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에 이어 12년 만에 김용준, 안대희에 이어 문창극까지 중도 사퇴되면서 그 파장이 일마만파로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3명의 총리 후보가 약속이나 한 듯 청문회 문턱을 넘기도 전에 낙마했기 때문이다. 연쇄적인 낙마라는 점에서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파동을 일으키며 촛불시위로 국위를 위태롭게 했던 MBC에 이어 이번에는 KBC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온 누리 교회’에서 문창극 장로가 한 신앙 간증을 갖고 머리와 꼬리를 잘라 낸 ‘거두절미(去頭截尾)’식 보도를 하면서 여론 악화를 부르고 여기에 야당의 안철수, 김한길, 박선영, 박지원의 과격한 발언이 더욱 더 여론 악화에 부채질을 하면서 그 바람이 청와대와 정부 여당을 압박했다.

설상가상으로 우군이 되어야 할 여당의 주요인사들 까지 가세하면서 친일파로 내 몰린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결국 14일 만에 깊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말로는 자진 사퇴라지만 그게 어디 자진 사퇴인가 누가 보아도 처참하게 도륙을 당한 것이다. 언론의 횡포와 지식인들의 천박한 말과 처세로 원칙과 가치는 상실되고 한 인간의 인격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문 후보를 완전히 작살을 내는데 여당이 일조를 하면서 성공을 한 것이다. 여야가 도덕적 가치나, 비리, 부정에 대한 것이 아닌 개인의 신앙관, 역사관을 들먹이며 참살을 자행했다. 언제 우리가 개인 사상을 검증하며 사퇴 압력을 했던가. 과거 한명숙의 남편, 노무현의 장인에 대한 이념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 같은 여론이 들끓지는 않았다.

노무현의 경우 장인의 이념을 문제 삼자 당당하게 “그럼 나더러 부인을 버리라는 말이냐” 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국민들이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넘어간 것으로 기억된다. 당선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청와대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이미 KBC의 왜곡보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새누리당이 문 후보자를 보호하고 지키며 즉각 대처하기는 커녕, 시간을 끌면서 여론의 눈치를 보다 결국은 선동적 언론에 굴복하고 말았다.

한 술 더 떠 야당의 주장을 따라 문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 할 것을 묵시적으로 종용하기도 했다. 박대통령이 문 후보자가 자진 사퇴를 하자 즉각 유감을 표시하고 앞으로 청문회를 통해 억울함을 밝혀 명예를 회복시키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임기웅변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박 대통령의 경우 이럴 때 일수록 소신을 갖고 정치권과 소통을 했어야 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대통령이 지목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퇴 기자 회견이 끝난 직후 단지 유감만을 표시 한 것은 아쉬운 감이 든다. 자신이 지명을 했으면 끝까지 진실을 밝히며 문 후보자를 지켜줘야 했고 또 국민들에게 왜 문 후보자를 동반자로 선택했는지 와 앞으로 동반자(총리)와 함께 펼쳐나갈 정책을 제시하며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야당의 비난은 개버릇 남 못 준다고 치드라도 야당에 끌려다니며 눈치만 보던 여당이 더 큰 문제다.

이제는 색깔도 회색에 가까워졌다. 서청원. 이인제, 그리고 철부지 같은 5명의 초선의원, 한마디로 안타깝고 한심하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작은 것을 취하려다 큰 것을 잃었다. 정정당당하지 못하고 여론을 의식, 문 후보자를 외면하면서 문 후보자와 그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었다는 것은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문 후보 사퇴이후 보수층이 등을 돌릴 정도의 이런 분위기라면 7.30 재. 보선에서 승리는 커녕 집권 2년 반 만에 자칫 ‘네임 덕’이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총리 공백 상태가 지속되면서 정치적 난맥상도 계속 이어지는 등 하반기 국정 운영이 걱정 된다. 더 크게 우려되는 것은 선동적 언론과 악 날 한 야당에 대해 반론 조차 제시하지도 못하고 일부 여론몰이에 가세해 문 후보자를 갈기갈기 찟어 놓도록 방심한 정부. 여당에 대해 보수를 자처하는 층의 사람들이 분노를 느낀다는 것이다.

