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의 세상, 디지털 광속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속도경쟁에 깊이 빠져 빠름이 미덕이 되고, 자기를 잃어버릴 만큼 참으로 바쁜 하루의 짧은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경쟁의식과 라이벌의식을 갖고는 무한질주만 있지 진정한 승자는 하나도 없다. 결국은 도토리 키 재기요, 오십 보 백보에 불과할 뿐이다.

일상에서 보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 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더구나 차량운전 시 다른 차량과 속도경쟁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칫하면 자신의 생명은 물론 남의 소중한 생명까지도 잃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매사에 추월 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초월자가 되어야 한다.

인디언들은 말을 달리다 일정 거리에 이르면 말을 멈춘다고 한다. 혹 너무 달려와 영혼이 미처 못 쫓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는 주 5일만 근무하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론 상 이틀은 출근을 하지 않아도 좋은 날이다.

그러나 개신교나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의 경우, 일요일은 예배를 드리는 주일이라 하루를 교회에서 보내게 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무리 바쁜 일상의 우리지만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천천히 살아보자는 것이다.

최근 필자가 생각한 원칙이다. 물론 경제 침체로 각박한 현실에서 일을 하면서 천천히 살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특별한 업종에 종사하는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토요일만은 쉴 수 있다.

쉴 수 있다는 것은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일단 출근하지 않고 쉬는 날인 토요일을 ‘슬로 데이’(Slow Day)로 정했다. 그리고 정말로 쉬기 위한 몇 가지 원칙도 정해보았다. 이런 룰에 얽매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또 느린 삶과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편히 쉬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기본적인 규칙은 필요하다. 일례로 이런 것들이다.

‘운전하지 않기’ ‘인터넷 하지 않기’ ‘전화 받지 않기’ ‘TV 및 신문 안보기’ ‘하루 한두 끼 만 먹기’ 등등, 굳이 규칙이라고 하기엔 사소한 것들이지만 이런 규칙을 실행에 옮기면 효과는 예상외로 크리라고 본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의 경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많이 걷는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차를 이용 할 수밖에 없지만 가능한 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러다보니 운전을 할 때 보다 보이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볼 수 있는 시야 반경도 무척 넓어졌다. 또 천천히 걷다보면 평소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는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된다.

어떤 목적지를 정하고 나면 그곳까지 최대한 빨리 가려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내 스타일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속도를 내다보니 주변에 신경을 쓸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한 번은 삼청동에서 북악산 둘레 길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 걷다보니 지금껏 못 보고 지나쳤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가의 이름 모를 꽃들, 드넓은 들판, 깊고 푸른 하늘 빛, 해맑은 공기, 도심 속의 농가, 학교, 무덤, 하나하나가 시각과 후각, 청각을 자극 하며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실크로드 1만 2000km를 4년 동안 걸어서 횡단한 프랑스인 ‘베르나르 올리비에’ 씨가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해서 한 말이 떠오른다.

“걷기는 두 발을 움직이는 물리적 행동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정신적 행동” 이라는 그의 말이 무척 흥미롭기까지 하다. 최근에 에세이집 ‘마음을 천천히 쓰는 법’ 을 쓴 저자인 주경 스님은 “수행을 하며 얻고 깨달은 것은 ‘천천히 사는 것’ 이 아닐까 싶다” 며 “빨리 사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 “강제라도 좀 한가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하루 단 10분이라도 뒷산이나 공원을 찾아 생각을 내려놓고 풍경을 바라보라, 바빠야 한다는 생각, 고착된 사고의 틀을 조금씩이라도 흔들어주는 것이다.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면 바르게 보는 힘도 생긴다.”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은 곧 규모의 경쟁에서 자유 하는 것이다. 즉 내려놓음의 자유, 포기의 축복, 지는 것의 이김, 떠남의 여유, 여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목표를 향해 빨리 가려고 서둘거나, 천천히 가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참에 한마디 더 하자면 아무리 바쁜 세상이지만 식사도 천천히 하자.

특히 직장인들의 경우 무엇이 그리 바쁜지 게 눈 감추듯 식사를 한다. 그러나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렇게 급하게 먹은 후 식당 밖에 나가서는 담배를 피우거나, 찻집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급하게 먹는 밥은 맛을 제대로 느낄 수도 없을뿐더러 자칫 체 할 수도 있다.

반면에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을 경우 소화도 잘 되지만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다. 식사 역시 천천히 씹어 먹으면서 맛도 음미하고 또 음식을 만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다보면 바로 그 음식들이 보약이 되어 강건함을 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래 전 고위직 공무원들과 미국을 간 적이 있었다. 8가지가 나오는 코스 요리를 먹을 때다. 몇 가지를 먹으면서 추가로 주문을 했다. 얼마나 빨리 먹는지 8가지를 다 먹어도 추가 주문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갈 즈음에야 추가로 시킨 음식이 나온 것이다.

종업원들이 손님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며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히죽거린다. 음식을 시켰으면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데 모두가 다 나가니 이상했던 모양이다. 음식문화가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관광버스가 오기까지 한참을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또 중국집을 갔더니 우리문화와는 달리 몇 시간짜리 식사를 할 것인가를 물었다.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시간에 따라 음식이 나온다는 것을 안내원으로부터 들을 수가 있었다. 급한 경우는 음식이 빨리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천천히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충분하게 주는 것이다. 식사는 30분 정도 하는 것이 적당하다. 며칠 전 토요일에도 청계산을 걸었다. 약간 두꺼운 양말과 발에 딱 맞는 등산화를 신고, 탄력 있게 풀이 쌓인 산을 걷는 기분이 정말 좋다.

수도자의 수행은 아니지만, 이순간만은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자연을 만끽 할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한 번에 30분 정도 걸으면 치매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천천히 살면서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자유를 만끽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토요일이 기다려진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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