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고 또 속아도 우민(愚民)들은 여전히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세상을 좀 더 나은 상태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열망은 정치인에게는 좋은 시장이 되어 왔다. 한국 정치가 ‘벌거벗은 임금님’ 꼴이 되어버렸다.

국민 앞에서는 벌거벗은 흉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정작 정치인들만 자기들이 아주 좋은 옷을 입고 있는 듯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가 신뢰받지 못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한국 정치는 이제는 ‘전신마비’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해 경우 여. 야는 민생 국정은 제쳐두고 오직 세월호 참사를 놓고 편싸움만 하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청년 백수가 넘쳐나는 심각한 현실에서 정파적 다툼에만 골몰하면서 국민의 혈세만 축내는 기생충으로 전락했다.

정치인의 입,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독(毒)이 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또 입을 잘못 놀리면서 화(禍)를 자초하고 있다. 고비 때마다 경쟁을 하듯 막말을 쏟아 내며 번번이 제 발등 찍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야당.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 정치권은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욕설과 폭언, 저질스러운 막말이 다 반사로 벌어지는 풍토가 되어버렸다. 더욱더 가관인 것은 그 막말을 한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무슨 영웅이나 된 것처럼 우쭐 된다.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원로 선배 의원이나 당 지도부가 잘못을 지적해주거나 징계를 하기보다는 침묵함으로써 그들을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야당을 좋게 봐주려고 해도 좋게 봐줄 수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이 같은 야당의 유사한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 대통령을 향해 그 X이라는 막말을 하는가 하면,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란 의미의 일본말 ‘귀태(鬼胎)’라고 한 홍익표 의원, 잊으려면 또 터지는 야당의 막말 발언.

세월호 침몰과 관련 대통령의 열애설을 주장하며 막말을 하던 설훈 의원, ‘당신은 국가의 원수(怨讎)’라며 얼굴색 변하지 않고 끔찍한 막말을 하던 젊은 비례대표 장하나 의원, 정청래 의원의 “바꾼 애들 깜방(감방)으로, 바뀐 애는 방 빼.” 누가 들어도 박 대통령을 비하. 조롱하는 말이다.

막말과 폭언, 눈살 찌푸리게 하는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려온 정치권이 여전히 ‘벌거벗은 임금님’ 행세를 하고 있다. 누구든지 실수도 있고, 감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순간의 실수나 감정 표출에 대해 처음부터 깨끗이 인정하고 반성을 하면 기껏해야 1~2단 정도의 가십 기사를, 부인하고 변명하면서 1면 톱기사로 키우고 있다.

야당이 계파 싸움으로 좀 시끄럽기는 했지만 또 강동원 의원의 막말(박근혜 대통령 부정선거)로 정계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그 파장이 크게 일고 있다. 이번에 문제 발언을 한 강동원 의원은 전 통진당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막말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강동원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회를 침공한 날(2015.6.25.)” “여왕벌도 결국 죽는다. 충성스러운 일벌들에 의해 죽임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2015. 7. 2)” “박 대통령은 국회를 잘 길들여진 새누리 동물원 왕국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청와대의 시녀로 전락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당 대표는 “강동원 출당 요구는 국정교과서 덮으려는 책략” 정략적 주장이라며 새누리당의 출당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그러면서 문 대표는 ‘강동원 발언은 당 입장이 아니고 또 개인의 일인데 당에서 뭐라 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런 문 대표가 새누리당 심학봉 의원에 대해서는 출당 주장을 주장했다. 그때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당 대표는 심의원에 대해 출당을 강력히 요구하는 등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었다. 상당한 모순이다.

그야말로 심의원은 개인적인 사생활이지만 윤리적 차원에서 같은 당에서조차 징계조치를 했다. 여당은 하는데 야당은 하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 정청래 의원의 경우를 보아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제 식구 감싸기에 여념이 없었다.

