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가 또 온 나라를 들쑤셔놓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국정화를 강행하겠다고 하고,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지금 이대로”를 외치며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촛불시위를 할 기세다.

그러나 속마음은 딴 곳에 있는 것 같다. 교과서를 쓰는 부류의 면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선 학교의 경우 역사교사들이 진보 성향이 좀 더 강한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교육 운동’ 차원에서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는 교사들도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이념에 치우친 보수와 진보진영의 싸움에 불과하다. 해방 이후 70여 년간을 서로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는 투쟁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속단하기는 그렇지만 검정기준을 강화하거나 국정화로 한들, 지금의 날림 교과서보다는 다소 정확성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현 체제대로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사회가 그 같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를 가치가 있는지 의문시되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여당이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국정화로 규정하려는 움직임과 관련, “역사 인식을 길들이고 통제하겠다는 독재적 발상”이라며 “역사 교과서는 독일에선 나치 시대에, 일본에선 군국주의 시대에, 우리나라에선 유신 때나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북한이 유일하게 하는 것으로 전체주의 국가에서 했거나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정화를 강행하면 유신 독재의 향수를 느끼는 유신 잠재 세력으로 규정짓고 저지 투쟁에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한 술 더 떠 야당의 한 의원은 “우리가 정리하지 못하면 금배지를 달 이유가 없다”라며 결사 투쟁을 선언하기도 했는데, 그 의원의 말처럼 책임을 지는 야당 의원들이 되었으면 한다.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대다수 의원들이 ‘금배지’ 대신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것을 보면 자신들이 부적격자임을 스스로 인식한 것 같다. 역사는 만화경이다. 어떤 시각에서 누가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바뀐다.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얼마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징비록’의 주인공인 유성룡이 떠오른다. 그는 임진왜란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백성들에게 살 길을 열어준 당대 최고의 명재상이었다. 또 임금이 요동으로 망명하려는 것을 막기도 했고, 이순신과 권율을 장수로 추천하기도 한 퇴계 이황의 애제자다.

당시 조선은 정치색과 학맥, 지역기반에 따라 붕당의 정치로 개혁적인 동인(영남 지방)과 보수적인 서인(기호 지방) 등으로 갈라져 격렬한 싸움을 하며 정적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했다.

왜란 중 국방력을 키우고 민심을 수습하며 훈련도감을 설치해 정예군을 양성하고 진관 법을 부활 시켜 군사 거점을 강화하기도 한 유성룡이다. 유성룡은 백성을 위한 시책이라면 당색을 가리지 않았고, 귀천에 차별도 두지 않았던 참된 정치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왜란이 종결되면서 “유성룡이 화친을 주장해 나라를 그르쳤다”라며 옛 동지이자 집권당인 북인들이 유성룡을 제거하려고 했다. 이는 양반의 특권을 박탈하고 재산인 사노비(私奴婢)까지 건드리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집권당이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총선도 다가오면서 더욱더 위기의식을 느끼던 야당이 국정화 문제에 대해 예산안 처리 등과 연계해 저지를 강행하면서 대응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역사 교과서는 소수 편향된 집필진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고, 아울러 국론 분열을 막고, 국민을 통합하는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국정화로서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한국사 교과서 편찬 논란이 일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친일, 독재 후손들이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념 갈등인 것 같다. 새정치연합의 경우 ‘아버지는 군사 쿠데타, 딸은 역사 쿠데타’라는 표현을 쓰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념전쟁으로 몰고 가는 새정치연합도 문제지만 교과서에 많은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이 있는 내용 등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리고 의견을 묻지 않고 ‘학계 대부분이 좌파로사 단일 교과서로 가르쳐야만 분단 하에서 사상적 통일을 기할 수 있다고 국정화로 전환하겠다고 발표 한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새정치연합뿐만 아니라 전국의 중. 고교 역사교사들과 대학교수 및 관련 학회가 거부의 뜻을 보이고 있다. 또 독립운동단체와 시민단체, 시. 도 교육감 등도 가세하면서 정국을 또다시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이에 앞서 국정화가 자율성과 다양성, 창의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교육 이념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도 일찍이 국정화를 학생들의 사고력을 획일화. 정형화할 것이라고 우려 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검정제 교과서도 지나치게 통일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정화는 국정제ㅡ 검인정ㅡ 자유발행제로 가는 세계적 교과서 발행 추세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뜻은 어디에 있든 정부와 여당이 오해를 자청하고 있다.

정부가 국정화 시도로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어리석고 국민 화합에도 도움이 안 된다. 역사 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국정화를 시도하는 나라는 북한과 몇몇 나라에 불과하다. 방법이 틀렸다.

한마디로 국정화는 역사 해석을 국가가 독점하겠다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가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배경에는 보수. 진보 진영의 ‘권력 싸움’ ‘기싸움’ 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은 친일과 독재라는 ‘역사적 아킬레스건’ 대신 ‘반공과 경제성장의 성과’를 더 강조하고 싶어 한다. 여론도 그리 나쁘지 않다. 밑바닥 인심은 찬성이 많다. 대안은 올바른 정사(正史)가 담긴 질 좋고 내용이 충실한 교과서다.

따라서 현행 검정 제를 강화해 집필 기준을 정하되 국가 정체성 내용을 명시하고 특히 좌우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학자를 검정위원으로 엄선해 편향성을 엄격히 심사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최고의 학자를 필진으로 모셔 연구 성과를 인정하고 집필진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야 문제점을 시정하고 수준 높고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 수 있다. 아울러 시대착오적인 시도를 접고 학자들이 양질의 교과서를 만들도록 하되 역사학계의 치열한 노력도 절대 필요하다.

기존 8종의 검정 교과서는 심의 과정이 엉성해 편향성과 오류를 걸러내지 못한 것도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보수, 진보 역시 집필 시에는 각자의 주장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중립적이고 균형 잡인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공청회 등을 통해 국민들의 진정한 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를 집권당 입맛에 맞게 바꿀 수는 없다. 학계의 공론과 국민의 상식에 어울리는 교과서 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들이 입만 열면 '국민의 종'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게 아닌가. 성숙한 시민의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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