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해마다 다가오는 가정의 달인 5월. 다른 달보다 기념일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숱한 기념일들, 가족 간에도 예의를 차려 선물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5월이다.

이렇게 기념일이 있는 것은 역(逆)으로 생각하면 평소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니 이 날만이라도 아이를, 부모를, 스승을, 부부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을 나누며 감사의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구절로 “집안이 화목해야 만사가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가훈처럼 강조해 왔으니, 누구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친숙해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가정이 다른 나라 가정보다 더 화목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기념일이 있는 것처럼 ‘화목’ 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그만큼 불화와 갈등의 위험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는 부부가 불화하여 파탄을 일으키는 가정도 많아지고, 부모와 자식이 불화하여 서로를 외면하는 가정도 적지 않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가정이란 말을 쓸 수가 없다. 가정을 이루려면 우선 부부가 있어야 하고, 자녀 또한 있어야 한다. 이는 가족이 있어야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가정에는 반드시 기쁨이 있고, 또 서로가 위로를 받으며 회복이 되고, 편히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야 한다.

성경에 보면 아담이 최초로 이 같은 기쁨을 노래했다.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눈앞의 하와를 보는 순간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이런 애정의 표현은 아담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기 아내를 ‘생명을 같이 하는 동반자’로 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생명 보다 더 소중한 게 없듯이 가장 소중하고 귀한 또 하나의 지체(肢體)가 아내이며 가정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기쁨이 충만해야 하고 따뜻한 곳이 되어야 한다.

그 기쁨은 세상에서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가정에서 부부간에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최고의 존귀함을 갖고 있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특히 아내나 남편이 내 아내를, 내 남편을 가장 존귀한 상대로 바라보고 인정해 줄 때 그 가정은 행복하고 따뜻한 쉼터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은?’ 하고 물을 때 서슴없이 ‘내 남편’ ‘내 아내’ 가 “참 귀하고 존귀하다.”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가정에서 불행한 삶을 살려고 하겠는가. 다 행복하게 잘 살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싸우게 되고, 심지어는 이혼까지 하게 되는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내 뜻대로만 하려다 보니 안전치 못한 가정, 차가운 가정이 되어버리는, 그래서 망가진 가정이 되는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가정, 화목한 가정이 되어야 사회도 화목하고 밝은 사회가 될 수 있다.

배려는 타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도 인격자가 갖추어야 할 미덕 중에 하나다. 가족도 예외가 아니다. 양보하고 배려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건 아니다. 배려야말로 인간관계를 원만하고 매끄럽게 이끌어주는 윤활유라고 할 수 있다.

가정에서 사려가 깊은 사람은 그만큼 매사에 신중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배려도 하나의 예의다. 예의 바른 태도는 그 사람이 지닌 능력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가족 간이라도 가식적인 예의는 금세 표가 나게 마련이지만, 진심으로 예의를 갖춰 사람들을 대한다면 사회적인 성공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가식이나 덕행이 아니라, 예의범절이다.” 이 말은 ‘허영의 시장’으로 유명한 작가 새커리가 한 말이다.

가정에서 예의범절이 없는 사람은 사회인으로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예의는 상대에 대한 정중함과 상냥함에서 시작된다. 공순한 말투나 행동은 타인에 대한 가정을 드러내는 일종의 자기표현이다.

가정은 작은 또 하나의 사회다. 그런 사회는 또 다른 ‘내’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자기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할 수는 없다. 때로는 자기의 감정을 다스리고 접어 둘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모습은 아름다운 얼굴보다 낫고, 아름다운 행위는 훌륭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배려와 관심도, 그리고 사랑도 내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언어도 조심해야 한다.

혹 남편이 아내에게 기념일을 맞이해 모처럼 선물을 사주려고 할 때 “평소에나 잘 하시지, 그리고 당신이 사주는 선물 오죽하겠어?” 또 아내에게 밖에서 일어났던 일을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데 “에그, 자기 자랑은.....” 할 때, 아내에게 “당신이 하는 일이 뭔데?” “당신 주제에 뭘 알아?”라는 말은 대화의 맥을 끊기도 하지만 상대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말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더 조심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특히 가족 간에서도 서로가 덕(德) 볼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자신이 덕을 베풀 생각을 해야 한다. 덕을 보려니 다툼도 생기고, 실망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큰 선물이 바로 가족이다.

우리말엔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그 덕분이라는 말속에는 사랑과 은혜, 그리고 감사가 들어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부모님 덕분에, 아내 덕분에, 남편 덕분에, 자식 덕분에, 그리고 나를 아는 이웃분들 덕분에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건강한 부모에게 감사하고, 내조하는 아내에게 감사하고, 밖에서 가족들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남편에게 감사하고, 아프지 않고 잘 커주는 자식들에게 감사하고, 사랑하는 많은 이웃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며 사랑을 나누는 마음을 갖는다면 가정도, 사회도 따뜻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남에게 양보하라고 가르치고, 일본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어느 장소에서든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훈계하는데,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절대 남에게 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만큼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왜 배려와 겸손과 감사의 마음이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 날이 온다. 그런 날이 오늘 일수도 있다.

늘 그런 이별을 생각하며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말과,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며 온 가족이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정의 달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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