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空地)에 무화초(無花草)하니 춘래불이춘(春來不以春)”(빈 대지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진도 ‘세월 호’ 참사 이후 뉴스를 접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늘 그래왔듯이 언론사의 열띤 취재 경쟁, 정부는 우왕좌왕하며 형식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정작 알맹이는 없다. 항상 ‘소 잃고 외양간마저 고치지 못한다.’는 식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언제 그런 아픔이 있었느냐 하는 식으로 잊고 산다. 뜨거워진 냄비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무슨 사건이 날 때마다 ‘책임론’ 문책 등으로 상대의 목조르기를 한다. 지금 역시 박대통령을 겨냥해 공개사과를 요구한다. 공개사과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문제는 진정으로 참회의 공개사과를 하면서 책임에 대한 발언과 대책까지도 나와야 한다.

이례적으로 형식적인 사과는 요식행위만 갖추는 것일 뿐이다. 아쉬운 것은 이번 박 대통령이 4번째 사과에도 공무원들에 대한 배신의 분노를 느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과 중에 정작 다루어야 할 책임론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대국민 사과의 입장인데 마치 국무위원들에게 하는 질타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대국민사과라면 당연히 사태 책임에 대한 언급이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실종자가족 대표라는 분이 박 대통령이 눈물도 없이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를 치웠다고 하는 것은 그 심정을 이해는 하나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과연 그 같은 모습을 학생들이 보면서 국가 원수나 부모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겠는지 한 번 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래도 박 대통령은 현장을 방문해서 실종자가족들을 만나 위로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했으며 조문까지도 갔다. 비록 형식적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마음을 전달했다고 본다. 진정으로 사과하는 것도 박 대통령의 마음에 달렸다. 국민들도 다 알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정치적으로 대통령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지 안타깝기만 하다.

사실은 그 책임을 질 사람들은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에게도 있지만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우리 국민이다. 그동안 법을 준수하지도 않았고 부정에도 내 일이 아니라며 방관만 하면서 소중한 한 표를 함부로 다루었다. 세비만 축내고 자기들 이익에만 여야가 일치하는 그런 부류를 뽑아놓고도 그에 대한 책임은지지 않으려고 했다. 모둔 사고에 대해 원인 제공을 한 우리가 총체적으로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날 때마다 대통령이나 총리에게 책임을 묻는 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세월호 구조 작업에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전문가나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거나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간 단원고 학부모 대표라며 박 대통령이 현장 방문했을 때 옆에 있던 사람, 또 청와대에 항의방문을 하자며 가족들을 부추긴 것도 가족이 아닌 외부 사람으로 드러났다.

학부모 행세를 했던 송모씨는 이번 지방선거에 안산시 도의원으로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정당원이다. 그는 얼마 전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정부의 무능을 비난하는 듯한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족들의 분노와 실망을 교묘히 이용하려는 사례도 있었다. 실종된 단원 고 학생의 친형인 조모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청와대 항의 방문 등을 외부인들이 나서 부추겼다”며 “군대에서 행군하듯 학생들이 나서서 청와대 항의 방문을 부추겼다”고 아쉬워했다.

또 실종자 한 관계자는 “단상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중엔 유족이나 실종자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나서 극도로 흥분한 상태의 가족들을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이렇다보니 실종자 가족조차도 서로 믿지 못하고 상황을 더욱 악화 시키려는 프락치가 주변에 있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고 귀뜸한다. 심지어는 1억 원을 주면 아이를 꺼내주겠다며 슬픔에 잠긴 가족에게 접근했던 브로커, 유족 행세를 하며 구호품을 빼돌리는 얌체족도 있다.

