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정운영의 동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스텝이 꼬이면서 비정상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박대통령의 잇단 인사 실패로 국정 수행 지지율은 취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여론악재에 밀려 사퇴를 한 문창극 후보를 지켜주지 못하고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킨 고육책은 박대통령의 리더십과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박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4개월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제 문 창극 총리후보자는 그림자가 되어 우리의 시야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사의를 표명했던 장흥원 전 국무총리가 60일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 마당에 다시 문 후보 이야기를 들먹이는 것은 어찌 보면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어떻게 공개된 70분짜리 강연을 두고 2분짜리로 만들어 한 사람의 인격을 이렇게 무참하게 매도하는 사회가 되었단 말인가.

본래의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편집을 해서 내용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언론의 힘이 대단 한 줄은 알았지만 그 여파는 대단한 폭풍이었다. 다른 신문과 방송도 거의 그대로 받아 옮겼다. 대다수 기자들은 검증도 해보지 않고 아예 문 후보를 ‘친일’ ‘반민족’ 이란 붉은 딱지를 붙여버렸다. 언론은 문 후보에 대한 관련사항을 합리적인 잣대로 제시하기에 앞서 각자 자신이 생각한대로, 믿는 것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보도하는데 그쳤다.

자신들이 확신하고 있는 진실과 또 다른 진실은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진리만을 독점하려는 과욕을 부렸다. 안타깝게도 그런 언론검증에 빠진 국민들은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야당에 휩쓸려 왜 안 물러나느냐고 야단법석이다. 이번에도 언론이 진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후보자의 역사관을 정확히 알려면 교회 강연 내용 전체를 듣고 당사자의 해명을 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 종교계의 상당수가 이런 노력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KBC 보도를 비롯해 ‘사실의 왜곡’ 이 만연한데 편파적 또는 의도적으로 받아드렸을 뿐이다. 한국사회는 이미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도 MBC의 잘못된 보도만 믿고 촛불 시위를 하면서 얼마나 큰 국가 위기를 초래 했었는지 체험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각증이 심한 우리는 이번에도 이를 반복했다. 진실의 기둥을 꼭 붙잡고 반듯하게 서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문 후보의 발언에 대해 듣기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가치관. 종교관. 역사관에 따라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논란과 문 후보가 총리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후보자를 둘러싸고 논란이 발생하면 국회 청문회에서 검증하고 국회에서 표결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한국 사회가 정해 놓은 절차다. 헌법과 국회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이런 경우 법이 정한 ‘논리 처리 방식’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청문회와 국회 표결이다. 이런 것들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내용 못지않게 절차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논란이 두렵고 여론이 두려워 소신을 펴거나 공직을 맡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국가는 자연히 토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번 문창극 후보의 자진 사퇴가 ‘사퇴’가 아닌 ‘참살’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 후보자마저 낙마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문 후보자의 경우 논문 표절이나 전관 예우등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아 낙마한 다른 이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자질이나 도덕성이 아닌 성향이 변수가 되었다. 특히 대표적 보수 언론인으로 알려진 그였기에 애당초 야권이나 진보성향의 언론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새누리당이 그런 점을 감안해 문 후보를 추천했더라면 새누리당이나 청와대가 그렇게 헌신 짝 버리듯 문 후보를 내치면 안 되었다. 다행히 MBC 동영상 보도로 문 후보자가 친일 논란과 상관없는 인사임이 밝혀졌음에도 결국 청문회도 거치지 못하고 낙마하게 한 것은 새누리당이 야권과 여론의 공세에 눌러 외면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를 않는다.

더구나 평소에 입버릇처럼 ‘신뢰와 원칙’ 을 강조해온 박대통령이 여론에 눈치를 보며 ‘보수논객’을 자처하는 문 후보자의 낙마를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장기적으로는 보수층으로부터 신뢰를 잃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1차적 책임은 국가수반인 대통령과 국회에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시간을 끌면서 스스로의 권리이자 의무를 포기하고 그 공을 다른 곳으로 넘기는 실책을 범했다. 이는 이념에 대한 논란에 앞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져버린 것이다.

박 대통령은 원칙보다 현실을 중시했다. 자신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원칙과 신뢰에 어긋나는 행위를 저질렀다. 원칙의 동력을 잃고 앞으로 어떻게 정국을 주도할지 우려된다. 새누리당도 오락가락하다 무기력하게 원칙을 포기하는 일에 일조를 했다. 원칙적으로 3권분립이 엄연한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전적으로 자기 책임하에 인사권을 행사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 집권 2년도 못되어 총리 인사가 세 번이나 실패한 이유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거두절미하고 대통령이 나 홀로 인사를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앞으로 인사 때는 청와대 참모와 비선(泌線)의 얘기만 듣지 말고 새누리당. 나아가 야당에서도 추천을 받아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야당과도 소통을 통해 함께 나누는 새로운 정치가 이뤄질것이다. 더 이상의 실패는 용인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적임자를 찾아야한다. 국정운영의 일대 위기 속에서 이 난제를 풀어갈 사람은 역시 국가 수장인 대통령 자신이다. 그래서 대통령과 청와대는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부분에서 야당 역시 국정마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새정치연합은 대통령이 지명한 공직 후보자들을 한 사람씩 낙마 시키는 것이 마치 야당의 의무처럼 착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안대희. 문창극을 낙마시키면서 승리감에 빠진 야당이 여세를 몰아 흐트러진 청와대와 여당 틈새를 파고들 태세다. 이병기 국정원장과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 김명수 사회부총리후보까지 타켓으로 해 이들을 낙마 시키려고 벼르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모양새를 갖추며 공세를 강화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야당의 행태에 대해 ‘인사파괴 피로감’이 국민들 사이에 나쁘게 퍼져가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초동대응 실패의 일차적 책임을 물어 해경을 해체하듯 원칙을 중시한다면 청와대 인사위원회도 해체했어야 했다. 원칙이 흔들리다보니 주위에서 집단항명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이제 정신을 차리고 진솔한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무엇이 잘 못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꼼꼼히 집어봐야 한다. 잘못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다. 한 원로 정치가가 말했듯 ‘대통령 병’ 때문이다.

자신은 잘 하는데 남들이 탓하는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하고 귀를 활짝 열고 국민의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야당까지도 각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해야 한다. 생각과 색깔이 다른 이 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 또 책임과 권한을 과감하게 나누어 주어 그들이 일 할 수 있는 의욕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은 분열되고 국가는 흔들리는 위험 수준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대통령과 정치권은 분명히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야당은 이제 박대통령을 그만 흔들어야 한다. 정략적 목적으로 대통령에게 돌을 던지며 물러나라고 할 상황이 아니다. 나라의 처지가 위태롭다. 나라가 있어야 정치가 있고 개인의 삶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한심한 정부라도 일단 정신을 차리고 안정을 찾도록 정부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국정의 동반자인 야당의 의무이자 책임 있는 자세라 할 수 있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