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마을 젊은 과부 집에 젊은 신부님이 매일 같이 드나들었다. 이를 본 동네 아낙들이 신부라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길래 저렇게 하루 종일 있다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행여 길에서 신부님을 만나도 인사는커녕 고개를 돌려 외면까지 했다.

어느 날 젊은 과부가 죽었다. 그 과부는 그동안 위암(癌)을 앓으며 고생했는데 신부님이 병간호를 하며 그 과부를 수발하며 보살펴 준 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마을 아낙들은 신부님을 뵙기가 무색해졌다.

이중 가장 신부를 헐뜯었던 두 여인이 신부를 찾아와 사죄를 하며 용서를 빌었다. 아무 말이 없던 신부님이 물 두 바가지를 들고 나와 여인들에게 건네주며 언덕에 올라가 뿌리고 오라고 했다.

잠시 후 돌아온 여인들이 이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줄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신부님이 지금 뿌리고 온 물을 다시 가져오면 용서를 하겠다고 했다. 여인들은 울상이 되어 어떻게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 있느냐고 발을 동동 굴렀다.

여인들을 향해 신부님은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듯, 한 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라며 여인들을 돌려보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내 입에서 내 뱉은 말이다. 둘째는 화살촉이다. 한 번 시위를 떠난 화살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세 번째는 흘러가는 세월이다. 흘러간 세월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말을 너무 막 하는 것 같다. 정치권도, 사회도, 특히 종교계도 거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심지어는 한 나라의 대통령에 대해서도 듣기에 불편할 정도로 심한 말을 한다.

그리고 그런 막 말을 하는 소리에 환성을 지르기도 한다. 살다 보면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또한 살다 보면 기분 좋은 말, 가슴을 아프게 하는 말이 있다. 날 선 칼날보다 더 예리하고 날카로운 게 혀(舌)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 말 한마디는 눈물과 실망과 절망의 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쁨과 희망의 말이 되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천재나 바보로 만들기도 하고 좋은 인연, 또는 악연이 되기도 한다.

물론 연약한 인간이기에 실수도 있고 잘못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싫은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자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화가 치밀어도, 서운함이 있어도 자신의 마음을 자제하며 곱고 고운 말을 할 수가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대하며 많은 말을 하는 우리다. 기왕에 하는 말이라면 기분 좋고, 밝고, 맑고, 희망찬 말을 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쉽게 목을 타고 나오는 말 한마디이지만 상대에게는 커다란 상처를 주기도 하고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말속에는 진실이 담겨있기도 하고 때로는 거짓과 위선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간혹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더 큰 아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가끔은 생각해보아야 한다. 무심코 생각 없이 던진 내 한마디의 말이 듣는 상대에게 어떤 상처와 아픔을 주게 되는지를....

한 마디의 말을 할 때도 타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줄 안다면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례적인 말이지만 말 한 마디로 평가를 받는 것이다. 좋은 말, 아름다운 말을 하면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만 거친 말을 한다면 거북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말 한마디의 소중함, 말 한마디의 향기로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현실에서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상처가 난 부분을 아프냐고 어루만져 준다는 것이 그의 상처를 덧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론 득(得)이 되라고 한 말이 오히려 그에게는 상처가 되고 실(失)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자신만을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보면 말에 실수가 생기기도 하고 오해도 생기게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좀 더 진실 되고,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에 앞서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마음들이 더 가득하다면 이 사회는 지금처럼 삭막한 세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서도 무척 인색하다.

자신이 한 말이 남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예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련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잘못을 인식했어도 가볍게 사과 정도 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화살이 꽂힌 나무에 화살을 뽑았어도 그 흔적은 남는 법이다. 피부에 난 상처는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아나면 깨끗해질 수도 있지만, 가슴속에 깊이 난 상처는 딱지가 생기고 새 살이 돋아나기는커녕, 언제나 아물지 않고 아프다.

누구나 그래서 그 상처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희한(噫恨)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편으로는 내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상처를 받은 것처럼, 내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피를 흘리는 그 누군가를 생각해보자.

내가 받은 상처만큼 또 다른 누군가가 상처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공통점이 있다. 연약한 속살에 감춰진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비난의 말도 듣겠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말을 해주는 덕분에 그들에게 위로받으며 마음에 난 상처에 약을 바를 줄도 알고, 또 밴드를 붙일 만큼의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이제 한 가지 바람을 말한다면 기쁨보다 슬픔을 더 사랑할 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기쁨은 즐거움만 주지만 슬픔은 우리를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슬픔이 올 때,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인생의 성숙의 기회로 삼도록 해야만 한다.

누군가가 ‘내게 선물을 주려고 했는데 안 받는다면 그 선물은 누구에게 갈 것인가?’ 결국은 선물을 주려던 사람이 갖게 된다. 마찬가지다. 막말을 하고 비난을 한다 해도 내가 받지 않으면 모두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것이 이치다.

마음을 넓게 갖자.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나를 미워하고 욕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는 사랑의 기도보다 용서의 기도가 더 필요한 때다.

깊은 상처로 울먹이고 있는 내 어깨를 가만히 잡아주는 손, 그리고 아주 보잘 것 없는 내 말도 조용히 앉아 말없이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당신이 있기에 오늘 한 사람이 살아갈 힘을 얻고 산다는 것, 당신은 알고 있는가?

좀 더 진실 되고, 자신만을 먼저 생각하고 고집하기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기도하는 그런 마음들이 더 우리 가슴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내 작은 소망은 육체는 힘들어도 편안한 마음과 함께 좋은 인연으로 모든 이들과 짧은 삶을 보내고 싶다.

당신의 환한 미소가 담긴 따뜻한 위로의 말로 오늘도 편안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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