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민들은 참으로 암담한 심정으로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긴 한숨을 쉰다. 얼마 전에는 야당 대선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문재인 의원이 철부지가 떼를 쓰듯 단식농성을 하면서 비난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국회 회기가 시작된 상황에서 새정치연합의 당 대표로 있는 비대위원장인 박영선 원내대표가 팽목항을 찾았다.

한 때 “추가 재협상은 없다”고 말해 유가족에게 원성을 듣고 강경파의 반발을 사기도 했던 박 비대위원장이 한 발 물러나 장외투쟁을 선언한 후 세 번째인 장외행보다. 말꼬리 잡는 것 같지만 비정상 상태가 심해지고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정상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되어버리는 참담한 세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요즘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이 자리가 바뀌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그 자체가 정상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정부를 비난하고 막말을 한 사람들이 금배지를 달거나 대통령에게 심한 욕지거리를 한 사람들이 영웅시 되어 떠받들어지는 괴이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 대표적인 곳이 정치권이 그렇다.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에 매달려 아귀다툼을 하는 정계만큼은 비정상이 정상을 누르고 활개를 친 지도 오래인 듯하다.

여당의 불통에 모습도 그렇지만 야당의 80년대식 장외 투쟁체질에 진저리가 날 정도다. 더구나 민생법안을 챙기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특별법만큼 중요한 민생 법안은 없다’ 고 고집하는 새정치연합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고 너무 심한 것 같다. 의회정치를 하는 국회가 대화는 실종된 지 오래되었고 자기 지지자들을 향해 독백을 하고 있는 정치판은 비정상이 정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두 번의 대선과 두 번의 총선에서 연거푸 완패하고, 다 이긴 줄 알았던 지난 7.30재보선에서 줄줄이 낙마를 하고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가 불명예 퇴진을 했어도, 여전히 국민(유권자)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 오직 볼륨만 높인 강경한 목소리에 깊이 빠져있을 뿐, 산적해 있는 민초들의 애끓는 사연은 듣지도 않으려 한다. 그들의 심중에는 세월호특별법만 있고 다른 민생법안은 안중에도 없다.

정당은 일반 시민단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반 시민단체는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거리에 나와 투쟁을 할 수도 있고 또 최악의 경우 단식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자기 자리인 국회에서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장외로 나가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의원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깨버린 합의, 당 대표가 재합의한 합의를 깨면서 신뢰만 잃었고 또 국민들의 외면 속에서 여전히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새정치연합이 수권 능력은커녕 집권의지라도 갖고자 했다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국민들의 싸늘한 눈길을 받으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던 지난날들의 기억에서 바뀐 게 하나도 없다. 이번 회기를 시작하면서 여야가 힘을 합쳐 본회에서 처리 한 일은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이다. 이번에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불법을 저지른 제 식구 감싸기에는 신기하게도 한마음이 되어 하나로 뭉쳤다.

지금 민심의 분위기를 이렇게 모를 수 있을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실망을 넘어 한탄이 절로 나온다. 저런 사람들에게 과연 우리는 무엇을 맡기고 기대할 수 있겠는 가. 방탄 국회라는 오명을 쓰게 된 문제의 송의원은 2012년 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 등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대가로 철도납품업체 대표로부터 65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왔던 인물이다.

이에 앞서 같은 혐의의 초선인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은 임시국회 소집 하루 전 도피행각을 벌이다 구속됐으나 4선의 송의원은 임시국회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체포하지 못했는데 이번 본회의 부결로 특권을 유감없이 누리게 됐다. 그동안 국회는 지난 넉 달간 ‘법안처리 0(無)건의 기록을 세우며 세월호 특별법안. 민생법안 협상에선 완전히 손을 놓고 있더니 제 식구 감싸기엔 여야가 힘을 합쳐 행정부와 사법부의 공격을 막으면서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새 기록을 남겼다.

평소에는 싸움질만 하더니 자기들의 일에는 이렇게 단합을 잘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했는데, 그래도 믿었는데, 덕분에 ‘방탄 국회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했다. 참으로 국회의원들은 철판을 깐 것처럼 두꺼운 얼굴을 하고 있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인 것 같다. 새누리당에서 수차에 걸쳐 “비리 의원을 보호하는 방탄 국회는 없다”고 했는데 결국은 허언(虛言)임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뚜렷한 사과도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새정치연합의 일부 의원들이 ‘체포동의안 부결’에 동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을 맹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의원은 73명에 불과한 반면 반대한 의원은 118명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기십 명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추측된다. 여당이 주도하고 야당이 협조한 합작품이었지만 양측은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추한 꼴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어쩔 수 없는 제도에서 최선보다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늘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유권자의 슬픈 현실. 야당의 역할은 의사당에서 난동을 펴고 의장석을 점령하며 절차를 무시한 채 거드름을 피우며 장관이나 다른 의원에게 욕지거리를 하는 게 아니다. 야당의 자세는 관료세력을 누르고 세금 낭비와 국민의 기본적 자유에 대한 침해를 막고 여당의 횡포를 저지하는 것이다.

천치바보가 아니라면 그 정도의 역할은 알 수 있을 것인데 그렇지 않았다. 이런 의원은 집권을 포기한 야당 소속일 수 있다. 집권을 생각했다면 결코 이런 우매한 행태를 유권자들에게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차기 집권을 노리는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 딱 그런 추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여야 모두가 국민을 또 한 번 우롱한 셈이다. 자조와 탄식이 그래서 국민들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일 안하고 매달 세비만 꼬박꼬박 챙기고 정파적이며, 무한 특권을 추구하는 19대 국회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 인 것 같다. 세월호 대치정국으로 헐뜯고 싸우던 여야가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는 동료 의원 한 명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까. 참 신기하다. 더구나 19대 국회 하반기에 들어 법안을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한 국회가 동료의원 체포동의안은 민첩하게 부결시킨데 대해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인내에도 한계에 달했다. 식물정당, 저질정당으로 인해 식물 국회가 계속되고 있다. 식물국회는 결국 식물정권을 만들게 된다. 그런 ‘악성인자’의 전이(轉移)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 국민의 정권 평가는 경제가 우선이다.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든 야당에 대한 민심의 반감은 예상외로 거칠다. 안산지역의 세월호 관련 프랭카드 수십 장이 훼손되었다.

그 지역 식당업을 하는 사람들이 영업이 안 되다보니 화가 나서 프랭카드를 절단하고 폐기 시켰다고 한다. 여론의 미묘한 속성이 아닐 수 없다. 이만큼 세월호에 대한 민심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학생유가족대책위원회와 새정치연합이다. 이 처럼 세월호특별법과 관련 국론분열 현상이 벌어지면서 종교계 수장(首長)들이 나서 ‘이성적 해결’ 을 촉구하는 걱정 어린 소리를 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도 협상이 자구 결렬되는 것은 자기주장만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정략상 그렇다 해도 이제는 국민 정서상 유족들이 조금은 뒤로 물러나 양보를 할 때다. 너무 고집하다보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된다. 법과 원칙은 국민들의 상식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모든 것을 다 국가가 책임지게 하고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성숙한 민주시민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는 무리라고 본다.

자칫 세월호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호가 복원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좌초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만인은 평등하다. 국회의원부터 특권을 버려야 한다.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 세월호특별법 등이 특정집단의 이해관계로 발이 묶여 민생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직무를 유기하는 국회를 국민의 이름으로 해산을 시켜야 할 때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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