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의 조화라고 말한다. 또 모든 것은 하나 속에 포함되기도 하고 또 낱낱의 하나는 그것 자체로 모든 것을 말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봄이 되면 들에 꽃이 핀다.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산골에 피는 들꽃들은 더욱 더 빛깔이 곱고 아름답다. 또한 산이 높고 골이 깊을수록 그 언저리에 피는 산(山)꽃들의 생기와 향기는 더욱 짙고 신선하기까지
흔히 정치권에서 보면 형님, 아우 하는 관계치고 끝까지 좋게 가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김태호 전 총리후보자와 그를 청문회를 통해 낙마를 시키는데 아주 결정적인 저격수 역할을 한 민주당 박 모 의원과의 관계가 바로 그러한 것 같다. 김 후보자로서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되어 버렸다. 물론 박 모 의원은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분했을 뿐이
21일부터 1박 2일간 법무부에서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을 간다. 퇴직 후 참으로 오랜만에 맞은 공식적인 외박이라 그런지 어린 시절 소풍가기 전날 밤 설레던 것처럼 가슴이 마냥 설렌다. 문득 고향이 떠오르면서 추석 명절이 생각났다. 추석명절을 맞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 가버렸다. ‘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런 행복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내가 평생 추구한 행복의 가치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욕심은 쉽게 만족하지 않고 무한대로 끊임없이 진행된다. 인간의 기본욕구와 성장에 관해 발달심리학자 ‘메슬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선 사람의 가장 기본적
‘공정한 사회’가 정치적 화두로 급부상한 느낌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6.15 경축사에서 언급할 때만해도 언론들은 통일세를 큰 제목으로 달고 공정한 사회는 작은 기사로 처리되는 등 생기 없는 정치구호에 불과했다. 공정한 사회를 사회적 화두로 키운 것은 소장수 아들이라는 서민적 이미지의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비롯, 장관 후보자 낙마와 외교
‘민속적으로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며 즐기는 날’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명절’의 뜻풀이다. 사전대로 생각하면 요즘 추석은 명절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추석은 즐기는 날이기는 커녕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재빠르게 반영하는 것이 언론이다. 몇 해 전만해도 신문 방송은 마치
지진이나 쓰나미가 일어나기 전 들짐승이나 쥐들이 가장 먼저 도망간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과 수십 분전까지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몰살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짐승은 먹이가 아무리 많아도 자기 위장의 80%만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짐승이 중풍에 걸렸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당뇨병에 걸렸다는 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인간은 갓난아기 때 단맛을 먼저 알고, 짠맛, 신맛을 배운 후 비로소 쓴맛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어쩜 독성이 있는 물질에 들어있는 쓴맛을 가장 늦게 배우는 이치는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가장 늦게 인생의 쓴맛을 맛보게 되는 셈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깨닫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경우에 따라서는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자기의 책
얼마 전 모 대학에 강사로 있는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평소에도 그 후배의 고민거리를 잘 들어주고 가끔은 해결책도 일러주곤 했던 터라 그 날도 후배는 예외 없이 사회 돌아가는 모양도 보기 싫고, 학교 돌아가는 꼬라지도 마음에 안 든다는 등 푸념을 잔득 늘어놓았다. 약간 취기가 오른 후배에게 동병상련의 관
엿 장수가 한 시간 동안 몇 번이나 가위질을 할까? 우문우답이 되겠지만 엿 장수 맘 대로다. 지우를 만나러 안국동에 가는 길에 덕수궁 대한문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 이 진행되고 있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흥미롭게 ‘교대의식’을 지켜보았다. 가끔 스쳐지나가면서 여러 차례 구경은 했지만
아주 어릴 적 시골에서 외할머니가 들러 준 옛이야기 중 새우젓 장사로 몰락한 양반의 일화가 있다. 굶주리다 못해 새우젓 통을 짊어지고 거리에 나서긴 했지만 막상 ‘새우젓 사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그 때 마침 굴비 장사가 ‘굴비 사려’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지나간다. 양반은 얼른 굴비 장사를 뒷쫓
인간은 필연적으로 공생의 삶을 살게 돼있다.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은혜를 입고 은혜를 베풀면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때로는 본의 아니게 배은망덕한 일을 저지르며 살기도 한다. 어찌 보면 배은망덕한 일은 어느 특정한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솝우화 가운데 포도넝쿨에 몸을 숨겨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슴이 안도의 숨을
요즘처럼 신문 펴보기가 두려워지는 때도 없는 것 같다. 하루가 멀다하고 폭행, 강도사건이 발생하고 폭력배가 대낮에도 시민들을 괴롭히고 특히 여성들을 납치, 성폭행하는 파렴치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선거철만 되면 정치가들은 거짓공약으로 유권자들을 유혹하려 들고 순진한 유권자들은 번지르르한 말에 현혹되어 표를 찍는다. 언제부터 우리가 범죄와 악덕(惡德) 더미
며칠 전 무심코 TV를 켰는데 마침 어느 여가수가 1970년대에 인기절정이었던 ‘얼굴’ 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이얀 그 때 꿈은......” 흘러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선율과 가사가 거침없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40년 전 최루탄 연기와 데모
교육에서 강조하는 용어 중 ‘피그말리온(Pygmailon)효과’ 라는 것이 있다. 남이 나를 존중해주고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사람은 그런 쪽에서 변하려 노력하고 또 그렇게 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는 이론이다. 반대로 ‘스티그마(Stigma)효과’ 가 있는데 이는 피그말리온 효과와는 정 반대로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부정
얼마 전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표결 때 한 야당의원이 반대 토론을 하면서 서산대사 휴정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눈 밭 속을 가더라도 함부로 걷지마라/ 오늘 내 발자국이 뒷 사람의 길이 될지니” 란 선시를 인용했다. 섬찟했다.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을 하면서 난데 없이 백범선생의 좌우명이기도 한 그 시를 인용 하
지난 달 25일은 6.25 전쟁.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북한의 도발로 인한 천안 함 폭침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은 채 오늘을 맞는 우리의 소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남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당시 태어난 아이들이 환갑을 맞을 만큼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갔다. 현 인구 중 전쟁을 직접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특별히 올해는 6.25전쟁 6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6.25전쟁은 우리 민족의 가장 비극적 수치요, 참혹한 상처를 남겼다. 민간인을 포함 무려 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1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이 거리에서 울부짖었고 남편을 잃은 여인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60년 전 6월의 흔적
주관이 모자라면 군중의 노예가 되고 주관이 지나치면 망상(妄想)의 종이 된다. 무식하면 고집이 세다지만 유식하다는 지식인들의 억지도 그에 못지 않은 것 같다. 시민단체를 자처하면서도 정치성향을 띤 참여연대의 어처구니 없는 행위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최근 천안 함 피격사건에 대해 북한 관련 의혹을 ‘소설’을 쓰고 있다면서 좌초 충돌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봄을 잃어버렸다. 봄을 잃은 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삭막한 마음이 되었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해맑은 봄 햇살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봄은 그렇게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춘삼월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새 봄을 맞이하거나 즐길 경향이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 젊은 장병 46명의 생명을 앗아간 천안함 사태