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공화. 66)이 전격적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 2011년 1월 하원의장에 취임한 베이너는 올해 초 3연임에 성공, 임기를 1년 남아있는 상황에서 사임을 결심 한 것이다.

최근 베이너 의장은 공화당 내 강경 보수 풀뿌리 운동 티파티로부터 오바마 정권의 이란 핵 협상 합의안을 의회에서 무산시키지 못한 책임을 추궁 당해왔다.

티파티는 또 낙태 찬성 단체인 ‘플랜드 페런트 후드(가족계획)’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을 요구하며 “2016년 회계연도(올 10월 1일~내년 9월 30일) 정부 예산안 처리와 연계토록 하고 만약 거부될 경우 연방정부 셧 다운 (부문 폐쇄)까지 감수해야 한다.”라는 강경 입장을 베이너 의장에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협 쪽으로 기우는 베이너 의장에 대한 항명도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교황이 최초의 미국 상. 하원 합동연설을 마친 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베이너 의장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라는 말을 듣고 사임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베이너의 측근에 따르면 베이너가 10월 말 하원의장직은 물론 의원직까지 사임을 최종 결심했다고 전했다. 베이너는 “리더십 혼선의 장기화가 의회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사임을 결심하게 됐다”라고 조기 사임의 배경을 설명했다.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라는 그 말 한마디가 베이너는 결단의 계기가 된 것이다. 이 말 한마디가 그에게는 ‘은혜’ 가 되었고 세속적인 권력 투쟁으로부터 마음을 비우게 된 결정타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누가 감히 교황을 위해 기도를 할 수 있겠는 가”라며 감격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 날 사임 회견장에서 “솔직히 말해 이제 마음이 놓인다”라고 감격했다.

의회 출입 기자에게 이런 내용을 직접 털어놓으면서 “교황의 의회 연설이 성사된 이제 더 이상 내게는 성취해야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다”라는 말도 남겼다.

베이너 의장은 오하이오에 있는 가톨릭계 자비에르대를 졸업한 뒤 한때 사업을 하다 1985년 오하이오 주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90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11선을 기록한 다선 의원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왜 남의 나라 의원 일을 이렇게 길게 쓰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땅의 정치인들이 한 번쯤 들어보아야 할 것 같아서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다.

사욕(私慾)을 버리고 공도(公道)를 좇는 청백리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군자(君子)의 향기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과욕(過慾)인 것 같아서다. 그러나 정치인을 자처하는 그들의 몰염치가 풍기는 악취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공공기관에 변호사 아들의 취업을 청탁한 것으로 의심을 받아도, 로스쿨을 졸업 한 딸이 공고(公告)도 없이 사기업에 채용된 의혹이 제기돼도, 부인과 모르쇠로 일관할 뿐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인사는 그야말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신중해야 하는 만사임은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문제가 된 두 여야 국회의원 아버지의 자녀 인사 청탁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실업의 그늘에서 신음하며 고통받는 청년들의 좌절보다 더 큰 이유다. 사회조직에서는 나름의 인사정책이 있다. 수년에 걸쳐 시행될 정책이나 사업 방향에 따라 인사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걸맞은 기준을 설정해 인사를 단행하는 것이다.

거기에 제삼자가 힘을 이용해 개입하는 것은 기업이나 정부기관의 정책 설정을 무력화하고 시장을 교란 사키는 중대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설령 청탁을 하지 않는다 해도 현 체제하에서는 기업이나 기관들이 앞다퉈 유력자의 자녀들을 데려가려 하는 이유가 있다.

언제든지 반대급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제 자식만 귀한 줄 알고 힘이 미치는 곳이면 안면몰수하고 철면피처럼 전화 버튼을 누르는 힘이 센 아비, 한 술 더 떠 아버지의 거대한 힘이 마치 자신의 힘 인양 여기저기에서 함부로 휘둘려지기를 바라는 철없는 자식들이 더 불쌍하고 측은해 보인다.

