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애정이 꽃 피는 시절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루에도 몇 장씩 날아드는 청첩장을 보면서 완연한 봄이 왔구나 하는 들뜬 마음이 들면서도 얇은 지갑에서 파를 뽑아내듯 파란 지폐가 쏙쏙 빠져나가는 축의금이 겁이 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도 요즘 같은 세상에서 어여쁜 청춘들이 저마다 짝짓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건, 봄날 꽃향기를 맡는 것보다 더 싱그럽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 서로가 우산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 서로가 따뜻함이 될 테니까/ 서로가 동행이 될 테니까/ 두 사람은 비록 두 개의 몸이지만/ 이제 이들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그대들의 집 속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래오래 행복하리라.”

인디언들의 결혼 시(詩)다. 그 내용이 감동적이지만 이혼이 빈번한 요즘 세태에 견줘보면 너무 낭만적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대체 결혼 전 궁합을 보고, 요모조모, 이것저것 따질 것, 안 따질 것 모두 살펴보고 결혼을 해도 판판이 금 가고, 깨지는 것을 보면 사람 일은 정말이지 알 수 없다.

얼마 전 제자 결혼식 때의 주례사가 생각난다. 새삼 뇌리를 스친 까닭은 그 알 수 없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죽자 살자 좋아하다 결혼을 해놓고, 결국엔 갈라서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덕(德)을 보려는 이기적 심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결혼 전, “저 사람은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디까지, 직장에서의 지위는, 성질은, 건강은, 등등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며 이리저리 물건 고르듯하는 것은 결국은 상대에게 덕 좀 볼까 하는 탐욕의 마음이 있어서다. 그렇게 덕 볼 마음으로 고르다 보면 제일 엉뚱한 사람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서로가 손해 볼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이 아내는 남편 덕을, 남편은 아내 덕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으니, 자연히 싸울 수밖에 없다. 자신들은 30%를 주면서 70%를 받으려니 불화가 생기고 결혼 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속았다는 생각에서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베풀고 나누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 서로가 초심의 마음으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려면 비법이 있는데, 그것은 결혼하는 순간부터 상대에게 덕 볼 생각은 아예 버리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그래도 당신(아내, 남편)이 나 하고 살면서 내 덕을 좀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줘야 한다. 이런 마음이라면 싸울 일도 없고 사는데도 지장이 없다.

바깥 궁합, 속궁합 다 보고, 삼 년을 한 이불 속에서 살아봐도 덕 볼 생각을 한다면 그 행복은 오래갈 수 없다. 덕 만 보겠다는 심보를 갖고 있으면 결국 파경이고, 덕을 베풀겠다는 마음을 갖고 결혼하면 아무리 어려운 생활, 성격과 환경이 안 좋아도 백년해로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닮아 간다는 건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듯 소중한 사람을 통해 또 다른 세상과 만나는 것은 사랑의 미덕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마련이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음식은 발효가 되고 또 어떤 음식은 부패가 된다. 발효되는 음식은 오래될수록 맛과 향기를 품어내며 곁에 두게 되지만, 부패된 음식은 오래 갈수록 악취를 풍겨 버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아내와 남편의 관계도 그렇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헌신의 마음을 갖고 작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 특히 서로를 믿는 언약의 마음이 없으면 재물이 아무리 많다 해도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다. 서로를 믿고 신뢰를 해야 한다. 설렁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해도 믿음과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완성시켜줄 배필을 통해 성숙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의할 것은 서로를 길들이려 하지 말고, 서로에게 길들려고 해야 한다. 또한 서로를 소유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소유하려다 보니 다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서로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고 느낄 때 찾아온다. 사랑과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과 행복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끄집어내고 잡으면 된다.

그리고 매사 말을 할 때나 행동을 할 때 “그것이 내게 좋은 일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제까지는 그나마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객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결혼식장에서는 모두가 박수를 치는 축하객이었는데, 하루가 지나면 싸움을 붙인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남편에게는 “왜 바보같이 여자한데 쥐여 사느냐?” 하고 아내에게는 “네가 무엇이 부족해 그렇게 주눅이 들어 사냐?” 이렇게 옆에서 부화를 지르며 싸우게 한다.

이것은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이 공연한 질투심으로 심술을 부리는 것이다. 이런 말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이야 뭐라 하던 남편에게, 또는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내조의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굳게 굳혀야 한다.

결국 누구의 덕을 보며 살겠다기보다 덕을 베풀며 내 덕에 잘 산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진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해서 어떻게 자기 맘에 맞게 살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을 지속하려면 서로의 생각과 자란 환경을 이해해주는 방법뿐이다. 함께 살면서 덕을 보려고 한다면 망하고, 베풀고 손해를 보겠다면 흥하며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이런 삶이 어디 결혼 생활에만 국한된 이야기겠는가.

지난 6일은 필자가 내자(內慈)를 36년 전 처음으로 만나 내 삶을 바꾼 귀한 날이다. 이 날이 되면 아내가 알든 모르든 결혼 시계를 꺼내 차고 반지를 낀다. 가난한 시인과 함께 살아준 고마움과 아내 덕에 잘 살았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복한 그날을 기억하는 것이다.

“산하(山河)에/ 핀 색색의 꽃들이/ 다시 오마 하고 떠나간/ 시월(時越)의 슬픈 그림자/ 떠나가는 것이 어디 네 뿐인가/ 나뭇가지를 흔들어 놓는 바람도/ 비를 내리는 구름도/ 그리고 세월까지도 멈출 수 없는데/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는/ 참 선(善)을 찾아 나선 구도(求道)의 길/ 잠을 잊은 산사(山寺)의 독경(讀經) 소리/ 깊이 잠든 중생(衆生)의 어둠 자락을 깨트린다./ 이 보시게나/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음을 슬퍼 말고/ 함께 있을 때 사랑을 하라고”

<안호원 시집 중에서 - 夏安居>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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