처음에는 최고의원직과 지역위원장직(마포. 을)을 정지시켰다. 그 같은 결정이 나온 것은 막말 파문이 당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지지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정 의원은 당적은 유지되지만 ‘당적 자격 정지 이상의 징계를 받으면 공천 심사 때 10% 이하의 감점을 주도록 한’ 당규를 감안하면 중징계 성격을 지녔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마포 을이 사고지구당으로 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결국 우려로 끝났다.

150여 일도 안 되어 막말의 귀재인 정청래 의원을 영웅으로 만들어 당에 복구시킨 것이다. 강동원 대선 불복 발언과 관련, 문 대표는 기자들의 질문에 말 돌리기 명수로서의 능력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대법원에서 대선 무효 소송이 빨리 판결을 내려주어야 한다.”로 일축했다. 그에 앞서 문 대표는 “지난 대선은 불공정. 박 대통령이 수혜자”라는 말을 했다. 결국 야권의 속마음은 아직도 대선 불복이라는 느낌을 충분히 갖게 했다.

그런 문 대표는 한명숙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불인정을 한 사람이다. 수시로 말을 바꾸면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정치인이다. 심지어는 의원들끼리 회의 석상에서 “닥쳐 이 XX야” “너도 인간이냐”라며 상식 이하의 욕설과 비방을 버젓이 주고받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물의를 빚어도 주의, 경고 같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거나 심지어 당사자를 감싸는 비상식이 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의원들이 자리를 지키지 않고 본연의 근무에 태만했다.

새정치 강기정 의원은 국감 중 휴게실에서 3번이나 바둑 방송을 청취하고,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자서전 쓰느라 바빴고, 비례대표 임 모 의원의 경우 국감 중 계속해서 몸을 비틀며 지루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들이 자질. 검증도 하지 않은 비례대표의 한계를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회기 중에는 당연히 출석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몇 십 명 정도가 출석했을 뿐 의사당 안이 썰렁했다.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세비는 철저하게 받아 갔다.

지금부터라도 무모한 발언 등 특혜를 받는 면책 특권을 완전히 폐지하되 국회해산 운동을 국민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어야 한다. 유독 그들에게만 무임승차 등 특권을 주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아울러 이 같은 추태를 지켜보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유권자인 국민의 태도도 문제다. 방심. 방관을 하다 보니 버릇없는 대다수 정치인들이 ‘갑 질’ 이 되어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관심이 정치인들의 생각을 바꿔 놓을 수 있다.

정치인의 말은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독이 된다. 오래전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 속의 우리 정치에서도 이는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많은 정치인들, 특히 여당 지도부조차 문 총리 후보자의 사퇴를 주장해야 할지, 옹호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실리를 찾기보다는 명분 찾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오직 대결의식만 있을 뿐이었다. 여론에 휘말려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가 여론이 뒤바뀌면 또다시 주워 담고 말을 바꾸느라 어쩔 줄 몰라 한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떤 말을 하는가 하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최소한의 자정 기능마저 마비된 정치 풍토에서 국회의원들의 도덕성과 윤리관을 철저하게 다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한 때인 것 같다.

그런 막말, 폭력, 막가파 정치인들은 정치권에서 영구히 추방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또 국민 소환제를 통해 부적격자들의 공천을 저지해야 한다. 그게 바로 유권자인 국민들의 몫이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며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위해(危害) 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법을 개정해서라도 국가 원수를 모독하는 불경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리고 아예 출마 자격을 주지 말아야 한다.

국민이 뽑은 국가 원수를 비하하는 것을 더 이상 국민이 용서해서는 안 된다. ‘벌거벗은 임금님’ 의 동화에서도 한 어린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고 소리치자 임금님도 자신이 벌거숭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쪼록 우리 아이들 세대로부터 ‘벌거벗은 임금’이라고 손가락질 받기 전에 정치인들 스스로 제대로 된 옷을 찾아 입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부끄러운 삶을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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