7. 30. 선거를 앞두고 보수의 대분열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청와대는 문 후보자가 그렇게 표적 사살되기를 은근히 바랬다. 외유 중 지명 동의안을 유보했지만 귀국 후에도 상당한 시간을 망설였다. 끝내는 자신의 억울함을 국민들에게 해명하지도 못한 채 자진 사퇴를 선택하게 했다. 그러다보니 기자회견말미에 정부와 국회가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며 원망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이는 문 후보자가 착각 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청문회를 하려면 지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데 청와대에서 차일피일 미루면서 제출하지 않았다. 제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청문회를 열 수 있겠는가. 대통령은 당연히 지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 문 후보자에게 소명의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마저 문 후보자가 죽어주기를 바란 것 같다. 모두가 발을 빼는 모습에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대가 크다보니 실망도 크다. 암울한 이 나라. 정말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할지. 청와대와 여당의 행태에 대해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해서는 의리도 있고 단합도 잘 되는 국회의원들, 세비를 주는 것 조차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밉상을 보이는 야당이 문 후보자를 마녀사냥 식으로 무참히 끌어내린 데 이어 그 여세를 몰아 그 책임을 물어 대통령비서실장을 갈아치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무장관도 아닌 비서실장은 단지 대통령비서를 총괄하는 대통령의 측근에 불과할 뿐이다. 그야말로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의 일을 하는 실장의 자리인데, 그런 실장을 정치권에서 내 좇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사실 이런 진풍경은 정치권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한 풍경이다.

상대가 좋고 내 편이다 싶으면 무조건 맞고, 상대가 싫고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그르다고 반대 한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한번 귀기우리고 관심을 갖기보다는 곧장 여론 재판으로 직행한다는 것이다. 어찌하다보니 ‘비정상‘이 ’정상‘ 같이 된 ’위기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다수의 횡포가 세상을 흔들어 놓고 있다.

’목민심서‘ 봉공 편의 ’예제‘ 라는 조항에는 높은 지위의 벼슬아치와 낮은 지위의 벼슬아치들의 상하 관계를 잘 묘사해 놓고 있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복종은 상관이 바르고 정당 할 때를 말한다. 문득 “전하, 소인의 목을 베어주소서, 그것은 아니 되옵나이다. 불충한 제 목을 베어주소서. 목이 붙어 있는 한 어명을 따를 수 없나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아왔던 모습이다.

군주주의 제도 하에서 임금하게 항명하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 말로 국무회의라고 할 수 있는 어전 회의에서 임금이 수첩에 적은 깨알 같은 글을 읽으면 대신들이나 중신들이 수첩에 그대로 받아쓰는 일은 없었던 같다. 고서(古書)어디를 보아도 없고 기록물에도 없다. 다산은 후손인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사대부의 벼슬살이하는 방법은 언제라도 벼슬을 버릴 수 있다는 의미로 ’버릴 기‘(棄)한 글자를 벽에 써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눈 여겨 보아야 한다.” 했다.

옛날 대신들이 위풍당당하던 모습이 너무도 그립다. 판서나 정승, 대신들이 언제라도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해 버릴 자세을 유지하면서 무서운 임금, 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지만 겁 없이 항의하던 그 늠늠한 모습, 요즘 국무회의 때는 왜 그런 장관이 없을 까. ’부들부들 떨면서 황송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아 못 내 아쉬움이 남는다. 국회의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윗분에게는 쩔쩔매고 두려워 하다 가도 국회에서 청문회라도 열라치면 큰 소리치고 으름장까지 놓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제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몇 사람이나 또 낙마를 하게 되는지 염려 된다. 자신들도 온갖 비리로 지탄을 받아왔는데 그런 부류가 어떻게 청문회에서 큰 소리를 치며 질타를 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줄을 알았으면 한다.

여. 야를 막론하고 이 같은 정치권이 지속된다면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을 물러나라고 하는 정치인들, 이참에 무능하고 세비만 축내고, ’있으나 마나한‘ 국회를 해산시키는 운동을 범국민적 차원에서 벌려보면 어떨까.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