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금 분명히 위기에 처해있는 것 같다. 때 아닌 성완종 리스트로 국가의 기틀이 뿌리째 뽑힐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지난 해 4월 세월 호 참사로 인해 유가족과 야당.

일부시민단체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로 국정이 마비될 정도가 되면서 국민들이 허탈감에 빠져 삶의 감각을 잃어버린 채 방황을 하고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완종 살생부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왜 살고 있는지 조차 분간 하지 못할 정도로 혼미한 상태에서 암흑의 미로(迷路)를 헤매고 있다.

정치는 두말 할 나위도 없고, 사회도 그 균형이 완전히 깨져 어느 것 하나 온전한 데가 없을 정도다.

사회정의와 윤리도 땅에 떨어진지도 이미 오래되었고 이제는 그 마지막 보루인 인륜마저 깨져버렸다. 사람의 생명을 파리 목숨 만큼도 여기지 않을 정도로 살벌해지면서 급기야는 부모가 자식을, 자식은 자기를 낳아 길러준 친부모를 처참하게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고, 심지어는 사람을 죽여 난도질을 하고도 참회의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 참혹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국민으로부터 막강한 권력을 위탁 받은 자들이 당연히 할 일은 국민이 맘 놓고 사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국민을 기만하며 자신들의 온갖 야욕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이성과 양심, 품격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라는 식으로 목표로 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정은 그리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그 양심에 화인(火印) 을 맞아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렸고 넋이 통째로 빠져나간 뜻 한 모습들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생각과 말, 행동 면에서 도덕성을 상실했다. 또 학교 교육의 부재로 윤리는 물론 왜곡된 역사관으로 6000년의 유구한 우리의 역사도 모른다.

언론매체 방송을 통해 매일 보고 듣는 인간의 윤리 도덕적 타락상과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인명경시 풍조는 이제 그 한계에 이른 것 같다. 한 마디로 우리의 안식처가 무너져 내리고 우리의 심신이 편히 쉴만한 공간도 없어지고 있다.

지난 날 우리가 굶주리고 헐벗었을 때도 그래도 사랑과 인정이 오가는 가정과 이웃이 있었다. 특히 농사철이 되면 논을 지나가는 나그네들까지도 불러 세참을 함께 나누어 먹는 훈훈한 인심이 있었다.경제사정이 좋아지면서 생활도 좋아지고 먹을 것도 풍족해진 세상, 배부르고, 사치스런 옷을 입고, 고래 등 같은 저택에서 살지만 미움과 저주와 살의와, 음모와 탐욕이 가득한 곳에서 무슨 살맛이 나겠는가.

인류역사상 수많은 국가와 민족의 멸망은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지기보다는 오히려 국민의 도덕적 타락, 가정 붕괴, 인명경시풍조 등 주로 국가 내부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불길한 징조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지금 이 엄청난 도전과 시련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국회의원. 검사. 공무원. 기자 넷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누가 밥값을 낼까?’ 난센스 문제다. 정답은 ‘식당주인’ 이다. 이들 입법. 행정. 사법. 언론계 사람은 우리 사회에선 전형적으로 ‘거저 뜯어 먹는 자’ 로 통하는 부류다. 청탁과 거래의 대가가 아니어도 잠재적 민원인들은 의례히 인간관계 차원에서 접대를 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경제 전문가는 ‘새전(賽錢)형 증여’ 로 설명한다. 새전이란 원래 일본인들이 신령이나 부처에게 습관적으로 바치는 돈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렇게 바치면 구복의 의미도 있고, 또 액땜을 한다는 심리적 안정을 얻는 용도가 더 크다고 했다.

동양권에선 높은 사람에게도 새전을 바치는 관행이 있다. 미움 안 받고, 혹시 모를 떡고물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집고 넘어 갈 문제가 있다. 대자연은 새전을 바치던 말 던, 결과는 공평한데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새전으로 쌓은 사소한 인연으로 사태를 왜곡시키며 차별화 한다는 것이다.

위정자들이 사사로운 이해관계로 법과 정책을 비튼다면 이는 곧 대다수의 사회적 소외와 불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뇌물이 아닌 관습은 처벌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끈질기게 연명해오며 인간사를 흐트러뜨리고 말았다.

이런 관습에 대해서도 처벌함으로써 ‘은밀한 악행’ 을 근절하자는 게 바로 최근 통과된 ‘김영란 법’이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엉망이다. 시행도 하기 전 벌써부터 위헌소지가 많다며 각종 위헌 논란에 휩싸일 정도가 되었다.

자신들이 통과를 시켜놓고도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잘 못되었다고 한탄을 하며 언론탄압의 빌미가 될 것을 우려했다. 남의 말을 하듯 걱정을 한다. 그러면서도 이 법의 ‘엑기스’ 로 꼽힌 ‘이해충돌 방지’ 조항은 아예 제외시켰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선출직공무원등에는 포괄적 예외 규정을 뒀고, 법 시행은 현역 의원들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까지 미루었다. 국민을 기만하는 데 쓰는 머리는 참으로 영득한 것 같다. 무지했다면 이처럼 미꾸라지 빠져 나가듯 쏙쏙 빠져 나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입법 생색은 내고 법은 사문화 해버리자는 ‘사악한 의도’ 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다. 국회의원들은 이런 위헌소지가 있는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247명이 참석 91.5%가 찬성표를 던지고, 곧이어 열렸던 ‘어린이집 CCTV의무화’ 와 ‘담뱃값 경고 그림’ 법안 표결에는 171명만 남아 부결시켰다.

목소리 큰 일부 이익 단체는 기피했고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법안이었는데. 그동안 사사건건 불화음을 내며 민생법안처리는 무산 시켰던 국회가 자기들 이해관계가 걸린 법에 대해서는 여야가 놀라울 정도로 일치단결한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로 드러난 비리, 물론 당사자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하지만 그 말을 믿을 국민들은 없다. 우리가 표를 주고, 세금을 내어 먹여 살리는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꼴이 되었다. 국민을 속이면서도 뻔뻔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중대한 기로에서 우리 모두 사회 현실과 벼랑에 선 나라의 운명을 똑바로 인식하고 지혜롭고 현명하게,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성종완 사건을 보면서 세상에 ‘공짜 점심’ 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깨달았다.

유권자의 한사람으로 이대로 우롱당하며 세금까지 내면서 살아야하는 지 심히 고민이 된다. 이제는 국회를 해산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각계각층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먼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나라가 바로 설수 있다. 시국이 한탄스럽다.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