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새해를 며칠 앞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의 온도가 60.8도로 지난해 같은 기간 56.6도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공동모금회는 지난달 23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두 달여에 걸쳐 3430억 원을 목표로 모금 운동을 하고 있다.온도탑 수은주는 모금 목표액의 1%가 모일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성탄절이 낀 연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바빠지면서 분주해진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과대포장해서 지역주민들에게 공개하고, 사람들은 한 해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며 묵은 때를 씻기라도 하듯 동문회나 송년회 모임을 갖고 일상 속에서 아쉬웠던 동료 및 지인들과 회포를 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해 보았던 지인이 보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재벌가,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인, 학식이 많다고 칭송을 받던 학자, 언제까지나 영원한 삶을 살 것 같았던 그들이 우리 주위에서 떠났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떠나면서 아무것도 갖고 간 것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세월에는 누구에게도 특혜를 주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욕심을 뛰어넘어 과욕을 부리면서 삭막한 삶을 살고 있다.

떠난 이들을 생각하면서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무척 추운 겨울날이지만 우리를 훈훈하게 만드는 소식도 간혹 들려온다. 대부분의 직장이나 단체가 송년회 모임을 갖고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그런 송년회를 갖는 대신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찾아 봉사 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어 우리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기도 한다.

삼성 임직원이 송년 행사 대신 쪽방 촌을 방문하는 등 연말 이웃을 위한 사랑의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전 계열사 2000여 개 봉사 팀이 목도리. 내의 등 방한용품과 식재료 등을 전통시장에서 구매 70여 개 복지시설에 전달하고 성탄절 전후로 전국 100여 개 지역아동센터를 방문 어린이들이 필요로 하는 어린이 백과사전 등 연말 선물을 전달하면서 온정을 나누었다.

우리은행도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이웃 돕기 성금 10억 원을 기탁한데 이어 우리은행과 자매결연을 맺은 사회복지시설에 ‘우리 사랑기금’을 전달하는 등 전국 900여 개 영업점 직원들이 참여하는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2009년부터 매년 이 같은 봉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일부 파출소에서도 치안을 담당하기도 벅찬 가운데 송년회를 하는 대신 그 돈을 어려운 이웃에 기부한 아름다운 미담의 사실이 알려져 따뜻한 인정을 느끼게 했다.

얼마 전에는 구세군 자선냄비에 1억 원을 기탁하면서도 자신을 알리지 않은 분도 계시다. 이 분은 자신이 드러나기를 꺼려하면서 단지 좋은 일에 쓰이기를 바란다며 “작은 성의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쪽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전세를 살고 있는 한 연예인 부부가 집 없이도 행복하니 기부부터 하겠다며 선뜻 1억 원을 사회에 기부했다. 그들 부부는 집이나 빌딩을 갖기 이전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훨씬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자신도 생활보호 대상자로 근근이 살고 있는 할머니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노동을 하면서 번 돈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금을 감면받기 위해 기부하거나, 아니면 신문방송에 족적을 남기기 위해 기부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이 분은 거액의 기부를 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목적만을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기부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망설인다. 모 단체의 대표이기도 한 한 지인은 10K 짜리 쌀(1만원) 20포를 관내 사회기관에 기부하면서 지역신문에 대문짝만 한 사진과 더불어 미담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이기에 마음보다는 남에게 실적을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중소기업 대표인 어떤 분은 “나눔은 좋은 게지요. 그래서 저도 이제 이번 일이 잘되면 그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사고를 갖고 있는 그분은 평생 가도 기부를 하지 못할 분이다.

기부란 내가 먼저 쓰기 전 먼저 떼어주고 나눠주는 것이 진정한 기부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기부의 의미는 물질이 넉넉한지 아닌 지를 떠나 정신이 넉넉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기부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도 기부를 할 수 없다.

남의 눈치를 보며 하는 기부, 죄를 덮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기부, 나쁜 기업 이미지를 바꾸려고 하는 기부, 등등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오염된 기부 이외의 모든 기부에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흠뻑 배어있는 진정한 기부다.

이처럼 기부(나눔)은 주고받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운 행위가 되려면 반드시 기부자에게 기쁨이라는 요소가 첨부되어야 한다. 만약 기쁨 없이 주고받는 요식 행위라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하고 그 표정 또한 어색할 것이다.

그래서 기쁨을 가지고 나누는 행위는 당연한 미덕이고 영광일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산성 설교를 할 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생각난다. 한 아이가 어머니가 정성껏 준비해 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예수님께 드렸다.

자신이 독식을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었지만 그 주위에 있는 수천 명의 군중들이 배고파할 것을 알고 소중한 자신의 먹을거리를 예수님에게 드린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평균 이하의 생활을 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그들이지만 그 시점에서는 말씀보다 더 필요한 것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중을 아셨는지 혼자 먹어도 부족할 그 양식에 축사하신 후 모든 이들에게 나눠주셨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음식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날 수 있을까? 결과를 생각하기 전 분명한 것은 먼저 생각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눔은 이처럼 기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아합시대 때도 지독한 흉년을 겪던 사르밧의 한 과부가 자신과 아들의 마지막 양식으로 남겨두었던 가루 한 줌과 기름을 선지자인 엘리야를 위해 나구고 베풀었을 때, 자신의 통에 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을 보게 된 것도 똑같은 이치다.

그래서 나눔(기부)은 최고의 미덕이고, 영광일 뿐만 아니라, 하늘을 움직이는 기적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예수님도 온유한 자가 복이 있고, 긍휼히 여기는 자도 복이 있다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주는 자는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 말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나눔이 없는 삶은 불행한 삶이 될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 일부 언론사나 지인들로부터 식사를 하자는 제의가 엄청나게 들어와 선택을 할 정도로 분주하다.

다소 오만함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이 같은 결과는 언론사는 원고료를 제대로 받지 않아서, 그 외의 지인들은 내가 이웃과 나눔의 삶을 산다는 것을 알고 있거나, 또는 내 칼럼을 보면서 감사의 의미에서 식사 초대를 하는 것 같다.

베푼 만큼 다시 내가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에는 영주에 사시는 믿음의 자매님이시며 독자이기도 한 분이 사과 한 상자를 택배로 보내오셨다. 이 분은 얼마 전에도 사회봉사 후원금을 보내주시기도 한 분이시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분이다.

사과 상자를 보고 아내가 “또 남들에게 다 나눠 줄 거지요. 집에 있는 식구들도 좀 생각해줘요.” 말하며 웃는다. 남편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런 아내는 필자보다 더 베풀기를 좋아한다. 내게는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다.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2015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병신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마지막 달 12월에 ‘나’만을 생각하기보다 ‘너’ 와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내 가족을 챙기기 전 이웃을 살피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돌아보기 전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아름다운 나눔(기부)의 여유를 가졌으면 참 좋겠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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