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다. 분명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얀 양과도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내가 보고 느낀 색깔과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닐 것이 분명하다.

너무 일방적인 대답인지는 몰라도 다를 수 있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 있다 해도 각자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색, 다른 모양으로 볼 수 있고 느낌 또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도 다를 수 있다.

특히 이런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인지구조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한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집단에도 마찬가지다. 같은 것을 보아도 서로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대립과 반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내가 느낀 색깔과 모양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제로 똑같이 느끼게 하려다 보니 갈등이 생기고 분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체제가 흔들리거나 정권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등 돌리는 것은 똑똑하다고 자처하는 지식인 계층인이다. 고려 왕조가 기울어질 때도 가장 먼저 등을 돌려 역성(易姓) 혁명을 통한 새 왕조의 창건을 기획하고 관철한 것은 이성계의 무력(武力)과 손잡은 정도전 등 신진사류(士類) 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기울어가는 원나라와 손을 끊고 새로 일어나는 명나라에 밀 붙어야 한다는 친명(親明) 논리를 내세워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에 재빨리 적응하는 민첩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신라 천년 사직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당시 상위 계층인 도당(渡唐)의 엘리트들이 보여준 일탈에서도 우리는 지식인의 반역, 배신을 쉽게 엿볼 수가 있다.

진골 귀족들의 권력 독점과 국정문란에 따른 민심이반에 절망한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 등 이른바 “3최(崔)는 은거와 부역(附逆)으로 신라 왕조에 등을 돌렸다. 최치원의 경우 당대 40여세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산사에 은거하면서 ‘계림은 시들어가는 누런 잎이고 개경의 곡령은 푸른 솔’이라는 서한을 왕건에게 보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최언위는 왕건의 처서로 찾아가 태자의 사부로서 새 왕조의 관제와 정책을 입안했고, 최승우는 대부분의 신라 유신들과는 달리 견훤의 휘하로 들어가 고려 태조를 규탄하는 격문을 짓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게 등을 돌리고 떠나간 것은 아니다.

포은 정몽주를 비롯한 이색. 길재 등은 무너지는 고려왕조에 충절을 다한 지식인들이다. 이 밖에도 수양대군의 권력 찬탈에 죽음으로 맞서며 항거한 사육신, 그리고 국운이 다한 것을 알면서도 대의명분 앞에 기꺼이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내놓은 한 말의 수많은 의병장들, 체제에 충성한 지식인들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후세에 와서는 이방원의 대세 변혁보다 정몽주의 비장한 충절을 더 높이 평가하게 된 것도 백이, 숙제를 지식인의 이상형으로 추앙해온 것도 우리 문화 전통 때문이다.

이 단락에서도 이방원의 개혁 변화를 지지하는 층도 있을 수 있고, 또 정몽주의 일편단심을 택하는 층도 있을 것이다.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힘 있는 자의 선택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하늘의 색이 무슨 색으로 보이든, 구름이 무슨 모양으로 보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기존의 체제와 제도가 흔들리고 무너질 때 대중에게 새로운 사상과 함께, 때론 불온한 이념의 수용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는 데 이때도 지식인층이 앞장서서 한몫을 한다.

요즘 경제계도 그렇지만 정치판을 보면 심하게 말해 체제 붕괴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처럼 유승민이 대통령을 배반 한 것으로 단정 지어도 될까.

다행히랄까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 대표가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의 정치를 국민이 심판해 달라”라고 한 지 13일 만에 사퇴했다.

메르스도 맥을 못 출 정도로 박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와의 충돌 이슈가 온 장안을 뜨겁게 달구었다. “자진사퇴는 없다 차라리 목을 쳐달라”라고 하며 버텨 온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 대표가 결국 의원 총회의 사퇴 권고 결의에 무릎을 꿇었다.

156일 전 자신을 원내대표로 뽑아준 그 의원 총회가 자신을 탄핵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한 대로 유승민 원내대표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사퇴 기자 회견에서 박 대통령의 압박에 자신이 옷을 벗어야 하는 현실을 ‘반(反)민주’ 규정했다.

그는 13일간 사퇴 압박에 저항하면서 느낀 감정을 그대로 퍼부었다. 일단 유승민의 사퇴로 일단은 새누리당이 진정 국면에 들어서기는 했어도 그 후유증은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외적으로는 국회법 개정안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김무성 대표가 장악한 비박계 당 지도부와 청와대와 친박계의 불신과 비토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 원내대표의 퇴진을 ‘갈등의 끝이라기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본격화할 주도권 다툼의 예고편’으로 보는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는 야당에서 지적해왔듯 비박계 지도부의 한 축이었던 유승민을 몰아내는데 성공한 친박계가 김무성 대표까지 흔들며 대세 장악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같은 표현은 과거사로 속을 뒤집어 놓은 이재오 의원 등에게 썼던 어휘다. 2004년 한나라당 구례 연찬회 때다. 당시 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에게 이 의원 등이 유신 사과를 요구하자 “역사의 죄인의 딸이라 생각했다면 지난 총선 때 왜 도와달라는 했느냐, 치사스럽지 않느냐”라고 언성을 높여 질타를 한 적이 있었다.

한 표가 아쉬울 때는 손을 벌리더니 당선되고 나니 안면을 바뀌었다는 분노의 말이었다. 그런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질책하면서 ‘선거와 배신’을 언급한 것은 최고 수준의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유 원내 대표가 사퇴는 했지만 청와대나 새누리당은 얻은 것이 없다.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 친박, 비박의 암투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런 와중에 새정치민주연합도 친노, 비노로 갈라져 분열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자신들이 본 하늘색과 구름의 모양만 고집하며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색깔과 모양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나마 친 박, 비박은 세력 다툼이다 그러나 친노, 비노의 다툼은 이념 전쟁이다. 그래서 합치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흔히 말하는 소통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파국을 막는 길은 결국 대화밖에 없다. 지도부와 계파 간에 만남으로 오해를 풀고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평소에 지도부와 계파 간에 수시로 대화하고 국정을 논의 해왔다면 계파 간 갈등이나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분노에 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화 부재로 생긴 문제는 대화로 풀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내가 본 하늘색과 구름의 모양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모습이 자신을 뽑아준 당원이나 국민들에게 대한 도리이며 예의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이 이렇게 흔들리고 다툼이 지속된다면 결국은 국민만 죽어난다.

지금 우리나라 형편이 어떤지? 북한의 사태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삶의 고통에 일그러지는 국민의 실망스러운 얼굴을 보면서 누가 먼저 팔을 내밀며 화해의 악수를 청할 것인지 우리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오래도록 당파 싸움을 일삼던 그 버릇은 못 버리는가 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사안임에도 각기 다른 관점에서 쓴다. 지금 나라는 엉망진창 개판인데 언제까지 집안싸움만 하며 세비만 축낼 것인가?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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