신규전담팀'이라는 곳에 배속됐다. 해를 넘기며 회사와 면담을 진행하던 사람 중 20여명에 가까운 이들이 이 과정에서 회사를 떠났다.

신규전담팀에 소속되면서 나는 서울의원 담당에서 제천지역 담당으로 지역이 변경됐다. 덩달아 떨어진 징계 내역은 나에게 더이상 회사를 다니지 말라는 압박과 다름없었다.

일일보고를 하지 않거나 주간보고를 하지않으면 1회 경고를 내리고, 지각이나 리포트를 제출하지 않아도 경고를 내린다고 했다. 실적에서는 4개 매출처의 월 목표액 50만원을 채우지 못해도 1회 경고를 내린다는 것이었다.

6회의 경고가 누적되면 징계가 내려지는데 해고를 할 수 있다는 사실상의 선전포고였다.

정보도 막혔다. 영업사원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회사 사이트에 우리는 접근할 수 없었다. 필요한 정보를 다른 영업사원에게 듣거나 회사에 요구해서 받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회사는 필요할 때 정보를 주겠다는 식이다. 콜에 대한 비용도 영업사원 활동비로 지원이 되는 건데 그 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지방으로 발령이 됐기 때문에 숙소에 대한 문제도 개인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우리는 회사가 직원에게 지원하는 모든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

여기에 연초 배신감이 들만한 소식도 들려왔다. 대대적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된 임성기 회장의 '전직원 대상 주식증여' 명단에 나는 없었다.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20년간 몸바쳐 일했던 회사는 나를 '직원'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회사는 잔치분위기인데 나는 외로웠다. 20년동안 회사에 바친 세월이 허망했다. 지난 5년간 매출이 정체된 시기에도 퀀텀프로젝트라는 희망을 가지고 연봉 동결도 감수하면서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일했다. 우리의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왜 대상이 될 수 없냐고 물었다.

회사 관리자급 임원이 내게 전한 말은 "한미약품과 함께 갈 사람에게 애사심을 주기 위한 주식증여이지 발령대기자들은 내보낼 사람이기에 제외시켰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나아지겠지"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불안한 마음이 한 순간에 '배신감'으로 돌아선 찰나였다. "힘들어도 회사를 키우자"며 사원들과 결속력을 다지던 내 과거가 배신당하는 순간이었다.

눈치만 보던 '노조설립' 현실로 

나는 생각을 바꿔 노조를 설립해야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나의 고용도 보장하고 나와 같은 후배들을 만들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도 간절했다.항상 회사가 커가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절차를 밟아 힘들더라도 후배들을 위해서는 고용 불안에 쫓기듯 일하는 일터는 만들지 말아야하지 않는가.

그동안은 노조가 없었기 때문에 연봉계약을 포함한 대부분이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때는 직원들을 강제로 내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노조의 필요성도 회사의 부당함도 느끼지 못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회사는 구조조정 수순을 밟고 있다. 이미 회사 내부에서는 올해 안으로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200명 가량 해고를 시행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1월 초까지 확인한 바로는 80여명이 회사측으로 발령대기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1월 노조 설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회사측이 더 이상 발령대기자를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월부터 3월 현재까지 발령대기자는 한명도 없었다.

노조를 설립한다니 문의도 많아지고 있다. 가입을 하고 싶다는 의견이 대다수이고 의견을 밝힌 사람만 20여명에 이른다.

지금은 회사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가입 의지를 공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며 노조위원장인 나의 이름도, 노조원들의 이름도, 노조가입 인원수도 밝히기 어렵다는 것을 양해해 달라.

노조는 노조설립인가를 지난달 29일에 받았다. 회사측에 단체교섭을 위한 공문을 전달했고, 답변을 22일까지 달라고 했다. 지금은 회사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조합활동에 회사가 무대응으로 나오면 집회를 하거나 1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차라리 ERP를 했다면…"

많은 기자들이 묻는다. 한미는 왜 구조조정을 하느냐고.

한미약품은 한동안 매출이 정체돼 있었다. 여기에 MSD본사와 계약 체결로 인한 CP 강화를 추진해야 했다. 강도 높은 CP규정이 생기면서 영업환경에 변화가 일었다.

영업인력이 상위 다른 제약사와 비교해도 2~3배나 많았기 때문에 과도한 인력이 회사 발목을 잡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 판단이 섰을 것이다. 대대적인 인원 감축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이유일 것이라 본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가 일방해고와 관련된 법안을 발표했다. 맥이 맞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충분히 ERP를 시행해도 됐었을 상황인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한양행도 국내업계에서 드물게 지난해 ERP를 시작했다. 상황이 변화하는 것을 감지하고 실행한 것이다. 한미약품은 충분히 ERP를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글로벌제약사를 지향하는 한미약품이 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나 부당하게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안타깝다. 이것이 빨리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억울함이 있지만 단순히 우리의 억울함으로 끝나서는 안되는 문제다. 원직 복귀를 위해 뛸 것이다. 원직 복귀가 되더라도 노조는 계속 운영할 것이다. 우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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