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정치가 개판이 되고 국회의원들은 국민 혈세를 축내면서 계파싸움질만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윤리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이기주의자들만 득실거리는 추악한 세상, 말세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사업자금을 마련하기위해 아버지를 산속 컨테이너에 감금을 하거나 수십 억 원의 보험금을 타기위해 남편이나 아내의 이름으로 보험을 들고 의도적으로 교통사고를 내거나, 심지어는 멀쩡한 자식을 병들게 하고 보험에 가입, 죽음에 내몰거나, 수십 억 원의 빚 때문에 청부살인을 하지 않나. 막말을 하고도 뻔뻔한 낯짝을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 윤리도덕이 사라진지도 오래다. 잘못을 해도 감각이 무디어지면서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감하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사악(邪惡)해지면서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착각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된다’는 이기적 사고 속에서 상대가 어떻게 되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만 이루려는 살벌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제인가부터 낯 두껍고 뻔뻔한 부류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평범하게 살기는 너무 밋밋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세상이 되다보니 요즘 드라마는 눈물 짜는 순애보 주인공보다는 못된 짓을 하는 악녀들이 나오는 드라마가 오히려 인기를 얻고 청취율도 높아지며 연말에 시상하는 ‘상’을 타는 확률도 높아진다. 예쁜 여자 배우의 악행이 아름답게 미화되기도 하는 기가 찬 세상이 되어버렸다. 일례로 최근 종영된 ‘왔다 장보리’가 드라마 시청율 10%만 넘어도 나쁘지 않다는데 37.3%의 높은 시청율을 보이면서 예상외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처럼 이 드라마가 최고의 시청율을 보이며 인기를 끈 것은 청순해 보이는 ‘연민정’의 악행연기다. 그녀가 이어가는 희대의 악행이 극적 긴장을 유지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연민정은 거짓말과 협박을 밥 먹듯 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부모는 물론 자식을 벌레처럼 내팽개치고 심지어는 살인시도까지 마다 않는, 한마디로 ‘인간 말종’이다.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악녀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열연을 했다.

과거 70~80년대 악녀는 시어머니나 계모의 악한 모습으로 시청율을 높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착한 여주인공을 못 살게 구는 ‘신델라의 못된 언니’나 ‘연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악녀들이 세상 분위기에 맞춰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실현하려는 주체적 캐릭터로 변신하고 있다. 문제는 악녀를 예쁜 여자로 내세우면서 오히려 악행이 아름답게 미화되어 각인 된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범죄자들이 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은 결국 사회가 각박해지고 이기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보니 드라마도 이렇게 악녀의 성격을 더 혹독하게 만들고 있다. 최악의 악녀의 출연으로 높은 시청율을 보인 ‘왔다 장보리’를 보면서 미인 악녀가 나온 과거의 드라마를 손꼽아보았다. 우선 떠오른 것이 멀게는 2009년 SBS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김서형), 가깝게는 2013년 SBS ‘야왕’의 주다해(수애)다. 이들 주인공들을 ‘연민정(이유리)’과 비교를 하며 왜 인기를 끌게 되는 지를 나름대로 분석해보았다.

연민정이 최고의 시청율을 올렸다고 하지만 신애리도 악녀로서는 만만치 않다. 신애리는 ‘팜므 파탈 femme fatale. 치명적 여성)’이다. 매력을 무기로 삼아 친한 친구의 남편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친구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남이 자신 때문에 겪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아들 안위와 자신의 성공에만 목말라 한다. 오죽하면 당시 방송심의위원회에서 조차 “가족 시청시간대에 불륜과 납치, 과도한 고성과 욕설, 폭행 장면을 내보냈다”고 중징계 경고를 내렸을까.

이처럼 ‘팜므 파탈’의 활약은 ‘야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여주인공 주다해(수애)의 활약은 대단하다. 그녀는 세속적 욕망의 최고봉인 국가 권력을 향해서 질주한다. 자신의 일에서 방해가 되는 사람을 죽여 없앤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악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를 입증하듯 ‘야왕’이 방송되는 날이면 그때마다 '주다혜'가 오늘은 또 누구를 죽이나요? 라는 질문이 게시판을 온통 도배질을 했다고 한다.

다시 ‘왔다 장보리’ 로 돌아와 천하에 둘도 없는 악녀 연민정을 벗겨보자. 연민정의 꿈은 소박했다. 단지 유서 깊은 한복집의 주인이 되는 것을 소망했을 뿐이다. 그녀는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지독할 정도로 뻔뻔해지고 잔혹한 모습을 보인다. 물건을 훔치고도 발뺌을 하기 일쑤고, 혹 들키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 핑계를 그럴싸하게 하며 둘러댄다. 더구나 자신이 고통 속에서 낳은 아이도 꿈을 이루기 위해 잔혹하게도 어미의 정(情)을 끊고 헌신짝처럼 내다 버린다.

돈 많고 번듯한 사업가의 둘째 아들을 유혹해 결혼까지 한 그녀는 자신에게 자식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걱정하며 친모에게 자신이 낳은 아이를 납치해 외국으로 도망가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자식까지 내친다는 점에서 ‘아내의 유혹’ ‘야왕’의 여주인공인 악녀들의 악행을 능가할 정도로 평가된다. 다른 두 편의 드라마와 달리 독특한 것은 연민정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인물들 역시 시청자의 속을 그럴싸하게 뒤집어 놓는 결점 많은 인간들이라는 점이다.

연민정의 친모와 숙모가 연민정에게 약점을 잡혀,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연민정의 행위가 나쁜 것을 알면서도 질질 끌려 다닌다. “천하의 독종, 철면피”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양어머니 김인화가 연민정에게 던진 뼈아픈 절규다. 주인공 장보리(오연서)는 자신을 괴롭히는 연민정의 딸을 데리고 사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순박하다 못해 답답하기 그지없는 순해빠진 여주인공이다. 연민정의 친모와 양어머니 역시 연민정만큼은 아니었지만 신분 상승의 욕망에서 헤여나오지 못하는 악녀들임에는 틀림없다.

늘 그랬듯 결과는 악인들의 최후는 징벌로서 막을 내렸다. 신애리, 주다해의 결말은 예측대로 비참한 최후를 맞쳤다. 시한부 인생인 신애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냉혹함을 보이던 주다해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러나 악녀 계보를 이어온 연민정은 예상을 뛰어넘어 5년의 수감 생활로 죄 값을 치루고 출소 한 후 치매에 걸린 친모 옆에서 친모를 돌보며 주방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드라마다. 그러면서도 한 시대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악녀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사악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인성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악행이 당연한 습관이 되다보니 이 사회가 험악하고 각박해지면서 갈수록 범죄가 늘고 불안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런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한다. 반드시 좋은 세상이 돌아오리라 믿기 때문이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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