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집권 3년차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펼쳤다. 박 대통령은 서두에서 “이 때를 놓치면 앞으로 30년간 성장을 못한다.” 며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게 바로 저의 사명” 이라고 절박한 현실을 부각시키며 경제 살리기와 특히 4대 구조 개혁에 매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많은 국민들이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경제의 큰 틀을 다시 짜겠다는 대통령의 그 의지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은 한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정책이 대통령 혼자만의 의지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신년사를 통해 느낀 것은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 다수가 박대통령의 불통을 우려하고 있는데 반해 정작 대통령 자신은 ‘불통’ 이 아니라고 우기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느껴진다.

특히 박대통령은 장관들의 대면보고와 관련, 회견장에 배석한 장관들을 보며 “그게(대면보고)그렇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 라고 묻기까지 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민의의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라도 자주 만납시다.’ 가 아니었다. 여전히 박대통령의 통치 능력은 뛰어난 것 같다. 원고도 보지 않고 말하는 것도 놀랬지만 기자들의 날 선 질문에 당황하지도 않고 능숙하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이 자뭇 놀랍다.

예민한 것은 슬쩍 비켜가고 설득이 필요한 사안은 강도 높은 톤으로 강조한다. 이 뛰어난 통치 능력이 통치 양식과 인식의 틀을 바꾸는 유연제가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서 언급한 ‘대면보고’가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편리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대통령이 서면보고에 의존하면서 상대적으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비서실 3인방들이 도를 넘는 권한 행사를 하는 부작용을 지적한 것인데 그 진의를 바로 읽지 못하고 있다.

언로가 막혔으니 여당에서 조차 공개적으로 제기 되었던 비서실 3인방 교체 요구에 대해서도 “의혹만으로 그만두게 할 수 없다” 며 그들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 쇄신을 요구했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억울하게 피해를 당할 수는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의 괴리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국정운영에 심각한 장애가 올 수가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 같은 체제에서 박대통령이 뒤 늦게 내놓은 청와대 특보실 신설 등 조직개편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 때 지지율이 60%대를 넘어섰던 박근혜 정부가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후 지지율이 40%대 이하로 떨어지면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늘 지적과 반대를 일삼는 야당에서는 지난 2년을 실망과 좌절의 시기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소통부재로 국민통합은 뒷걸음질 쳤고 더구나 인사 실패에 의한 국정 난맥으로 이렇다 할 업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정부, 여당에서는 외교안보 분야를 비롯해 국정 전반에서 그런대로 성과를 거두고 안정을 취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이전 정권에서 나타났던 탄핵정국이나 광우병 소동 같은 ’민주주의 위기‘는 없지 않았느냐고 애써 업적을 알리려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여야의 서로 다른 평가에도 불구하고 박대통령의 지지율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순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지지율이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가운데 청와대 ‘정윤회 사건’ 외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서실직원항명사건까지 드러나면서 박근혜 정부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런 지지율하락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것은 아산정책연구원이 최근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11개주요 기관에 대해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나마 박 대통령이 단연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은 국민들이 체험으로 느끼고 있는 것처럼 국회였다. 그 다음이 요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입법부, 그리고 언론, 종교단체, 정부 순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기관들을 상당수 국민들이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기관 대다수가 ‘사악한 생각을 갖고 올바른 도리를 다하지 않는다’ 고 국민들이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혼신을 다해 선전하고 있는데 반해, 여타 국가 주요 기관과 야당은 왜소화의 트랩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다. 물론 선진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경우도 ‘의회는 바퀴벌레만도 못하다’ 는 악평을 듣고 있고, 또 대법원은 ‘법복을 입은 정치인들의 집합소’ 로 변질됐다는 비아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국회와 사법부와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나치게 초연하고 독선적인 오바마에 버금가는 박대통령의 소통 불능, 그래도 국민들은 여전히 박 대통령에게 실낱 같은 희망을 갖고 경제회복, 국가 안정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해 4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인사 실패, ‘문고리 권력 3인방’ 을 둘러싼 잡음, 수능시험 혼란, 병영 총기 난사에 이르기까지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데도 말이다. 좋은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들은 물론 정치권에서 까지도 모두 대통령에게만 의지하려고 한다면 이 나라꼴이 어찌 되겠는가. 물론 국가 최고의 수장으로서 당연히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각기 주장하는 이들의 요구처럼 될 경우, 자칫 삼권이 분리된 우리나라에서 대통령만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국가의 주요기관이나 정당들이 왜소화 되면서 민주주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감히 지적하고 싶다.

이런 현상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미 이런 징후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신문광고를 보면 ‘대통령님께 호소합니다.’ ‘대통령님께 드리는 글’ 등의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사법부도 있고 입법부, 행정부도 있지만 불신이 쌓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국민 정서의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가 된다면 대의민주주의가 실종되고 대통령단독 주의로 전락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걸핏하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야당이 한 번 쯤은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주로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었던 것이다. 야당이 비협조적으로 가니까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정운영에 대한 어려움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대통령의 단독 플레이가 성행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역시 이런 유혹의 문턱에 서 있는 것 같다.

경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국가 기관들은 기강이 무너져 비틀거리고 있으며 야당은 국정 운영에 대해 브레이크를 밟고 있고, 시민사회는 지리멸렬한 상태로 있다. 청년의 일자리도 급하고,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늘면서 발생하는 노인 복지 문제 등등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정책이 하나 둘이 아닌데도 모두가 협조하기보다는 무조건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지으려하고 잘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새해 언어는 그 어느 해 보다 절박하다. “올해가 우리 경제를 일으킬 마지막 기회다” 지난 해 박 대통령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박 대통령은 외롭게 지난 2년 규제와 맞서서 싸웠다. “규제는 암, 규제 기요틴” 을 말했다.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말은 거세지고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규제 혁파의 성과는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그 이유는 국회와 갑 질의 관료들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혁은 대통령 혼자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과 관료의 단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들이 정권의 전진에 앞장서 동행한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어야 한다. 공직사회는 권력운용에 민감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선명하지 않으면 주춤하게 된다. 박근혜 권력은 그래서 매우 복잡하다. 청와대가 이중 구조라는 인식은 관료 세계에 널리 퍼져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무튼 정무특보가 됐든, 홍보특보가 됐든, 지금의 시스템을 개편하고 인사 쇄신을 통해 박대통령이 힘차게 국정을 이끌고 가는 데 필요한 윤활유로 삼기를 기대해본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읍참마속’ 의 심정으로 인사를 단행하고 과감한 쇄신의 모습을 보일 때 국민들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지 할 것이다. 귀를 활짝 열고 폭 넓은 소통의 대통령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해본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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