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서 펴낸 ‘유비평전’을 보면서 ‘유비’를 그려보았다.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유비는 그렇게 뛰어난 인물도 아니고 제왕이 될 만한 그릇도 못되었다.

유비는 능력 있는 신하와 지략이 뛰어난 장수 등 후계자를 제대로 두지 못해 조조와는 천하를 다룰 수 없을 만큼 무력했다.

흔히 조조를 간사한 자로 지칭했지만, 유비는 배경, 지략, 재능, 식견, 학문, 후계 등 어느 것 하나 조조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평가되었다.

오나라 손권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유비는 은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조조나 손권과는 인생의 출발부터 달랐다.

특히 군사전략에도 밝지 못해 숱한 전투를 치르면서도 승전고를 울린 적이 드물었다. 정치적으로도 멀리 내다보는 안목과 식견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오래도록 뭇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저자인 ‘장쭤야오’는 ‘유비가 위대한 업적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를 정도로 리더십이 강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당양 장판에서 패배한 뒤 조조로부터 후퇴하던 유비가 자신을 따라나선 10만 백성과 끝까지 함께 한 일화는 유명하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실책이 아닐 수 없지만 중국사(史)에서는 굉장히 드문 결단이었다.

광활한 대륙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며 때론 숙청과 학살을 자행한 역대 군주 중 유비는 후세에까지 인간을 중시한 지도자로 불리고 있다. ‘민심을 얻어야 천하를 얻는다.’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사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은 유비는 정치도 너그럽게 펼쳤다.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제14대)이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거목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적통 가신(家臣)을 내세우며 빈소를 지키는 모습을 TV로 보았다.

김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최형우를 비롯해 서청원, 이명박, 손학규, 이재오, 홍준표, 정의화, 김태호 의원 등 낯익은 얼굴도 눈에 띈다. 김 전 대통령은 인색하지도 않았고 돈도 잘 썼다. 그래서일까 그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현재 의원들 중에는 상당수가 김 전 대통령의 휘하에서 맴돌았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인맥관계가 좋았던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3김 시대에서 유일하게 남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보였다. ‘정치는 허업이다.’라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이와 함께 몇 해 전 인기 드라마로 방영된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하셨습니까? 보십시오. 폐하, 제 사람들이 옵니다. 폐하의 사람들이 아닌 이 미실의 사람들이 옵니다. 또한, 이제 미실의 시대이옵니다. 폐하” 많이 먹으면서 그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식탐(食貪)이 있다고 말한다.

이성(異性)을 밝히면서 제 본분을 잊는 사람에게는 색탐(色貪)이 있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제 몫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탐’이라는 글자가 따르게 마련이다. 업무를 핑계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술만 푼다면 그것은 탐배(貪杯)라고 한다.

술을 탐한다는 뜻의 탐주도 매 한 가지다. 탐내는 것이 하도 많아 더럽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에게는 탐묵(貪墨)이라는 형용이 따른다. 탐욕으로 마음 등이 시커멓게 변한 사람을 두고 하는 표현이다.

재물에다가 색까지 밝히는 사람은 탐닉(貪溺)이 상태다.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에 발을 들인 것이다. 음식이나 색욕(色慾) 등 특정한 대상 외에 무엇이든지 절제 없이 밝히는 사람은 탐람(貪婪) 하다는 말을 듣는다. 탐람(貪濫)이란 단어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정해진 몫 이상의 것을 찾아 좇다가 자신을 망치는 일, 또는 그 결과가 탐오(貪汚)다.

여야 모두가 자신들이 김 전 대통령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후계자라며 벌써부터 지역구 관리에 들어간 많은 의원들,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 일진데 듣지 않으려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군자의 면모와 향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들의 몰염치가 풍기는 쉰내가 이렇게까지 악취가 날 줄은 몰랐다. 악취로 지면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다. 바람이 있다면 현역 의원들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물러날 때를 알고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년에 데뷔 30주년을 맞는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 감독이 한국에서 마지막 은퇴 무대를 가졌다. 은퇴와 관련, 강 감독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무대”라며 “능력 있는 후배들이 세계에 이름을 떨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고 말했다.

발레리나로 한국에서 마지막 은퇴 무대를 여는 그녀는 아쉽고 서글픈 공연이 될지도 모를 이 종연(終演)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해 국립발레단장을 맡으면서 은퇴를 결심했어요. 발레단에 이렇게 능력이 좋고 기량이 뛰어난 발레리나가 너무 많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제가 공연을 하면 할수록 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나요? 바통은 제일 좋은 자리에 있을 때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하는 후배가 너무 많아 이제는 왕관을 물려줘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이런 예술가들도 하는 일을 왜 국회의원들은 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젖어보았다. 강 감독의 말처럼 우리 주위에는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청순한 정치 후보들이 너무 많다. ‘내가 아니면 아니다.’라는 생각 속에서 ‘탐’ 하려고 한다면 크게 잘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붙잡고 앉아 있으려고 한다면 본인은 물론 다른 정치후보자와 국가 차원에서도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기존 의원들이 모두 왕관을 내려놓아도 그 왕관을 쓸 수 있는 참신한 사람들이 많다.

이 나라 정치인들이 강 감독의 발꿈치만큼만 따라가도 정치개혁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다. 정치인만 바뀐다 해도 나머지 개혁은 절반이 다 된 거나 마찬가지다. 말만 떠들고, 큰 목소리만 낸다고 되는 개혁이 아니다. 의원들 스스로가 정리를 할 때라 본다.

요즘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전교조들이나, ‘민주노총, 종교계 등이 비리와 탐욕에 깊이 빠져 국가의 법질서를 어지럽히며 대다수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특히 국가의 법질서를 잘 이끌어 가며 정치를 바르게 해야 할 의원들이 못된 심보를 갖고 있어 그 심각성이 자못 크다. 오래전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을 남기고 법정 스님이 세속의 삶을 마감 한 바 있다. 그 다비(茶毘) 식에서 타오른 장엄(莊嚴) 한 불길을 보였다.

만약 중생(衆生)인 국회의원들이 이 같은 불길을 바라보았다면 이들의 탐심(貪心)에 어떤 반응을 일으켰을까? 이제 이승만, 박정희, 노무현, 그리고 영호남을 사이에 두고 경쟁과 협력 사이인 김대중, 김영삼 전직 대통령, 한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분들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 세대가 우리의 기억으로 남는 순간이다. “모든 게 헛되고, 헛되도다.” 부귀영화를 누리다 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솔로몬 왕이 한 공허한 독백이다.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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