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로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를 지배한 핫 이슈가 있었다면 누가 뭐라 해도 ‘자식’ 이라는 이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세월호 참사 때부터 지난 6.4 지방 선거 때까지 온 나라 화제는 ‘자식’ 이란 말로 모아졌다. 어느 날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세월호 참사로 돌아오지 못한 자식들을 보며 이 땅의 부모들은 너나없이 속이 뒤집혀져있었다.

지우 한 분은 세월호 참사 뉴스를 보면서 순간적이지만 자식이 저녁 늦게 집에서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보면서 세삼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했다. 자식이 집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감사한 줄은 미처 몰랐다고 했다. 두어 달 넘도록 그 ‘자식’의 이름은 모든 부모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자식을 잃은 세월호 참사가 엉뚱하게도 6.4 지방선거에서 대이변을 보였다.

이는 세월호 참사가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 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30, 40대 ‘앵그리 맘’ 을 중심으로 한 학부모들로 하여금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보수 성향의 후보보다 협력과 공존을 내세우는 진보 성향의 후보를 선택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 결과 국민들은 진보성향의 교육감을 선택하면서 16개 시도에서 대구, 경북, 울산을 제외한 전 지역을 석권하다시피 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역시 ‘자식’이 전면에 등장 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고승덕 후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복병을 맞은 것이다. 딸의 독화살에 심장을 찍힌 거다. 미국에 살고 있는 딸의 페이스북 글이 패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딸은 친부인 고 후보를 가리켜 “아버지는 자기 자녀 교육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교육감이 될 자격이 없는 분” 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 과정은 매우 구체적이었으며 아버지의 해명이나 반박에 대해서는 발 빠른 언론 인터뷰로 대응했다. 결국 자신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고승덕 후보는 선거 막판에 강펀치를 맞고 넉 다운이 되었다.

이 부분에서 고승덕 후보는 문용린 후보 측 사주를 주장하면서 문 후보까지 물고 늘어지는 추함을 보였다. 비유가 될 런지는 모르지만 ‘바구니에 있는 게처럼 다른 게가 올라가는 것을 못 올라가게 잡아버리는’ 격이 되어버렸다. 결국 고 후보의 행위로 인해 3위에 불과한 조희연 후보가 어부지리식으로 1위로 부상하면서 서울시 교육감의 자리를 차지했다. 고 후보의 덕을 톡톡히 보게 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 후보는 고 후보와는 달리 아들을 잘 둔 덕에 영예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조 후보는 두 아들이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뛰어들면서 오히려 반작용의 효과를 얻은 것이다. 특히 한 아들이 포털사이트에 올린 아버지에 대한 글이 고 후보와 달리 깊은 신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고승덕 후보는 자식에게까지 불신을 받는 아버지의 상으로, 조 후보는 자식들에게 존경 받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유권자들로부터 획득한 것이다. 결국 화목한 가정은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선거 전 임박해서도 한 자리 수 지지율에 여론조사에서 3위에 불과했던 조 후보가 신뢰와 화목을 내세우며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는 기적을 낳은 것이다.

이 처럼 유권자들이 후보와 가족 문제를 매우 애민하게 생각하는 것을 두고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는 데 어떻게 국가를 위한 다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는 사실 너무 이론적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물 흐르듯 변하고 있다. 그래서 가족 개념과 의미도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고 후보와 딸의 관계가 결국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은 단순한 고 후보의 도덕성과 같은 문제 하나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밑바닥부터 흔들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요즘 내내 사람들은 모이기만하면 세월호와 선거의 아들 딸 이야기를 화제꺼리로 삼는다. “사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로 시작해 “모두 다 어른들이 잘못이 크다” 로 끝난다. 선거 후 만난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선거 후의 아이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조 후보의 아들은 효자가 되었지만 고 후보의 딸은 아버지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평생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사는 건 아닌지? 부모 마음에서는 자식의 일은 남의 자식이라도 걱정스럽고 신경이 쓰이는 가보다.

어찌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민심이 다른 교육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진보 측 교육감을 대거 선출하면서 향후 학교교육이 어떻게 변할 지 걱정이 앞선다. 이 같은 우려는 지난 4년간 교육현장에서 보수 측과 갈등을 보이며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무상 급식 등을 주장해왔던 진보 교육감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서울의 경우 보수 후보 사이의 분열은 곽노현 전 교육감에 이은 진보 서울교육감 출현을 도운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고승덕 후보의 친딸 폭로 이후 벌어진 고 후보와 문 후보의 진흙탕 싸움은 보수가 신봉하는 가족의 가치를 허물어뜨렸으며 유권자들은 이런 보수의 태도에 등을 돌린 것으로 예측된다. 이 점에서 고승덕 후보는 크게 책임을 느끼고 자성의 모습을 보이며 오래도록 근신해야 마땅하다. 고 후보는 과거에도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많은 사람, 특히 유권자들에게 상처를 안겨준 사람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자중할 줄 알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유권자의 선택은 반드시 존중해야하지만 자칫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처럼 정부, 교육부장관과 사안마다 충돌하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갔던 악몽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정부가 정책을 결정해도 시ㆍ도 교육감이 비토를 놓아 교육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지기 일쑤였다. 유권자들이 그 부분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이제 교육감협의회 주도권도 진보성향의 교육감진영이 거머쥐게 됐다. 이럴 경우 박근혜 정부가 어떤 교육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시ㆍ도에서 차단하면 시행할 수 없다. 전교조 출신이나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그랬고 특히 교육감이 몇 차례나 바뀌면서 바뀌는 교육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임 교육감이 혁신학교를 늘리면 후임은 예산을 깎아 버리고 전임이 만든 자율형 사립고는 신임 교육감이 폐지하겠다고 나서니 어느 누가 교육정책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겠는가.

이런 악순환을 막고 교육 정책을 잘 하게 하려면 정부와 협조가 되는 교육감을 뽑아야 한다.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를 실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정책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가로 막는 현행 교육감 직선제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업무의 특정상 국민들이 선출할 대상이 아니다. 이런 불합리한 교육감 선출로 교육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빠를수록 학생이나 학부모 그리고 국가 정책에도 좋다.

2006년 전 교육감 임명제로 돌아가거나 시ㆍ도지사와 교육감 러닝메이트제 도입 등 갈등을 빚지 않는, 그래서 학부모,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는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보수 궤멸로 나타난 진보교육감의 압승, 특히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 교육감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에 기쁨보다는 학교교육이 어떻게 달라질지 걱정이 앞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우울한 교육감 이야기는 접어두고 이제는 월드컵 한국 축구를 응원하며 '대한민국 차차 짝' 하면서 애국자가 되어 기분을 풀어보자.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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