제 아비의 힘이 영원하지는 않을 텐데 그 힘을 당당하게 발휘하려고 한다. 공천도 그렇다. 이른바 힘 있는 자의 ‘빽’으로 공천을 받다 보니 자격 검증이 제대로 안 된다.

윤리위에서 막말을 했다고 징계를 당 한 야당 의원, 140여 일만에 최고위원으로 복귀하면서 자성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한 줌 창피함도 없이 또 그 두꺼운 얼굴로 ‘고향 운운’하면서 제 버릇 개(犬) 주지 못하고 또 갑 질 중에 갑 질이 되어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보이는 것만도 이 정도 일진데 200여 개의 특권을 누리는 이 나라 의원들의 갑 질은 가히 막가파 범죄 수준을 뛰어넘는 것 같다. 대리기사 폭행에 연루된 여자 국회의원의 뻔뻔한 모습, 하물며 ‘통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식으로 청문회장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말라’고 호통치는 꼴은 참으로 역겹기까지 하다.

솔깃한 말 한마디에 어부지리 식으로 금배지를 달게 된 광주의 낮 두꺼운 의원, 5년 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되고 이제 대법원에서 실형이 언도되었어도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오히려 정차 탄압이라며 “법원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 양심의 법정에선 무죄다.”라고 주장하는 뻔뻔한 의원, 진정 자신이 결백했다면 변호사가 배석한 가운데 검찰에서 결백을 입증시켰어야 옳았다.

그럼에도 불구, 성경책에 손을 얹고 묵비권을 행사했을 뿐이다. 권사라는 직분이 부끄럽지 않았는지. 여 야를 막론하고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감추려고 하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국민을 대표하고 각자가 의결기구이기도 한 의원들이라면 일반인들과의 차별화된 도덕성, 책임감, 연대감이 있어야 하고 귀감이 되어야 한다. 일반인들과는 달리 다른 높은 도덕성을 보여주기를 바란 국민들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잘못을 반성하고 인정하기보다는 “남들도 다 하는 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 면서 자신들이 마치 정치적으로 피해자라고 말하지만 정작 정치적 피해자가 아니라 범죄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딸은 의혹에 대해 스스로 검사받기를 원했듯이 박원순 서울 시장 아들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악취로 이 번 지면을 더럽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이 글을 통해 의원들이 잠깐이라도 자성의 빛을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을 뿐이다. 얼마 전 단신 기사를 보면서 눈을 크게 뜬 적이 있었다. 한 시인의 이야기인데 올해 창비가 주관하는 ‘만해 문학상’ 수상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간곡한 사양으로써 상(償)의 공정함과 위엄을 지키고 제 작은 염치도 보전하는 노릇을 삼고자 한다.”라는 게 상금 2000만 원을 물리친 이유란다. 그는 비상임이기는 하나 자신이 창비의 편지 위원이며, 예심에 국한되기는 하나 만해문학상 추천 위원이기 때문에 상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심사위원들이 문제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그는 스스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기를 거부 한 것이다. 거부의 이유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어색하다.

특히 그는 “문학상은 또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후보자의 수락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므로 후보자의 선택도 감안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알아주는 것은 고맙지만 혹여 나중에라도 뒷말을 듣거나 욕될지도 모를 일로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유혹에 빠지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의지가 있는 강인한 태도인가. 이 나라 정치인들이 그 시인의 백분의 일만큼의 마음만 닮아도 정치 판도는 달라질 것이다. 미국의 하원의장도 하는 일을 왜 우리 정치인은 하지 못할까.

할 일은 하지 않고 막말만 일삼으며 치부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정치인들을 바꿔버리면 정치개혁은 절로 이루어질 것 같다.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기세등등한 철면피 같은 정치꾼들, 결국은 국민의 심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시인의 시구 하나가 생각난다. “~ 자갈밭 막 굴러 온 개털 인생처럼~ 입도 개운 합지 ‘에이 시브럴.’” 심기가 불편한 국민들의 심정이 그러하다. 욕이라도 해야  풀 릴 것 같다.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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