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 특히 명문대학을 나오면 취업은 물론 결혼까지 확실하게 보장되는 황금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명문대 대학출신의 취업이 보증되는 확실한 시대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최근 들어 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 대졸자가 학력을 속이고 고졸 자리를 넘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언론사가 10대 그룹과 공기업을 포함한 20개 기업의 올 하반기 채용 인원을 조사했더니 총 1만 7621명으로 지난 해 하반기 (2만50명)보다 12%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문계 출신들이 취업에 곤혹을 치루고 있는 추세다. 대부분의 기업이 인문계출신을 뽑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 전 20%대의 대졸자가 있을 땐 학벌이 ‘취업 보증수표’ ‘결혼보증’이 확실했지만 이제 대졸자가 85%대로 늘면서 과거 취업이 보장되든 시대는 이미 지나버린 것 같다. 이처럼 대학 간판의 위력이 사라지면서 고졸로 학력을 세탁해 취업하려는 대졸자들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 상위권대 인문계열보다 지방대 공대 등 전공별로 취업률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에 지원했던 명문대 출신 A씨의 경우 “같은 회사에 대졸자로 지원서를 제출했으나 서류전형에서 떨어져 고졸로 학력을 고쳐 제출했는데 다행히 합격했다며 고졸로 입사해도 연봉이 높아 만족하다”고 말했다. 지방대 경영학과를 나온 K씨는 몇 군데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번번이 떨어져 고졸만 뽑는 자동차 제조업체 생산직에 지원했다며 자신과 같은 대졸자들이 학력을 낮추고 생산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주변에 꽤 된다고 귀뜸한다.

또 연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B씨의 경우 이미 졸업 학점을 채웠지만 아직 한 학기를 더 다닐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30여개 기업에 원서를 제출한 바 있지만 그나마 서류 전형 통과율은 30% 미만에 불과했고 여전히 구직 중에 있다며 취업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학간판이 취업에서 효력을 잃게 된 것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 기업인사 담당자는 “산업화 시기엔 개인적 역량이 뛰어난 인재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지만 요즘은 체계가 선진화 되었다”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통합형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꼭 명문대 출신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취업난이 이처럼 대학출신을 강타하면서 많은 졸업생들이 효과가 불투명한 스펙 쌓기에 급급해지고 있다.

어떤 졸업자는 학력과 전공에 상관없이 자격증을 10여개나 딴 사람도 있다. 많은 대졸자들이 취업을 위해 또 다시 시간과 금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성들의 취업은 더욱 더 어렵다. 일례로 모 여대 졸업생 30명중 취업 첫 도전에 성공한 사람은 겨우 5명에 불과했다.

이제는 대학뿐만 아니라 취업도 재수는 필수가 되었고 삼수는 선택이 되어버렸다는 우스게 소리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S전자는 1995년부터 출신대학, 학점, 어학점수 등을 적어내던 1차 서류 전형을 아예 없애고 선발방식을 일정기준의 학점과 업무와 관련, 직무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제도로 인사운영을 하고 있다.

특히 한 인사담당자는 “직무와 무관한 자격증 등을 배제하고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 열정을 주로 보고 있다.”며 “스펙을 보지 않는 채용을 실시하면서 지방대 출신도 일정 비율 뽑고 있는데 효과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또 한 팀장은 “몇년전까지만 해도 학벌이나 학력을 중요시 했었지만 자체 분석 결과 출신대학보다 업무와 관련한 전문 지식이 직원 성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 채용 방식을 학력위주에서 탈피, 직무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선발 방식을 바꾸었다”고 귀뜸한다.

아예 최종 면접까지 지원자의 학교. 학점을 가리는 블라인드 방식을 도입하는 상장 기업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한 임원은 “명문대나 출신 대학은 인적 사항의 일부일 뿐 회사에서의 역량이나 태도, 적응력을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선별방식이 바뀌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 같은 채용방식으로 바뀌게 된 것은 대학전공 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공계출신을 선호하는데 반해 대학의 경우 운영비가 적게 드는 인문계에만 신경을 쓴 결과다. 그 결과 자연계(이과)보다 인문계(문과)학과를 선호하는 고교 수험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대학 전공 구조와 산업체 수요의 엇박자가 맞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문계 출신 구직자가 넘쳐날 수 밖에 없는 대학 구조가 오래 전부터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졸업생보다 입학생을 30% 더 선발하는 졸업정원제(1980년), 일정 기준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해주는 대학설립준칙주의(96년) 등을 거치면서 대학, 학생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과부분 보다는 문과 부분의 학과가 폭증 하면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 엇박자가 되면서 매우 심각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쉽게도 교육당국이나 대학은 전체 정원만 신경 썼을 뿐 계열별 정원은 관리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졸업자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고 오히려 고졸출신은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좀 늦은 감은 있으나 교육부가 산업 수요를 감안해 각 대학에 전공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적절한 이공계, 인문계 비율을 제시하되 각 대학이 자발적으로 이공계를 늘리고 인문계는 줄이는 방향에서 체질 개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선진 외국처럼 교육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학문연구와 발전을 위한 학생은 일반대학을 진학하고 기술 등 취업을 원하는 학생은 바로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전문교육제도가 되어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채용 과정에서 전공을 살린 인턴 십을 중시하고 고교 재학생들도 방학 때 는 업무 경험을 쌓는 등 취직 시스템과 교육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국내 대학들도 졸업생 취업을 위한 현장 실습이나 인턴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고 교수가 학생과 공동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직무능력을 개발하도록 수업을 하면서 직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 인문사회계 학생들이 공대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기술을 공부해 산업 수요에 대응 할 수 있도록 다(多)전공 학생들을 배출해야만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고졸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 십 년간 수 천 만원을 투자해 대학을 나와서도 고졸 학력으로 직장에 취업한다는 것은 본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경제적 손실이 매우 크지 않을 수 없다. 한 때 대학이 많아지면서 졸업자가 취업도 안 되고, 결혼하기도 어렵다보니 남자는 ‘군대’ 또는 ‘대학원’ 여자는 ‘대학원’ 진학이라는 일종의 도피성 말들이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 때가 있었다.

그 결과 이제는 대학원 졸업자들까지도 그 가치가 떨어져 고(高) 학력자임에도 불구, 취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교육제도의 잘못으로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고 있고 시간과 경제적 손실도 엄청 난다. 그래도 이 고비만 넘기면 좋은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그러니 너무 일찍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이를 악물고 버티어보자. 좋은 세상이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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