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게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요즘 들어 말(言)들이 너무 거칠어진 것 같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 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대책이 없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은 막말과 욕설, 유언비어와 괴담이 난무하고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오프라인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정치권은 막말의 경연장을 방불할 만큼 뜨거운 열전(熱戰)이 거듭되고 있다. 신성해야 할 국회의사당 안에서 대통령을 폄하 하고 전직대통령을 비하하는 막말 발언 등이 구설에 오르지만 여야 의원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여전히 막말에 가까운 설전을 벌이며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가 “여야 막말 금지 공동선언을 하자”고 제안 했지만 ‘소(牛)에 경(經) 읽기’ 식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다. 준엄해야 할 법정에서도 판사의 막말로 곤욕을 치룬 바 있고, 심지어는 ‘신의 언어’를 구사해야 할 교회의 부흥사들까지 저속어를 자연스럽게 쓸 정도로 난무하다. 그야말로 막말 피로감이 가중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한 전문가는 포탈사이트 검색창에 ‘막말’ 이란 단어를 입력시키면 관련 검색어만 무려 697만개가 뜬다고 했다. 막말의 사전적 의미는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 이다. 같은 뜻으로 ‘막소리’가 있으며 유의어로는 ‘상소리’(거칠고 상스러운 말이나 소리)도 있다.

욕설이나 언어폭력, 독설 등은 뜻은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얽히고설키며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막말이 난무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사회의 불안정을 우선으로 꼽는다. 사회가 자신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그것이 공적인 공간에서 일탈적인 행위로 막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막말은 또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없어지는 데서 생기게 된다. 비정한 사회의 단면인 셈이다. 국회에서 ‘귀태(鬼胎)’ ‘성희롱’ ‘전직대통령 비하’발언. ‘현직 대통령 폄하’ ‘대통령 하야 요구’ ‘노인 비하’ 등 몰상식한 발언이 난무해도 누구하나 이를 지적하고 윤리위원회에 회부하자는 사람이 없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흉탄에 잃었고 자신 또한 테러를 당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아무리 밉다 해도 가슴에 이런 식으로 대못을 박지는 말았어야 했다. 이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야속한 말이며 크게는 나라를 망가트리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말의 표현에 자유가 있다 해도 대통령이 부친(故 전 박정희 대통령)처럼 암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한 것은 언어 살인이며 국기 문란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위해를 선동. 조장하는 무서운 테러가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의 머슴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사람과 사물을 혼동하는 듯 한 화법이 어휘력이 문제인지, 자질 문제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도 이제는 국회의원의 막말에 익숙해진데다 의식 있는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의 말은 본받을 바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일단 논외로 친다 해도 요즘 정말로 걱정되는 건 폭언과 막말의 집단화와 일상화다.

국회의원도 아닌 일반 시민들이 주로 인터넷상에서 특정 개인에 대한 비아냥과 욕설을 넘어 이젠 집단 대 집단의 대립과 타 집단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퍼붓기 일수다. 정도가 넘다보니 ‘암컷과 수컷’ 싸움, ‘특정지역에 대한 무차별 비방’이 점입가경이다.

사이버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배설적 언어현상이라고 하기엔 도를 넘어도 한창 넘은 것 같다. 옛 사람들이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혀는 몸을 베는 칼)라며 말조심을 당부한 건 더러운 말은 세상을 더럽히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말이 더러워지면 인격도 더러워지는 것이다. 어찌하다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하던 이 나라 국민들이 이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었을까.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말을 제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그만큼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말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생각과 마음을 변화시키며 행동까지도 지배한다.

그래서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품격이 보인다. 말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솔로몬 왕은 3000년 전 이를 간파하고 “죽고 사는 것이 혀(舌)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 고 경고 한 바 있을 정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부쩍 늘고 있는 막말 파문들은 일종의 ‘노이즈 마켓팅’(의도적으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켜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홍보 방법) 일수도 있다고 판단된다. 즉 사회적 비판을 감수하면서라도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켜보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엿보인다는 뜻이다.

이런 자극적이고 몰상식한 막말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흥분하게 되고, 때로는 그 이슈들에 함몰되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쉬운 것은 일반 언론들까지 낮 뜨거운 추문이나 쫓아다니는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 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말에 동원 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언어들은 전염성 높은 오염물질이 되어 많은 이들의 머리와 가슴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사회에는 넘쳐나는 막말을 정화시켜줄 공간과 기회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마치 도심의 숲이 도시의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켜주듯 우리 사회 속에 맑고 신선한 언어를 공급해 줄 기관과 이벤트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종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일상이 얼마나 욕설과 언어폭력에 찌들어 있는지를 입증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가정 폭력 사건들은 우리의 가정들 역시 거친 막말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공교육기관들이 우리 사회의 언어순화 및 정화를 감당해야 주어야 하지만 오히려 그런 기관들이 가장 혼탁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폭주하는 막말 현상을 해결할 주체는 없는 것인가. 아니다 모든 막말들의 본질이 무정(無情) 또는 미움이라는 것을 감안 할 때 무한한 사랑을 나누는 가정이 이 사회를 위한 언어 청지기가 되면 가능하다고 본다.

가정이, 부모가 진정한 사랑의 언어를 풍성하게 공급하는 샘(川)이 되어 우리 사회를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밝고 맑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실추된 인격도 회복될 것이다. 그런 사랑의 언어는 입술에 발린 말이 아니라 한 마디를 하더라도 진심과 정성을 담아야 한다.

비록 세치 밖에 안 되는 혀지만 그 위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자칫 잘 못 사용했다간 커다란 화(禍)를 불러오기도 한다. 작고 부드럽지만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이 말을 구사하는 붉은 근육질의 혀다.

사마천은 이것을 함부로 놀려서 궁형의 치욕을, 한비자는 민첩하게 사용하지 못한 죄로 사약 받고 죽었다. 잘 못 사용하면 남이 아니라 내게 먼저 화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자. 또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고 상처와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우리가 되자.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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