모 방송에 출연해 마치 자신이 잠수부인 것처럼 말하며 정부가 구조 활동을 막는다고 말했던 홍가혜씨. 결국은 민간 잠수부가 아닌 가짜로 드러났고 법정 구속되었다. 그녀는 방송직후 논란이 일자 반성은 커녕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MBN 출연한 게 그렇게 부러우냐, 꼬우면 니네들도 현장 와서 얼굴 맞대고 얘기 해 보든가. 이러다 나 영화배우 데뷔하는 거 아닌가 몰라” 라는 글을 올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행위들에 대해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는 “망상적 사고를 동반한 성격장애자로 거짓말을 통해 불안정한 정체성에 대리 만족을 주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침몰사건이 나면서 그동안 국회에서 낮잠을 자던 법률안 몇 개가 긴급하게 통과되었다. 문제는 법이 없어서 이 같은 참사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또 그렇게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법안을 정치적으로 이용, 이제까지 잠재우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재발방지를 위한 법안을 마련했지만 한 번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 그렇게 급하게 만든 법이다 보니 나중에 삭제하기도 하고 개정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또 ‘국가안전재난처’ 신설을 구상하는 것 같은데 부서가 중요하고 직급이 중요한 게 아니다. 기구설치나 법 제정에 앞서 제정된 법을 준수하는 게 더 급선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페이퍼(행정)관리’를 지향하는 인사개혁이 있어야 한다.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전문가를 영입하고 전관예우 등을 완전 배제하여야 한다. 재난이란 예고 없이 일어나는 법이다. 군(軍) 생각난다. 군대란 항상 유사시를 대비해 훈련된 사람들을 대기 시켜놓고 있는 조직 집단이다. 재난의 경우도 상설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좋지만 예고 없이 다가오는 재난을 미리 막으려면 ‘재난처’에 훈련된 요원들을 대기 시켜놓았으면 한다. 군에서 5분대기조처럼 말이다.

그래서 긴급 시 5분대기조가 출동하고 그 이후 추가로 출동 하면 적어도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 대형 사고에서 또 하나 느끼는 건 언론매체가 정확한 정보도 없이 특종의식에서 속보 경쟁 보도를 한다는 것이다. 미리 앞서 가다보니 항상 정부의 발표에 대해 불신하는 요인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 슬픔에 잠겨있는 실종자 및 유가족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무조건 셔터를 눌러대고 불만에 찬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반복되는 취재보도로 더욱 더 분위기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악천후에 잠수사들이 구조 작업을 못 하게 되었어도 그런 상황을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기 보다는 지연만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도를 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오해의 요인을 만들고 있다. 한 마디로 올바른 정보 윤리가 없는 것 같다. 숲을 보는 사람은 나무를 볼 수 없고 나무만을 보는 사람은 숲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기자는 공인인데 때로는 자기 시각, 또는 언론사의 흐름에 따라 편견의 왜곡된 판단으로 국민을 혼돈스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마디 더 하자면 보도가 온통 학생들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생존자 중 일반인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 상당수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지만 언론에서 조차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사고 생존자는 174명 이 중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75명인데 이들 학생들은 현재 고대 안산병원 등에서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 생존자 99명은 체계적인 심리 상담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이 부분도 언론이 다루었으면 한다. 그리고 생존 학생들의 정신적 충격 등 치료를 위해 취재도 자제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참사를 통해 교훈으로 남는 것은 책임의식과 용기,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배려 등 그야말로 삶의 기본적인 덕목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양사상에서 덕성(德性) 혹은 양심이라고 하는 인간의 본래 마음이 발휘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도덕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결과이자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덕성의 발현을 심각하게 요구하지도 않았다. 인격적인 덕의 발현을 통한 명예로운 인간의 길은 뒷전이었던 것 아닌가. 부끄러운 부모임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너도 나도 그저 한탕주의, 연고주의, 정실주의, 학연주의, 기회주의에 깊이 빠져 졸부나 되려고 하지 않았나.

우리의 근대화 과정이 언제부터인가 인간성을 기르기엔 너무 척박한 토양이었던 같다. 감추고 싶은 상처와 잃고 싶지 않은 그리움만 남아 있는 실종자가족들. “불이 나면 꺼질 일만 남았고 상처가 나면 아물 일만 남았다. 머물지 마라, 그 아픔에서….” 그 말 뿐.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어른 모두, 아니 모든 일에 방심한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이제 너희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꽃 한 송이 뿐이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구나.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