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대 위에서 결점투성이의 배우들이 벌이는 선정적인 사기극이다.” “정치인은 딱 세 부류가 있다. 거짓을 일삼는 천박한 자, 무지한 자, 그리고 천박하면서도 무지한 자” “우리는 지금 정신 병동에 누구를 보낼 것인가를 두고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선거란 것을 하고 있다.”

한동설한(寒冬舌恨)의 차디찬 바람이 쌩쌩 부는 냉소다. 아주 작정한 듯 한 독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보수 논객으로 불리는 전원책 변호사가 쓴 ‘전원책의 신 군주론’ 책자 서두에 올려진 글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뭉친 보스 아래 이념적 동질성도 무시한 채 오직 출세의 끈을 잡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대기 위해 서 있는 우리네 정당.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부도덕하고 무지하기 이를 때 없다. 생각도 없다.

또한 사회지도층을 자처하는 지식인조차 자신들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결국 무지하고 순수한 민초들은 자신들이 알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말과 언론에 의해 연출되는 드라마에 깊이 빠져 자아(自我)을 잃어버린 채 휘둘리고 있다.

마치 망망한 대해(大海)에서 고무보트에 타고 있는 위태로운 정국이다. 요즘 정치계를 바라보노라면 전 변호사의 글에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국정감사장의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 이었다. 덕담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보이는 것은 교만뿐이었다.

제(齊) 나라 환공이 갖고 있던 묘한 술독이 생각난다. 환공이 갖고 있는 그 술독은 비어있을 때는 비스듬히 기울었다가 반쯤 차면 바로 서고, 가득 차면 엎어졌다. ‘가득 차면 뒤집힌다.’는 만즉복(滿則覆)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환공은 이 술독을 늘 오른쪽에 두고 교만을 경계하고자 했다. 훗날 환공의 묘당을 찾았던 공자가 이를 보고 제자들에게 “공부도 이와 같다. 자만하면 반드시 화(禍)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충고의 말을 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너무 교만하고 자만할 경우 화를 자처할 수 있다. 국정감사장에서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안타깝기만 하다. ‘갑 질’로서 무조건 고함만 지르고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총선을 겨냥한 것인가. 교만이 가득하다. 또 한 분이 떠오른다.

오래전 모 은행 총재의 유력한 후보였던 분의 이야기다. 그분이 당시 밝힌 좌우명이 ‘낭중지추. 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이다. 그분은 “관직에 있으면서 근무처를 14번 옮겼다. 그러나 내가 가고 싶다고 간 적은 없다. 명령에 따라 자리가 바뀌었을 뿐이다.”

묵묵히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주머니 송곳처럼 자연스레 알려진다는 겸손함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인재는 언젠가는 발탁된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있다. 한때 어두운 시련에 빠진 적이 있었다. 직장에서 직원의 모함에 빠져 사표를 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첫 반응은 ‘네 탓’ 이었다. 직장 직계 상사가 업무의 잘못으로 인해 책임을 지고 공동으로 사표를 제출하자며 단지 형식적으로 내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장고 끝에 사표를 제출했는데 윗분에게 자신의 것은 빼고 제출하면서 결재가 난 것이다.

3일 밤낮으로 상사를 원망하고 미운 마음이 되다 보니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고 식욕도 떨어졌다. 그러나 남을 탓할수록 결국은 자신만 힘들었고 뒤돌아보니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네 탓이 아니라 원인을 제공 한 내 탓이라 생각하니 잠도 잘 오고 식욕도 좋아졌다. 억울하게 당한 일인데도 내 탓으로 돌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환공의 묘한 술독을 상기 시켜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든 단점을 갖고 있고 장점도 있다. 그래서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또 자신의 장점에 대해서도 너무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남에게 베푼 건 기억하지 말고 은혜를 받은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현 정치인들에게 들려주는 충고의 말이기도 하다. 의원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밥 먹듯 남을 탓하기보다 상대의 장점에 대해 칭찬을 해주면 의사당이 어떻게 변할까 상상을 해보았다.

지금처럼 주먹질, 막말은 없어지지 않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이 한 일이나 의견에 대해 칭찬이나 혹은 기분 좋은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때 느꼈던 기분을 다시 상상해보자.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기분 좋은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오죽하면 칭찬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는 말이 있을까. 그만큼 칭찬은 대단한 긍정적 위력을 지니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칭찬에 대해 어색해하지도 말고, 또 인색하지도 말자.

조금은 단점이 보여도 그냥 잘 한 일이라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자. 그 한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지금부터라도 의원들이 서로에게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구 선생이 즐겨 쓰시는 글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 하나도 어지러이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가는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하늘을 우러러 한 잠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려 했던 선조들의 강한 의지가 배여 나는 말이다.

패거리 정치, 보스 중심의 정당, 의원수와는 상관없이 당론의 정치, 정책정당이 아닌 이념정당, 민생은 제처 두고, 계파, 당파싸움만 일삼는 정당, 의사당을 놔두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정당, 이 나라 정치인, 지도자들이 선인(先人)들의 발꿈치만큼이라도 따랐다면 나라 정치개혁은 벌써 이루어졌을 것이다.

정치인만 바뀌었어도 나머지 개혁은 절로 이루어졌다. 할 건 안 하고 남의 탓만 하며 입으로만 외쳐 된다고 되는 개혁은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꼬일 대로 꼬이고, 개판이 된 정치를 제대로 된 눈으로 판단하는 국민(유권자) 의식이 필수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언제까지 지역, 계파, 정당을 따져 표를 던질 것인가. 곧 총선이 다가온다. 이제는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표를 찍자. 폭력을 휘두르고, 막말을 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부류들은 일소하자.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가진다. 저렇게 천박하고 무지한 정치인들이 갑 질 노릇하며 특권을 누리는 것도 그런 자들을 뽑아주고 침묵하는 유권자인 우리 국민의 탓, 내 탓이다.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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